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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an 09. 2020

캘리포니아 비경, 피카초 주립 휴양지

콜로라도 강가에 바람이 분다

아직 햇살이 따스한 아침나절 인디언 패스에 도착했다. 

땅이름에서 패스(Pass)는 보통 고갯마루를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으니 이곳이 고갯마루일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넘는 인디언 패스는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오래전 여기 살던 사람들이 콜로라도 강의 피카초 지역을 오가느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길이다. 거무데데해 보이는 산은 피카초 봉우리로 이 근방의 토양과 지형이 어떤지 짐작케 한다. 나무는 거의 없고 간간히 덤불들이 눈에 띌 뿐이다. 빛깔이 초콜릿을 닮았다고 해서 초콜릿 산으로 부르는 곳이 많은 것도 특징 이리라. 


*앞선 글이란 '인디언 패스 로드'라는 제목의 글을 뜻한다. ---> https://brunch.co.kr/@leemansup/145


오길비(Ogilby)에서 시작하는 길은 지금까지는 평탄했지만,  언덕을 지나면서 좀 거칠어진다. 안내문에서 보듯이 여기서부터는 4륜 구동 차량이나 산악 오토바이 또는 ATV 등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만큼 길이 거칠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말이다. 


사실, 이 패스는 두 번째다. 

처음 피카초 지역을 가기 위해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의기양양했다. 

길이 다 거기서 거기 일거라는 생각과 "4륜 구동인데 뭐가 문제야?"라는 자부심 가득한 생각이 들었다. 도착하기 전까지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길을 살펴보니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드코어 오프로딩을 해본 경험이 없는지라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바위가 삐죽거리는 좁다란 길을 보니 덜컥 겁부터 났다. 

길이 험하니 오프로드용 차량만 진입하라는 팻말


일단 차를 세우고 요기를 하면서 살펴보기로 했다. 

패스에는 본격으로 오프로드로 들어가기 앞서 뭐라도 들고 가라는 듯 널찍한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도 있는 듯 공터 한옆에는 화덕도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에 상을 차렸다. 간단히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린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ATV 세 대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지나고 있다.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니 안정되던 마음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덩달아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얼른 상을 치우고 길을 나섰지만, 처음 접하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몇 미터 못 가고 돌아서야 했다. 다른 것 보다도 타이어가 일반 도로 주행용이라서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굉장히 힘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길 입구는 이렇게 자갈이 많아 울퉁불퉁 한데다 ATV들이 지나니 지레 겁먹었다.


그런 길을 이제 다시 찾았다. 

이번에도 패스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지난번에 가다 만 곳을 자신 있게, 당당히 들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타이어를 좀 업그레이드해서 오프로드용 타이어로 바꿨기 때문이다. 사실 타이어를 바꿨다고 들어가지 못하던 곳을 쑥쑥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접지력이 좋아지고, 더 튼튼하기도 해서 일반 타이어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 보다는 난이도가 좀 낮은 오프로드다.


어쨌든 이렇게 다시 찾은 길은 지난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까짓것 도로에 자갈 좀 있는 것이 무엇이 대수겠는가? 자신감이 붙어 지난번 돌아선 곳까지 왔는데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좀 더 가면 어떤 길이 나올까 하는 기대가 될 만큼 갈만한 길이다. 가보지 않은 길, 바닥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길, 거기에다 지나는 차들은 모두 오프로드 전용 차량이니 지래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자갈길도 금세 끝이 나고 모래길이 시작됐다. 다행히도 모래알이 굵어 바퀴가 깊이 빠지지 않았지만 모래 때문에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비가 오면 물이 흐르고 평소엔 이렇게 말라있어 길로 이용되는 건천(Wash)이다.


길섶 풍경은 처음 길을 들어설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골짜기의 마른 내(Wash)를 따라 이동하게 되어있는 이 길은 그나마 땅 깊이 물기가 있었는지 길가에 자잘한 나무들이 제법 들어서 있어 보기에 좋았다. 물은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난 여행에서 차를 돌리기 바로 직전에 산에서 짐승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었다. 산 중턱 즈음에 서서 우리를 쳐다보며 미동도 않던 그 짐승, 사진기 줌을 돌려 살펴보니 말이라고 판단했던 짐승이 있었다. 그 짐승을 이번에 다시 만났다. 길가 나무 밑 그늘에서 쉬고 있던 그 녀석은 우리가 다가가자 천천히 걸어 저만큼 물러나 지난번처럼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본다. 그는 말이 아니라 당나귀였다. 전에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오래전 당나귀를 이용해 짐을 나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필요가 없어지자 그들을 풀어줘 야생 당나귀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 길은 디스퍼스드 캠프 그라운드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이 오늘 가려고 하는 피카초 휴양지 쪽이다. 피카초 휴양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콜로라도 강을 따라 이어진다. 콜로라도 강이 길고 넓기 때문에 강이 지나는 지역의 상당히 많은 구역이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많아 휴양지로 개발되거나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구역이 많다. 특히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National Wildlife Refuge)으로 지정된 곳들은 철새가 많거나 해당 구역에 어류 분포가 다양하거나 또는 야생동물 서식지여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곳들이다. 이 근방만 해도 임페리얼 야생동물 보호구역, 시볼라 야생동물 보호구역, 코파 야생동물 보호구역 등 3 곳이나 있을 정도다. 

콜로라도 강은 깊고 넓어 수량이 많다


길은 강변을 벗어나 산을 따라 이어지기도 한다. 길 양편으로 펼쳐진 다양한 빛깔의 땅의 모양은 마치 데스밸리의 '아티스트의 팔레트' 지역을 연상하게 한다. 땅이 이렇게 여러 가지 빛깔을 가지게 된 까닭은 그 흙 속에 섞인 철 성분이나 유기물질 때문이다. 이를테면 석탄이 섞였으면 검은색, 철 성분이 섞였으면 붉은색, 석회석이 섞였으면 흰색 등 다양한 색을 띠게 된다. 이러한 흙의 다양한 빛깔로 인해 산과 땅은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데스밸리를 연상케 하는 지형


피카초 주립 휴양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휴양지라고 해서 특별한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캠프 그라운드가 하나 있고, 배를 띄울 수 있는 접안시설, 시설관리용 건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변 일대를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마련돼있다. 이곳은 도시와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는 오지인 데다 상업시설이 전혀 없는 지역이므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에 충분한 연료를 채워야 하고, 충분한 물과 음식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물론 캠핑을 하려면 필요한 모든 것, 음식과 식수, 모닥불 용 장작까지 모두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캠프 그라운드/탐방로에 구비된 의자/탐방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휴양지의 호수와 콜로라도 강


이곳에 마련된 탐방로는 한번 걸어볼 만하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콜로라도 강변을 끼고 산으로 난 길은 강과 땅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볼 수 있다. 강과 가까운 습지가 있고, 작은 연못들도 있다. 탐방로 중간중간에는 의자를 마련해놓아 탐방객들의 편의를 살폈다. 강변에 있는 수풀과는 다르게 산에는 나무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사막 지형이다. 대신 선인장이 간간히 있고, 어쩌다 질기 궂은 식물들 몇 종이 있을 뿐 상당히 거칠기만 한 땅이다. 그러면서도 땅이 거친 대신 다양한 산의 모양과 빛깔로 멋진 경치를 보여주므로 무더운 여름철-이곳은 여름철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을 피해 방문한다면 그늘이 없는 탐방로라고 해도 충분히 걸을만하다. 

왼쪽은 배 접안시설, 오른쪽은 탐방로 옆에서 고즈넉히 핀 꽃


휴양지를 벗어나면 주변 산세는 몹시도 험하다. 간간히 풀들은 보이지만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 없고 바위 투성이일 뿐이다. 물론 밖으로 나가는 주도로는 비포장이기는 하나 상태가 좋은 편이라 승용차로도 다닐만하다. 그러나 이 길을 벗어나 좀 더 안으로 들어갈라 치면 길은 예상치 못하게 험해지고 승용차보다 좀 더 높은 차가 필요해진다. 대신 그들이 주는 재미는 큰길과 비할 바가 아니다. 좁다란 바위 사이를 빠져 다니는 재미도 있고, 높직한 바위 옆으로 난 상당히 굴곡진 길을 통과하기도 해야 한다. 많은 생물들이 주는 다채로운 생명 활동으로 인해 생기는 자연현상들에서 느끼는 즐거움과는 분명히 다른 즐거움이 있다. 정해진 길, 흔히 다니는 길, 많이 이용하는 길이 주는 유익함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을 벗어나면 그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세계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가끔씩 큰길에서 벗어나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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