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주마간산도 좋다
자동차 여행을 하다 보면 그야말로 주마간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마간산, 말 그대로 설렁설렁 건성건성 구경한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그저 차를 타고 지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는 곳엔 잠시 머물러 둘러보기도 하고 짧게 걷기도 하면서 둘러보는 여행, 대부분의 시간은 차에 몸을 싣고 있으므로 주마간산이라고 표현해도 할 말은 없는 그런 여행, 이번 여행의 성격이다.
리틀 와일드 호스 캐니언 로드를* 다시 찾았다.
이곳은 몇 해가 지나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 당시에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갔다가 불어난 강물에 길이 막혀 돌아서야 했던 곳이다. 이번에는 그 강까지도 가지 않고 도중에 돌아왔지만 처음에 왔을 때와는 달리 낯이 익어서 그런지 풍경들이 정겹다. 몇 곳이 큰비 때문에 물길이 바뀌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야 몇 해가 지나면 속절없이 변해가지만, 자연에서는 많은 것들이 아주 더디다. 커다란 자연재해가 나지 않는다면 아마 10년을 넘겨도 별도 달라질 것이 없다.
지난 여행에서 캠핑했던 디스퍼스드 캠핑 스폿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천천히 살펴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곳까지 가봤지만 나타나질 않는다. 전체적으로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으 것 같았는데,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캠핑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어서 매우 고즈넉한 시간을 지냈는데, 그동안 이곳이 많이 알려졌는지 주요 캠핑 스폿은 이미 자리가 찼다. 그렇더라도 머물만한 공간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날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이 길을 되짚어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어도 그때와는 햇빛도 햇볕도 바람도 다르고, 무엇보다 그때와는 마음이 영 다르니 분명 그때 봤던 풍경이지만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겉에서 보는 것과 안에 들어와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바라보는 위치, 장소의 차이일 뿐이다. 더 낫고 못하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물을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대하여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좋은 자세는 아닐 것이다. 늘 보는 것만 보는 것보다 다른 쪽을 보려고 하는 것은 삶의 커다란 힘이 될 수도 있다.
이 길을 되짚어 밖으로 나가다 보면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이** 나온다. 이 주립공원까지 이어지는 길가로 펼쳐져 있는 병풍과 같은 바위의 행렬은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다. 저 안쪽은 어떨까? 이어지는 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보기와는 많이 달랐다. 곳곳에 디스퍼스드 캠핑 스폿이 있고, 이미 많은 이들이 텐트를 치거나 캠퍼나 RV를 이용해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괜찮을 것 같다. 이쯤에서 캠핑하면서 리틀 와일드 호스 캐니언 트레일도 하고, 고블린 밸리도 볼 수 있고, 템플 마운틴 트레일도 할 수 있다.
이제 유타 95번 도로를 가보기로 했다.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 길을 나와 유타 24번 도로에서 우회전하면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을 만나기 전에 갈림길이 나온다. 95번 길로 접어들어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계곡에 있는 물길을 따라 길이 나 있고, 길 양편으로 펼쳐지는 병풍과 같은 바위들의 행렬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유타에는 이와 비슷한 길이 수도 없이 있지만, 이곳을 지나노라면 다른 곳들은 생각이 잘 안 난다. 시간을 좀 더 낸다면 여기에서 시작하는 계곡 탐험을 즐겨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높직한 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기도 한다.
글랜 캐니언의 끝자락, 하이트 캐니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하이트 오버룩(Hite Overlook)에 올랐다. 콜로라도 강을 막아 생긴 글랜 캐니언의 파웰 호수는 이 근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끝단, 아니 어쩌면 그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이트 오버룩에 오르면 도도하게 흐르는 콜로라도 강 줄기와 긴 세월 동안 강물과 상호 작용하며 형성된 다양한 모양의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아래 콜로라도 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더티 데빌 강(Dirty Devil River)을 끼고 형성된 다양한 바위 지형들 또한 볼만하다. 시간이 맞는다면 그 근방 어딘가에서 캠핑을 즐길 수도 있고, 하이트 마리나에서 배를 타고 호수 여행을 해 볼 수도 있다.
발길을 돌려 글랜 캐니언의 불프로그 만(Bullfrog Bay)과 연결되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좀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만에 가까워지면서 다양한 빛깔을 띄는데, 이번에는 만까지 가지 않고 그 직전에 국토관리청(BLM; Bureau of Land Management)에서 관리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국토관리청에서 관리하는 도로들은 포장되지 않은 도로들로서 때때로 포장만 안됐을 뿐 승용차로 진입이 가능할 만큼 상태가 좋은 도로도 있지만, 대체로는 깊은 산속이나 넓은 황무지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길을 타고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멋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개발되지 않고 사람의 손길을 덜 탄 자연을 접하는 것은 때로 힘들고 고되기도 하지만, 자연 그래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로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한다.
이 길은 처음 오는 길이지만, 상당히 익숙한 길이기도 하다. 그동안 지도를 통해 꽤 여러 차례 검색을 해봤을 뿐만 아니라 위성지도를 통해 다녀가기를 수차례... 처음 오는 길임에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길은 처음부터 매우 흥미로운 경치를 보여준다. 예상과 다르게 길은 포장되어 있어서 안락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물론 몇 마일 가다가 비포장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포장 구간이라고 해서 주변 경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므로 천천히 즐기면 그뿐이다. 몇 시간을 달렸는데도 마주치는 차를 한 대도 만날 수 없을 만큼 인적이 드문 곳인 데다, 전화도 연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외진 곳에 올 때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비상시를 대비해 여분의 차량 연료를 준비하고, 플랫 타이어 등에 대비하여 정비에 필요한 물품도 필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충분한 물과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날씨의 변화에 대비해 우비와 따뜻한 옷가지 등을 준비해야 한다.
버 트레일 스위치 백(Burr Trail Switchback)은 그동안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고 만지작 거리던 곳이다. 그만큼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왜 그렇게 이곳을 오고 싶어 했을까? 사실 이 구간은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여행을 위해 반드시 와야 하는 구간이다. 전에 이 길이 끝나는 부분에서 시작해야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섰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와서 보니 주변 경치가 뛰어나다. 오기를 잘했다. 스위치백을 오르는 양편의 바위와 나무들이 멋있기도 하지만, 오를수록 한눈에 들어오는 계곡의 풍경이 경이롭다. 한구비 두 구비 돌 때마다 달라지는 저 아래 계곡의 풍경을 기억해두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기도 하고, 사진에 담아두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밸리 오버룩(Strike Valley Overlook)으로 갈 수 있는 길 입구에 도착했다.
스트라이크 밸리 오버룩은 다만 전망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시작하는 트레일 코스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룻밤 신세 지고 아침 일찍 코스를 돌아 저녁나절 내려가고는 한다. 해는 기울어 얼마 안 있으면 서산으로 넘어갈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길이 만만하질 않다. 지도로 공부했을 때는 몰랐는데 길은 울퉁불퉁 자갈과 바위가 많아 속도가 나지 않는다. 마음은 급하고, 속도는 나지 않고 속으로 걱정이 앞선다.
"오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내려올 때는 깜깜한 밤이 될 텐데 괜찮을까?",
"해지기 전에 도착은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차를 돌릴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가면... 가다 보니 주차장이 나왔다. 마침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있어 물어보니 오버룩은 걸어서 언덕을 넘어야 한단다. 머뭇거릴 틈 없이 바로 출발했지만, 길이 여러 갈래인 데다 바위에는 길의 흔적이 사라져 한참을 헤매고 엉뚱한 곳으로 오르기도 하다가 겨우 도착했다.
"아~~~!"
장탄식이 나왔다. 우선은 해가 골짜기 끝 저 산 위에 걸쳐 한순간이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는 골짜기의 위용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스트라이크 밸리의 골짜기는 한눈에도 크고 길게 뻗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솟아있는 바위며 나무며 한눈에 볼 수 있다. 해가 저 아래 있었다면 훨씬 더 다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짙은 아쉬움이 배어 나오는 까닭이다. 그렇더라도 지금이라도, 아직 해가 있을 때 도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지런히 스케치를 마치고 나니 어둑어둑 땅거미가 몰려와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쉬움은 다시 여행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기도 하니 고이 간직해야겠다.
*리틀 와일드 호스 캐니언 길과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 대한 좀 더 상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