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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Apr 16. 2020

캘리포니아 양귀비 보호구역

이 또한 지나가리니

고통받는 사람이 나날이 빠르게 늘어나고있다.

그런 가운데 사람 말고는 모든 것이 다 좋아지고 있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분다.

해는 제시간에 떠서 제시간에 지기를 거듭하고,

달은 휘영청 밤하늘을 지킨다.

여전하게도 하늘에는 구름이 걸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들에는 꽃들이 흐드러졌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자

망가졌던 들녘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줄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바닷가엔

갖은 바다 생명들이 나와 춤을 춘다.


캘리포니아 양귀비 보호구역에 흐드러진 양귀비


지난해 개화가 썩 좋지 않았던 양귀비가

올해는 온 들녘에 널브러졌다, 공교롭게도.

캘리포니아 양귀비 보호구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양귀비가 피면

드넓은 지역이 온통 붉은 양귀비로 뒤덮인다.


해마다 이맘때면 인산인해,

길에 가득 찬 차량들로 좀처럼 앞으로 가기 어려워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올해는 공원으로 가는 길은 물론이고,

공원 안에도 인적이 적어 오히려 쓸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공원 레인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잊은 사람은 없는지

그 넓은 공원 안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꽃구경이 소흘 해지다가도

어느 순간 꽃에 홀려 짐짓 모른 척

꽃놀이에 빠져든다.


생명은 구역에 가둘 수 없다 - 보호구역 밖에서 만발한 들꽃들


사람의 일이 아무리 번잡하고 황망해도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의 때에 따라,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지체 없다.

그 사이 지치는 것은 사람이고,

목놓아 우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냈으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날이 왔을까?

사람이 얼마나 흔들어 놨으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 지구를 뒤덮을까?


어느 따뜻한 봄날,

검붉은 양귀비가 피었다.

세찬 바람이 온 들녘에 가득하다.

꽃잎은 지고, 아우성도 잦아들겠지,

시나브로, 제발.


 

들녘을 가로지르는 길 옆으로 온통 양귀비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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