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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Apr 08. 2017

미국의 국립공원, 그랜드 캐니언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 I

"나는 여행 중독에 빠진 걸까?"

길을 나서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많이 생긴다. 기대에 부풀어 떠난 어떤 길에서는 실망을 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기대는커녕 그저 무심코 들른 곳에서 황홀한 광경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시간에 맞춰 떠나려 하다가 일이 생겨 미처 떠나지 못했는데, 막상 떠나고 보니 막히고 있던 길이 막 풀리고 있어 결국 예상된 시간에 도착하기도 한다. 이런 맛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또 길을 나서고 싶어 지는가 보다. 여기에도 어떤 홀림이 있지 않을까? 


여행, 자유로운 비행과 같은 것은 아닐까?


"여행은 시간의 억류"

주말여행은 거리, 즉 시간과의 싸움이다. 보통 여행 거리가 왕복 1,500킬로미터 에서 멀게는 2,000킬로미터를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거리를 주말에 다녀오고는 하는데,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다음 날 새벽녘에 도착하면 결국 토요일 하루 구경하고, 월요일부터는 일을 해야 하므로 일요일은 집으로 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이력이 난다. 운전도, 새우잠도, 간이 음식도, 입는데도... 그리고는 여행에 집중하게 된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그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으려고 한다. 서툰 솜씨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휘발성 강한 내 기억을 보완하고, 가까이 다가가 그곳에서 작은 모습으로 살거나 낮은 소리를 내는 것들을 담아내려고 애도 써본다.


이유야 어찌 됐든 여행은 즐겁다. 약속 시간에 맞춰 어딜 가야 하고, 자기주장이 난무하는 사람들 속에서 내 속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얼굴 붉히지 말고 자기감정을 잘 다스려야 하는 긴장된 관계의 일상이, 때로는 별 문제가 없다가도 느닷없이 검붉은 덩어리들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면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들어질 때가 있다. 


여행은 이 모든 것이 잠시, 아주 잠시 보류되는 시간의 억류다. 모든 것을 잊고 그 여정에 몸을 맞기 노라면, 어느 듯 긴장은 완화되고 삶은 다시 원점으로 환원되어 힘으로 쌓인다. 요즘 들어 자꾸 길을 떠나고 싶은 것도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랜드 캐니언, 어느 포인트인지는 모르겠다. 유구한 세월과 장엄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랜드 캐니언을 둘러보는 방식"

어디를 둘러보고 여행하는 데 어떤 특정한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곳을 둘러봐야하는 여행의 특성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도 좋겠지만, 여행이라는 것을 어디를 다녀왔다는 경험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첫인상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규모 면에서 그동안 봐왔던 계곡 가운데 가장 크고, 깊고 길다는 것이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자연이 빚어낸 작품이 이렇게 대단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마련된 전망대마다 제각각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랜드 캐니언의 특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내서에 나와있는 대로, 그리고 누군가가 추천한 대로 그랜드 캐니언의 진수를 보려면 아무래도 계곡 아래로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 나 같은 주말 여행객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좀 더 높이 올라가 조망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아마도 헬기 관광이나 열기구를 이용한 관광 상품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이 역시 내게는 별로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다. 


그랜드 캐니언은 돌아보면 볼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곳이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하다. 저마다 다른 기대와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왔을테니, 자연이 배설해 놓은 압도적인 경치 앞에 어떤 감정들 일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경치를 즐기는 방식도 참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천천히 걸으며 두런두런 담소도 나누고 이따금 사진도 찍는다. 또 어떤 이들은 한 곳에 머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는 듯하다. 몇몇 젊은이들은 단순한 운동복 차림으로 천천히 달리면서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많지 않은 듯 급한 발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다 사진 몇 장 찍고는 장소를 옮긴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대자연의 깊은 감동을 화폭에 담아 간직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늘과 땅과 바람이 어우러져 연주하는 이 대자연의 교향곡 앞에서 어느 누구인들 코웃음 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홀로, 또 어떤 이는 연인과 함께, 또 어떤 이는 가족들과 함께 이 감동의 시간 속으로 스며든다. 


방문자들의 표정은 참 다양하다.


드디어 해가 지고 있다. 과연 그랜드캐년의 석양은 어떨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심장이 뛰며 마음이 좀 급해졌다. 어디서 석양을 맞을까? 그랜드캐년의 일몰 포인트가 어딜까?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본 전망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전망대의 방향, 그랜드캐년의 전망, 일몰에 어울리는 경관, 결정적으로 이동 거리와 시간... 이렇게 따지고 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시간을 잘못 계산했기 때문이다.   


해지는 그랜드 캐니언을 마주하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이 있다.  

노 부부가 함께 지는 해를 보며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그 휘황한 향연을 잠잠히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들의 노후가 함께하는 서로로 인하여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들을 보면서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야 할지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황혼에 맞는 황혼


하늘에서는 마치 불이 난 듯, 온 세상이 타오르고 있었다. 한 처음 세상이 만들어질 때가 이랬을까? 

아직 너와 나, 이것과 저것, 하늘과 땅이 나눠지기 이전 혼돈의 상태가 이랬을까? 

전쟁과 기근, 테러와 살육, 증오와 무관심, 탐욕과 허영...으로 혼란에 빠진 이 땅을 리셋시킨다면 이렇게 될까? 


화려했던 일몰의 시간이 지나자 분주했던 그랜드캐년도 고요 속에 잠긴다. 

하늘엔 여전히 푸른빛이 역력하여 길을 밝히고 있지만, 

일몰의 화려한 빛깔 대신 차분하게 가라앉아 내일을 위해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그랜드 캐니언의 석양, 불타는 지평선은 새로운 내일을 위한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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