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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Apr 01. 2017

제주엔 유채,
캘리포니아엔 양귀비

앤틸로프 밸리 캘리포니아 양귀비 보호구역(Poppy Reserve)



꽃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마음은 동서를 막론하고 비슷한가 보다. 꽃을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일까? 해마다 삼사월이면 사람들은 꽃놀이하느라 여념이 없다. 방송에서도 올해에는 어디에 무슨 꽃이 만발하였고, 사람들이 몰리고 있으며, 또 어디에는 예년만 못해서 사람의 발길이 뜸하다는 등의 소식을 꼼꼼히 전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도 예외는 아니라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곳에는 주말마다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는 한다. 특히 지난겨울에 많은 비가 내린 캘리포니아는 봄이 되면서 올해는 야생화가 많이 피는 슈퍼 블룸(Super Bloom)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야생화는 어떨 때 잘 피나? 

들꽃이 피는 데는 비와 기온이 큰 영향을 끼친다. 비가 얼마큼 오느냐는 들꽃이 피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비가 적게 내리면 들꽃이 피지 않거나, 펴도 적게 핀다. 캘리포니아는 최근 몇 년 동안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으니, 그동안 들꽃이 흐드러질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비가 넉넉히 오는 바람에 들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기온 또한 들꽃이 피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들꽃이 언제 피는지는 날씨에게 물어봐야 한다. 온도가 낮으면 아예 싹이 트질 않거나, 얼어 죽거나, 아니면 꽃이 늦게 피어난다. 반대로 온도가 높으면 싹이 일찍 터 들꽃이 피는 때를 앞당기게 된다. 물론 들꽃이 피는 데 많은 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적절할 때, 적절한 만큼 내려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거리와 들판엔 이미 인산인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이번만큼은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에는 지나치게 심한 가뭄 때문에 양귀비 보호구역 내 어떤 곳에서도 양귀비를 볼 수 없었는데, 올해는 그동안의 가뭄이 해갈될 만큼 많은 비가 내려줬으니, 아무리 못해도 양귀비를 볼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니 좀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차량이 많아지면서 속도도 느려지는 것이 조짐이 심상치 않던 차에 기어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아! 파피 꽃 볼 생각에 들떠서 여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캘리포니아에는 지난해 파피를 보지 못한 삼천팔백만 명의 인구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다. 시기가 아직 이른데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장사진을 쳤다.  사실 앤틸로프 밸리의 양귀비 보호구역은 3월 중순경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4월 중순경에 절정에 다다렀다가 4월 말쯤 되면 꽃이 사그라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이미 인산인해다. 단지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더욱 느려질 수밖에 없다. 



천하일색 양귀비와 놀아볼까!

꽃은 단지 안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인공으로 가꾸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번식하고 자라고 피는 꽃이기 때문에 꽃씨가 바람에도 날리고, 새들이 옮기고, 짐승들도 옮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꽃이 자라는 지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질 수밖에 없다. 단지까지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았는데도 도로 주변의 야트막한 둔덕에는 파피가 활짝 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꽃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시간 정해놓고 가는 길이 아니니 쉬어간다고 누가 뭐랄 사람 없다. 사람들 틈에 끼어 사진도 찍고 꽃구경도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파피가 피는 언덕

그랬다. 멀리서 본 단지의 상황은 아직 절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지나온 길이기 때문에 단지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여기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입장료를 내고라도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겹겹이 이어진 수많은 동산을 뒤덮은 파피의 장관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다. 파피 단지라고 해서 그 안에 파피꽃만 피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야생화들이 군락지를 형성하기도 하고, 저들의 생태에 따라서 파피와 다른 야생화들이 치열한 싸움 후에 보여주는 화려한 장관을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은 좀 이른 시기이다 보니까 그런 장관을 볼 수는 없다. 낮은 곳에서부터 피기 시작해서 높은 곳으로 향하는 야생화의 개화 특성상 저 동산들은 온통 뒤덮으려면 몇 주는 더 기다려야 할 터이다. 이 정도만 해도 대 만족이다. 이미 지난해보다는 훨씬 더 많은 꽃이 피었지 않은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차는 서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차를 돌리기로 했다. 언제 도착할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더 이상 가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 모들 들꽃들이 마음을 설레게 하네

길을 돌아서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주변이 한층 더 세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가는 동안 좀 조바심이 났었나 보다. 갈 때는 잘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한가로이 주변을 돌아보다 파피들이 모여있는 길 건너 편의 또 다른 야생화 군락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럴 수가! 노랑꽃들은 이미 절정을 이루며 온통 들녘을 수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파피에 정신이 팔려 이곳엔 관심조차 없었다. 차를 멈추고 그들과 대면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물론 꽃 이름을 알지는 못하지만, 여린 꽃줄기를 기둥 삼아 피어난 꽃들이 얼마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다가가 잠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꽃을 대할 때, 자신을 좀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꽃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들과는 좀 다른 한 사람을 만났다. 바람이 거센 그 들녘의 꽃무리 속에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 기타를 치며 한 곡조 뽑는 사내를 만났다. 그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는 사진기를 꺼내 셀피를 찍지는 않았다. 그저 그 바람을 느끼고, 꽃을 마시며 노래를 부른다. 적절할지 모르지만 음유시인에 다름 아니다. 



홀로 있어도 예쁘지 않은가!

파피가 절정을 이룰 때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의 이 느낌이라면 굳이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함께 모여 장관을 이룰 때도 예쁘고 홀로 피어 외로워 보일 때도 예쁘지 않은가? 화려한 꽃잎을 내리고 후세를 위한 씨방을 만들 때도 또한 그들은 예쁘고, 아름답다. 한편에서는 봉우리를 꽃피우고, 또 한편에서는 화려함의 막을 내려 생명을 갈음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또한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라고 사람의 가치를 노래하는 그만큼 꽃들도 예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홀로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꽃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사람이 이 땅에 있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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