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자의 여행 생각
감사의 말씀
다녀온 곳을 다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이런저런 여행기를 몇 편 써서 브런치에 올리곤 했다. 어떤 글은 사랑을 받고 어떤 글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분이 한 두 명씩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글을 쓸 수 있도록 격려도 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한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이 기회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일상 속으로 초대
분주한 일상을 사느라 여행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힘들어 주로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다녀오고는 한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여행을 하려고 애는 쓰지만, 맘처럼 되면 그게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겠지. 그래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가까운 곳에라도 여행을 다녀오려고 참 많이 애를 쓰고 있다. 여행을 다녀오면 이어서 그다음 여행을 생각하게 되고, 때로는 미리 목록을 만들어 놓기도 하면서 꼭 가고 싶은 곳과 한번 가보고 싶은 곳 등으로 분류해 보기도 한다. 평일에는 틈 날 때마다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하다가, 다음 여행 갈 곳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잠시 딴전을 피기도 한다. 저녁나절에는 책상머리에 앉아 어디 갈 만한 곳 없나 여기저기 인터넷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이제는 일상을 여행하듯 살아간다. 젊은 시절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거나, 여름휴가나 여행을 다녀오면 그 여운에서 벗어나기가 참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졌다. 일상이 여행이요, 여행이 일상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쉬웠던 여행들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들을 돌아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있다. 자이온 국립공원은 두 번씩이나 다녀왔는데도 정작 그곳의 진수랄 수 있는 공원 내 트레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트레일을 통해 캐년의 구석구석을 조망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이온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권장되고 있는 방문코스이기도 하다.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도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도 겨울 외 풍경은 보질 못했다. 눈 내린 브라이스는 익숙한데, 푸르른 나뭇잎과 함께하는 붉은 바위 군상들은 보질 못했다.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은 어떤가? 평소에 비포장 도로를 좋아하다 보니 공원 내 비포장 길을 무턱대고 들어갔다. 이 공원의 진수는 수백 마일에 달하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볼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잘 닦여진 도로를 달릴 때와는 많이 다른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의 손때가 별로 묻지 않은 거친 자연의 아름다움이랄까?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이곳의 비포장 길은 국립공원 구역이라고 해도 거의 관리자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게다가 거의 오지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전화나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는다. 잘못하면 '조난'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상태에 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 나올 수 있었다. 진흙탕 언덕길에서 종잡을 수 없이 미끄러지는 이륜구동 차량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지나는 차도 없고, 전화도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 두시간여 사투 끝에 겨우 간 길을 되돌아 나올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아쉬움이 남았을까?
Zion National Park / Bryce Canyon National Pakr / Capitol Reef National Park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을 찾았을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사막 지역을 여름에 방문했으니 말해 뭐할까만, 사실 더위 보다도 거센 바람 때문에 제대로 둘러보질 못하고 지나친 곳이 꽤 있는 곳이다. 캐년 랜즈 국립공원은 또다시 이륜구동 소유자의 비참한 말로(?)를 겪은 곳이다. 그래서 차량을 사륜 구동으로 바꿔보려고 지금도 궁리하게 한 여행이다. 이날도 비포장 애호가의 속성대로 눈에 띄는 비포장길을 쑥 들어갔었다. 주변 경치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했다. 그곳의 특성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며, 그 바위 틈새로 비집고 자라는 나무들의 멋들어진 모습 하며... 그러나 그렇게 경치에 취해 가는 길은 갑자기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는 여행은 계속되었다. 첫 번 방문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다시 찾은 아치스 국립공원의 황홀한 석양에 물들어가는 뾰족 바위 들은 그러나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중간쯤에서 돌아서야 했다.
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 / Canyonlands National Park / Arches National Park
아쉬운 마음에 정해진 시간 전에 밖으로 나가라는 경고 팻말을 무시하고 어두워질 때까지 머물다 길을 잃고 헤맸던 모뉴먼트 밸리의 기억이 새롭다.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해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한밤중에 한 시간여를 off roadng을 했던 케년 드 세이 공원, 길도 모르면서 들어선 오지에서 해 떨어지면서 길을 헤맸던 비스타이 배드랜즈 등 사실 지나고 보면 추억일 수도 있는 자잘한 사건 사고는 늘 그곳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남긴다. 한번 갔던 곳을 다시 찾는 이유 중에 이렇게 진하게 남아있는 아쉬운 마음이 한몫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 Canyon De Chelly Naional Monument / Bisti Badlands
여행은 늘 아쉽다
한때는 한 번 간 곳을 두 번 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다닌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무도를 배우는 사람이 소위 '도장 깨기'를 하듯 여행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번 다녀온 곳이 다시 기억 속에 머물다 문득문득 현실 속에 튀어나와 말을 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폐쇄했던 도장의 문을 열고 고이 간직된 기억의 부자재들을 소환하고는 한다. 아니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아쉬움이 남아야 한다. 아니, 남을 수밖에 없다. 어떤 여행을 하든지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이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기대를 낮춘다고 해도 막상 여행길에 나서고 보면 일상의 생활과 여행이라는 속성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차이의 틈에서 아쉬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틈을 조금이라도 좁혀보려고 여행지에서 며칠간, 몇 주간, 심지어는 몇 달씩 머물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행자는 머문 곳을 이탈해야만 한다. 그래서 간극을 좁혀보려고 좀 더 머문 기간 때문에 오히여 더 진한 아쉬움을 남기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여행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된다. 늘 아쉬움이 남고, 무엇인가 좀 모자란 듯하고, 안정되어 있지 않은 삶이 결국은 여행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아쉬움과 교집합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밤과 낮이 교차하는 지점 어디쯤에서 아직 숙성되지 않은 빛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그 설렘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설왕설래하는 일상의 어지러운 풍경을, 간직했던 그 설렘으로 잠시나마 묶어두고 싶다. 이미 오래전에 빛바랜 어린 왕자의 꿈이 오늘만큼은 되살아나 이 어지러운 살풍경을 잠시라도 가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여행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