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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at 주말
by 빛에 홀리다 Sep 09. 2017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Capitol Reef National Park)

프롤로그

미국 유타(Utah) 주에는  자이온(Zion),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 아치스(Arches), 캐년 랜즈(Canyonlands), 그리고 캐피톨 리프(Capitol Reef)  등 모두 다섯 곳의 국립공원이 있다. 이들의 위치가 자이온과 브라이스 캐년, 아치스와 캐년 랜즈는 서로 인접해 있어서 두 공원을 한 번의 코스로 묶어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캐피톨 리프는 이들 공원 공동체(?)에서 똑같이 2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거나, 공원 공동체 사이를 이동하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캐피톨 리프는 잘 안 가게 되는 공원, 혹은 가는 길목에 잠시 들렀다 가는 공원 정도의 생각으로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많은 분들의 여행기를 보면 이런 개념으로 잠시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국립공원이든  잠시 지나는 길에 들러 구경하고 지나가도 될 만큼 내용이 부실한 국립공원은 없는 것 같다. 규모에 상관없이, 거리에 관계없이, 방문객의 수에는 더더욱 관련 없이 국립으로 지정된 공원 가운데 어느 한 곳도 볼 만한 이유가 부족한 공원은 없지 않을까? 단지 여행하는 사람의 기호와 편의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ㅣ여행의 정석

캐피톨 리프는 다른 국립공원과 다르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보통 국립공원 입장료는 30불인데 공원 입구에 매표소가 있거나, 없다면 방문자 센터에서 표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 조차도 없다. 원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사전 허가 없이 입장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은 자기 책임하에 있다(단, 방문자 센터 앞에서 시작하는 시닉 드라이브는 별도의 입장료가 있다. 방문자가 직접 봉투에 담아 통에 넣으면 된다. 또한 백컨트리에서 숙박을 할 경우는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공원 레인저가 순찰을 돌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공원 측에서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의 위험 지역을 방문하고자 할 때는 미리 방문자 센터에 문의하여 위험 요인이 있는지, 들어가도 괜찮은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으며, 다소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자신의 행선지를 방문자 센터에 알려놓는 것이 좋다. 

방문자 센터도 주변 환경에 빛깔 맞춤했다


Image from https://www.nps.gov/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은 면적만 본다면 유타주의 국립공원 가운데 캐년 랜즈 다음으로 넓다. 넓은 대신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형태를 띠고 있는데,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는 동서로 난 도로가 유일하다. 이 길 중간 즈음에 방문자 센터가 있고, 캠프 그라운드도 있고, 과수원도 있다. 그러나 지질학적 특성상 공원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원 중간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유타 24번 도로를 타고 가면서 주변 경관을 보다가 방문자 센터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시닉 드라이브(Scenic Drive)를 들어갔다 돌아 나와 방문자 센터에서 공원을 빠져나가는 노선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이 구간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보통 캐피톨 리프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사진들이다. 유타 24번 도로 주변이나, 공원 내 시닉 드라이브 주변의 바위들을 보다 보면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대단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서 좀 더 안쪽으로 더 탐험해 볼 수 있는 트레일 코스도 몇 개 마련되어 있으니, 그리 길지 않은 거리를 잠시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잘 포장되어 있는 24번 도로를 가다 보면 몇 곳에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다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빚어낸 결과물들이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지니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더구나 캐피톨 리프의 젖줄과도 같은 프리몬트 강(Fremont River)을 끼고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므로 더운 여름이라면 잠시 내려 강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며 한 때를 보낼 수도 있다.

24번을 동에서 서로 이동할 경우 이 경치를 볼 수 있다. 

                                [24번을 서에서 동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



ㅣ주변에 흠뻑 취해보자

주변 경치에 취해 앞으로 가다 보면 어느 틈엔가 방문자 센터가 있는 과수원 지역(Fruita)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18세기 말엽에 몰몬교 개척자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던 곳이다. 그들은 이곳의 풍부한 프리몬트(Fremont River) 강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과수원을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국립공원 측에서 과일이 익는 철에 누구든지 마음껏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시간이 좀 된다면 방문자 센터 주변에 있는 과수원(Fruita)에 들러 운대가 맞으면 제철 과일을 마음껏 먹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라면 방문자 센터에서 시닉 드라이브(Scenic Drive)를 타고 2-3분 여만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캠프그라운드에서 하룻밤을 보내보는 것도 좋은 추억 거리가 될 것이다. 캠프그라운드는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운이 좋다면 정말로 한가하고 여유로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요즘 같이 더운 여름이라면 텐트 옆에 간이의자를 놓고 편안한 자세로 걸터앉아 멋들어진 바위들 사이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노라면 한낮의 더위는 기억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지! 얼음으로 쟁여놓은 시원한 맥주 한 캔 흡입한다면?

공원 내 캠프 그라운드에서 지는 해와 뜨는 해를 맞아보자
어스름 햇살은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든다


해가 떨어지면 잠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을 한번 산책해 보는 것도 좋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과일나무들,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오락가락하는 다람쥐들과 아직 해가 있을 때 먹이를 찾으려는 이름 모를 산새들, 그리고 아직 블루 아워(Blue Hour)에 옥색을 띠고 있는 하늘 사이로 실바람이 살짝 스치고, 구름은 이제 붉게 타올라 장관을 연출하는 하늘 길 아래를 천천히 거니는 것은 어떨까? 불타는 구름이 서서히 빛을 잃어갈 무렵, 어느 구석 한적한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떨어진 태양 대신 떠오른 수많은 별, 별, 은하수라도 한번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캠프그라운드의 불빛이 방해가 된다면 역시 한 5분 정도만 벗어나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별 세례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어스름 동틀 무렵의 햇살에 기대어 하루를 시작하자. 또 다른 하루는 이렇게 밝은 아침 햇살에 실려 왔을 테니.

푸루타(Fruita) 길 건너 편에는 이렇듯 역사의 흔적(Pictograp)이 남아있다
캠프장 뒤켠엔 휘영청 달이 밝았다
아침엔 모든 것들이 되살아난다!



ㅣ시닉 드라이브를 달려보자

방문자 센터에서 시작하는 시닉 드라이(Scenic Drive)는 약 8마일의 포장도로를 주행하면서 주변 경관을 보고 돌아 나오게 되어 있는데, 중간중간에 두세 곳의 트레일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이 구간의 경치는 길 이름이 암시하듯이 기묘한 모양의 바위 군상들이 빚은 자연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하는 '캐피톨 고지(Capitol Gorge)'라는 비포장 길로 된 협곡은 들어갔다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국립공원 못지않은 경치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엔 SUV 차량이 아니라서 망설였지만, 일반 차량으로도 충분히 다녀올 만하다. 원시적인 덜컹거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좁은 길이라서 차량이 교차할 수 없는 구간이 꽤 되므로 서로서로 양보하고 주의하면서 다녀오면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캐피톨 고지는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다. 


햇살 좋은 아침이라면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게 차창은 열어둔 채로 길을 달려보자. 아직 강렬해지기 전의 아침 햇살을 받은 바위 군상들이 깊은 음영을 드리운 채 흥미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길을 천천히 달리는 기분, 더구나 멀리 떠난 여행지에서 낯선 공기를 마시며 맞은 아침 햇살이 서서히 가슴속으로 스미기 시작할 무렵의 그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그냥 좋다. 햇살이 뜨거운 한낮이라면 어떤가. 그때는 또 나름대로, 늘어선 산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울 무렵이라면 또 그대로 그들은 이미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상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들이 아니던가! 매일같이 부딪치며 얼굴 붉히던 그 앙상한 가지들은 아니지 않은가! 땡볕에 땀은 좀 흘릴지는 모르지만, 만면에 희색을 띠며 희희낙락할 수 있을 것이다.

햇살은 참 묘하다. 시간에 따라 만물의 모습을 부드럽게, 또는 강렬하게, 때로는 아련하게 보이게 만든다. 


여기까지 해봤으면 캐피톨 리프를 충분히 즐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앞의 공원 지도에서 보듯이 공원이 길쭉하게 생겨서 그 길이가 자그마치 100마일(160km)이나 된다. 서울에서 논산 즈음까지 가는 거리만큼 된다. 그런데 이 공원의 허리 부분만 뚝 잘라서 본 것 가지고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어떤 장소든 그 장소만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곳에서 충분히 즐겼다면 여행의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곳만 보면 다른 곳은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하게 대표성이 있다면 편의상 그곳에서 멈추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캐피톨 리프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왠지 그 규모에게 좀 미안하다. 이곳을 충분히 보려면 나머지 두 구간도 돌아보는 것이 좋다. 즉, 북쪽 지역인 '대성당 지구(Cathedral District)'와 남쪽 지역인 '워터 포켓 지구(Waterpocket District)'를 돌아보아야만 캐피톨 리프는 거의 충분히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성당 구간은 약 70여 마일, 워터 포켓 구간은 약 100여 마일을 자동차로 달려야  한다. 이 두 구간은 대부분 비포장이며, 비나 눈이 오면 진입이 제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을 둘러보려면 적어도 꽉 차게 하루, 많으면 이틀은 이곳에서 머물며 돌아보아야 그나마 제대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구간은 기상 여건이 괜찮은 경우에 일반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전구간을 안전하게 돌아보려면 사륜구동 SUV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캐피톨 리프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분하게 즐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ㅣ메사(Mesa)와 뷰트(Butte)

24번 선상 고블린 밸리 주립 공원 입구에 당당하게 서있는 자연 조형물의 위용

캐피톨 리프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이곳에서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어느 곳을 다녀오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캐피톨 리프 공원에 다가갈수록 어느 곳으로 진입해야 할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공원을 진입할 때 매표소가 없고, 길가에 서 있는 표지판이 공원의 시작을 알릴 뿐이다.  유타 24번 도로를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다 보면 일정 구간을 지나면서부터 아직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경관이 눈에 띄게 바뀌는 부분이 나타나고, 도로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길들이 간간히 보인다. 그 도중에 콜로라도 강의 상류인 산 라파엘 강(San Rafael River)도 지나고,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Goblin Valley State Park)과 행크스 빌(Hanksvill)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경치가 달라지게 되는데, 캐피톨 리프 공원의 예고편쯤으로 생각하고 감상하면 적당하다. 


내리막 길을 다 내려가서 어느 만큼 가다 보면 주변의 경치는 '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치가 나타난다. 특히 메사(Mesa; 산의 꼭대기는 평탄하고, 언덕은 급경사를 이루는 모양의 산을 말한다. 그랜드 캐년, 캐년 랜즈 등)나 뷰트(Butte; 메사의 침식이 훨씬 더 많이 진행되어 규모가 작아진 산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바위 기둥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뉴먼트 밸리 등)가 곳곳에 있는 굴곡진 지형은 마치 외계의 어느 곳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의 토양은 유타의 다른 곳이 황토의 붉은빛인데 비해 청회색과 황토가 섞여있는 오묘한 색상의 바위들이 일품이다. 아마도 미대륙 횡단 도로인 70번 프리웨이를 이용해본 독자들이라면 눈에 익은 지형일 것이다. 70번 프리웨이 유타-콜로라도 구간의 양편에 이런 지형의 바위들이 있으니 말이다. 


유타 24번 도로 선상에는 이곳에서 갈라져 나가는 비포장 길이 꽤 여럿이 있다. 시간이 된다면 이 길을 타고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특히 콜마인 로드(Coal Mine Road)가 있는 주변 지역은 특별히 스윙암 시티(Swing Arm City)라는 OHV(Off-Highway Vehicles; ATV와 유사한 개념의 탈 것들을 말한) 구역이 있어서 오프로드를 즐기려는 마니아들로 북적인다.  OHV를 즐기지 않더라도 이 지역의 경관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잠시 멈춰서 주변 경치를 감상해보면 좋을 것이다.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일전에 공개된 켄 블락(Ken Block)의 짐카나 영상 '테라 카나(Terrakhana)'를 기억할 것이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 '스윙암 시티'다. 



ㅣ대성당 지구(Cathedral Valley Distric)

어느 길이든 막혀있지 않으면 진입이 가능하므로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이 길들을 하나하나 탐색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길든 짧든 길들은 저마다 다른 풍경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므로 어떤 길을 선택하든 독특한 그곳의 경치를 감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길 길거리며 가다 보면 다른 곳과 좀 다른 지형을 보이는 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 길은 곧 끝날 것 같으면서도 이어지고, 이어질 것 같은 곳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면서 즐거움을 준다. 덜컹덜컹 비포장 도로는 멋진 빛깔의 바위들이 주는 즐거움과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수려한 풍경에 취해 가다 보니 길섶에 느닷없이 푯말이 하나 나타난다. 바로 이곳부터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구역이라는 표시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공원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멋진 경치를 보여줬단 말은 공원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더 멋질까! 기대가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길의 진입로 입구에 안내는 없었지만, 이 길이 바로 '대성당 계곡(Cathedral Valley)'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길은 갈수록 좀 더 험해지기 시작했다. 와시(Wash;  비가 오면 물이 흐르지만, 평소에는 마른 하천을 말한다)를 건너야 하는데 턱이 높아 바로 지나가질 못하고 일단 차를 세웠다. 주변의 돌을 모아 턱을 낮추고서야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이런 와시가 한 둘이 아니다. 사륜구동 SUV가 간절해지는 이유다. 차를 세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느라, 험한 길을 좀 다독이느라 진행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 덕에 주변의 풍경은 좀 더 오랜 시간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 진입하기 전에 보았던 콜마인 로드 주변의 지형과는 아주 다른 형세를 하고 있다.  빛깔도 아주 다양하다. 형형색색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다양한 빛깔의 바위들이 저마다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떤 바위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고, 어떤 녀석은 커다란 키를 자랑하고 있다.  드넓은 벌판에 불쑥불쑥 솓아있는 바위 군상들은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둘러서 있다가도 능선을 타고 내려오던 바위들이 갑자기 사라져 홀로 서 있는 뷰트로 바뀐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에 왜 '대성당(Cathedral)'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 같다. 끝없이 너른 벌판에 불쑥불쑥 솓은 바위들이 서있는 모양이 마치 유럽의 고풍스러운 대성당의 첨탑을 연상케 한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겠지만, 정교하게 조각한 듯이 세겨진 바위의 굴곡과 모양, 일부러 정리해 놓은 듯이 가지런히 서있는 병풍 바위들, 떨어질 듯 말 듯 바위 꼭대기에 올라있는 바위 고명들, 개발하기 어려운 지형이 이 모든 것을 보존하는 데는 차라리 잘 된 일인 것 같다.


ㅣ두 시간의 사투 그리고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지역은 날이 좋을 때는 승용차로도 진입이 가능하지만, 날이 좋지 않을 때는 승용차는 물론이고 SUV도 사륜구동이 아니면 진입을 자제해야 하는 구역이다. 곳곳에 와시(Wash)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길도 비가 오면 진흙길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길을 진입할 때 보이던 해가 스멀스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틈엔가 까맣게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비라도 오는 날에는 고생고생 생고생, 심하면 조난... 가던 길을 다 가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전화 통화는 되질 않지만, 위성 기능을 이용해 현재 위치는 확인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온 길을 되짚어 나가는 것은 멀기도 하려니와 험한 길을 다시 가려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가던 길을 마저 가던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던지.  지도 앱을 열어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보니, 마침 가던 길 말고 큰길까지 연결되는 다른 우회로가 있는 것 같다. 거리도 더 짧아 보이고.


처음 산길에는 자갈이 많기는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선택한 길은 산으로 나 있었다. 아마도 저 멀리서 보이던 산을 넘어가야 하는 모양이다. 불안했다. 엉뚱한 길이면 어쩌나, 길이 험해 난감한 경우가 생기면 어쩌나 염려하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전진했다. 산을 올려다보니 산에는 쌓인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설마 저 눈 쌓인 곳을 넘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예상했던 만큼 길이 험하지는 않았다. 언덕이 가파르고 자갈이 많이 깔려 있어 안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갈만했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니 모퉁이가 보였다.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인가 희망이 보일 것 같은 기대감이 밀려왔다. 제발... 모퉁이를 돌자 길에 깔려있던 자갈도 보이지 않고, 뭔가 편안하게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기대도 잠시, 아! 부드러운 흙을 지나던 차가 갑자기 옆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감이 잡히질 않아 다시 조심해서 핸들을 돌리고 가속페달을 밟자 차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린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뭔 일이 있구나!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웬걸 부드러워 보이던 흙은 겉만 살짝 마른 진흙 길, 그리고 그 속은 아직 녹지 않은 빙판이었다. 막막했다. 전화도 인터넷도, 지나는 차도 없는 산길, 여기까지 오는 두 시간여 동안 다른 차를 한 대도 만나질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두 시간의 사투가 시작됐다. 주변의 나뭇가지며, 차에 실렸던 판때기며, 돌, 자갈.. 쓸만한 물건은 다 동원했다. 그리고 드디어 두 시간만에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방향은... 온 길을 되돌아 나가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먹장구름이 몰려오기는 했어도 빗방울은 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들어갈 때 보았던 경치건만, 그 일을 겪고보니 또 다른 경치를 보는 것처럼 새롭고 훨씬 더 아름다웠다. 



ㅣ에필로그

워터 포켓 지구로 가는 길, 도중에 돌아서서  아쉬웠던 길.

나중에 확인해 보니 대성당 지구에서 가장 웅장하고 멋진 경치가 있는 지역에는 미처 가지도 못했다. 조금만 더 갔어도 볼 수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짙어진다. 그리고 워터 포켓 지구(Waterpocket District)도 비슷한 까닭으로 중도에 돌아서야만 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경관이 가장 좋은 부분만 빠졌다. 두 번에 걸쳐 이런저런 시도를 했는데도 아직 충분하게 캐피톨 리프를 즐기지 못한 마음에 서운하기 이를 데 없다. 많은 경우 여행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쉬움을 남긴다. 이번 여행은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여행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쉽고 서운한 것이 어디 여행뿐이랴. 매 시간 온 힘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늘 부족한 것이 생기고, 못 미친 것이 늘어나고, 미안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 이거늘. 해 줄 것 못해 줘서 미안하고, 할 말 다 하지 못해 아쉽고, 한다고 하는데도 늘 씨줄과 날줄은 하나씩 빠져 훤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날이 거듭될수록, 아쉬움이 커질수록 생활은 더욱 활기 있어지고,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맞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쉬움은 새로운 출발은 위한 훌륭한 자양이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더위도 한풀 껶였다. 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느라 지친 내게 위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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