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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an 14. 2018

제5 계절

태평양 연안, 1월에 핀 들꽃





  캘리포니아, 그중에서도 로스앤젤레스 인근은 1월의 평균 기온이 섭씨 13도 정도를 유지하므로 시기는 겨울에 해당하지만, 눈은 오지 않고 가끔씩 비가 오고는 한다. 물론 높은 산에는 눈이 내리기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의 북쪽에 병풍처럼 둘러선 앤젤레스 국유림의 높은 산들은 눈으로 덮여있는 경우를 볼 수도 있다. 다른 계절에는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이 시기에 내리는 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가 가물지 아닌지는 이때 내리는 비의 양에 따라 결정되며, 봄에 피는 들꽃들이 봉오리를 터뜨리는 시기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다른 해와는 좀 다르게 비도 오지 않고, 기온도 예년보다 높아 전형적인 캘리포니아의 날씨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낮 기온이 섭씨 20도가 넘게 유지되는 날이 많아 봄철의 기온을 보이면서도 밤 기온은 섭씨 10도 아래로 내려가 전형적인 겨울의 온도를 보여 마치 제5 계절이 온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이런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감기. 독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날씨에 들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보통의 경우 캘리포니아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늦은 1월부터 들꽃이 피기 시작하여 3-4월이면 대부분 지역에 들꽃이 흐드러진 것이 예년의 경우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기후가 온난하기 때문에 사람이 가꾸는 가정집 정원이나 공원, 화단 등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지만, 들꽃의 경우는 기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서 해마다 들꽃이 피기 시작하는 때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번 겨울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기온이 높게 유지되어 들꽃이 피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낮 기온만 보면 들꽃이 피고도 남을 만큼 높은 기온이지만,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고, 거기에 적절한 비가 내려줘야 하는데, 비는 내리질 않았기 때문이다.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의 겨울 풍경은 이처럼 쓸쓸하다. 겨울이기도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기온은 높기 때문에 땅은 푸석푸석 먼지가 폴폴 날려 대부분의 땅에 봄기운이 돌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1월 중순쯤이면 이미 날은 봄에 가깝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들꽃이 봉오리를 터뜨린다.  



방울 뱀풀(Euphorbia Albomarginata, Rattlesnake Sandmat)
4월부터 12월에 꽃이 핀다. | 다년생 다육식물 | 생장 높이는 0.48in(1.2cm) 정도로 아주 작은 지표식물이다. | 서식지는 북미대륙의 중가주에서부터 멕시코 북부, 루이지애나까지 분포한다. | 줄기를 자르면 우윳빛의 진액이 나온다. 독성이 있으며, 민간요법으로 뱀에 물렸을 때 바르기도 한다.

   거친 땅에도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아주 작고 옅은 이 녀석들은 몸집을 줄이고 낮춰 힘을 갈무리하고 최대한 많은 꽃을 피워 번식을 준비한다. 본래 봄이 돼야 꽃을 피우는 녀석들이 벌써 봄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다. 아마도 올 겨울뿐만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왔을 테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주목받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하듯 자신들을 숨기고 감춘다. 결코 화려하거나 예뻐 보이지 않은 그들의 꽃은 눈여겨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수수한 자태가 어느 여염집 규수에 못지않다.



갓 꽃(Brassica juncea)
영문 이름이 꽤 많다.  Brown Mustard, Chinese Mustard, Indian Mustard, Leaf Mustard, Oriental Mustard and Vegetable Mustard | 십자화과에 속하는 한 해 살이 식물 | 흑겨자(Brassica nigra)와 순무(Brassica rapa)의 자연 교배종이며, 원산지는 중국이다. | 줄기와 잎은 적당히 매운맛이 있어 각종 음식의 재료로 사용되며, 씨는 향신료나 거담, 신경통 등의 약재로도 사용된다. | 갓은 토양정화 식물로도 사용되는데, 오염된 토양에서 중금속 특히 카드뮴(cadmium)을 제거하는 데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지 마시라! 이 사진은 지난봄에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마치 제주의 유채를 생각나게 하는 이 꽃들은 유채와 사촌간인 갓꽃이다. 지난봄에는 적절한 비와 날씨가 뒷받침되어 온통 들꽃 세상이었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눈이 호강할 만큼 근사한 들꽃 풍경을 보여주었는데, 올해는 어떨지 자못 기대가 크다.


  그런데 봄에 피어야 할 이 갓꽃이 벌써 피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이들은 아마도 시기를 잘못 판단한 몇몇 개체가 피어난 것이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듬성듬성 수월찮이 피어있었다. 시기를 잘못 판단해서 곤란해지는 것은 사람이나 다른 생명들이나 마찬가지 인 모양이다. 그러나 거칠기 이를 데 없는 곳에 피어난 갓꽃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은 이 꽃 때문에 거칠고 쓸쓸하고 메마른 주변이 좀 밝아 보이기 때문이다.



쇠서나물(?)(Helminthotheca echioides, Picris echioides, Bristly oxtongue)
국화과의 한두 해 살이 풀로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유래했다. / 캘리포니아, 네바다, 오레곤, 워싱턴 등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꽃은 연중 기온만 맞으면 계절에 관계없이 핀다. / 길가, 공터의 이곳저곳, 공한지 등에서 잘 자란다.

  민들레(Taraxacum, Dandelion)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민들레는 아니다. 어쨌든 이 식물은 사실 계절에 관계없이 꽃을 피우고, 장소에 관계없이 잘 자란다. 길가 아스팔트 틈새든, 사람이 많이 다니는 행길가든 틈만 있으면 싹이 난다. 그리고 일단 싹이 나면 자라서 꽃이 피고 홀씨를 날리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싹이 났나 싶으면 어느 틈엔가 꽃이 피어있고, 꽃이 피었나 싶으면 또 어느 틈 엔지 홀씨를 맺어 번식을 한다. 남가주의 척박한 땅에서도 자랄 만큼  생명력이 강하여 마치 민들레의 생명력과 비견된다.

  


칠성 무당벌레(Coccinella septempunctata)는
무당벌레과에 속하는 절지동물로 애벌레와 성충 모두 진딧물을 주요 먹이로 삼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이로운 동물로 여겨지는 대표 주자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하루에 진딧물을 무려 250여 마리를 잡아먹는다. | 전 세계에는 약 4,500여 종의 무당벌레가 살고 있다고 한다. |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침을 뱉으므로 어지간한 새들은 무당벌레를 싫어한다. | 이들도 천적은 있게 마련,  기생파리, 고치벌, 좀벌, 침노린재, 게 거미 등은 무당벌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동아시아의 무당벌레가 유럽으로 건너가 현지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사연은 이곳을 참조 바람.

  쇠서나물 줄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칠성 무당벌레와 그 애벌레다. 무당벌레는 겨울잠을 자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활동을 시작하는 곤충인데, 올해는 겨울 기온이 높다 보니 벌써 나와 번식까지 한 것 같다. 무당벌레는 기온이 맞는 어디에서나 서식을 하지만, 특히 군집생활을 하는 무당벌레 서식지를 가면 따뜻한 봄날 수많은 무당벌레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붉은 뚜껑별꽃(Anagallis arvensis, Scarlet Pimpernel/Red Pimpernel)
앵초과의 한 해  또는 두 해 살이 풀꽃으로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에서 유래했다. | 전 세계적으로 24종이 있으며, 온대와 열대에 걸쳐 분포한다 |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핀다 | 대표적인 '별 봄맞이 꽃 속(Shepherd's Weatherglass)' 해당한다. 아침 8시에 꽃을 열어 낮 3시에 꽃을 닫으며, 흐린 날에는 아예 꽃을 열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성질의 꽃으로 '닭의장풀(A Dayflower)'이 있다. | 꽃말은 '돌이켜 생각하기'이다.

  앞에서 살펴본 방울 뱀풀도 그렇지만 이 붉은 뚜껑별꽃도 마찬가지로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숨어서 산다. 특히 이 녀석들이 잔디밭에 있을 경우 눈을 씻고 찾아야 겨우 보일락 말락 하고, 그것도 꽃의 빛깔 때문에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런 만큼 이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세상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민들처럼 말이다. 말없이 서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며 감격하고, 한낮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부지런히 살다가 기우는 햇살에 겨우 몸을 기댈 수 있는 삶이,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값어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당신과 나, 바로 우리,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시간을 가늠해 보는 그런 삶의 자리에 있다.



나무 담배(Cape Leadwort, Nicotiana glauca, Tree Tobacco)
가지과에 속하는 야생 담배 나무의 일종이다. |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민간의료에 이용하거나 흡연용으로 사용한다.  잎을 짓이긴 반죽은 자상, 타박상, 부기에 효험이 있다.  | 남미가 원산지며 가늘고 곧은 줄기가 2미터 이상 자라는 식물로 미국 남서부, 즉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지에 자생한다. |  주로 여름철에 길쭉한 노란 꽃을 피우며, 씨앗으로만 번식하는데 한 나무당 일 년에 생산하는 유효 씨앗은 약 일만 개에서 백만 개 정도다.

  특이하게도 이 식물은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독야청청 홀로 잘 자라고 있어서 주의 깊게 살폈다. 비가 내리는 철인데도 아직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탓이기도 하고, 시기로 볼 때 겨울이기도 해서인지 주변의 땅은 그저 황량할 뿐인데도 담배나무는 높직하게 자라 푸른 잎들 사이에서 노랗게 꽃을 피웠다. 사정이 이런 데다가 생김새도 예사롭지 않아 눈에 띠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연구자에 의하면 사막에 사는 나무 담배는 산불이 나면 부리나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번식을 한단다. 그러다가 주변에 다른 식물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이 녀석은 느닷없이 생장을 멈추고 다음 산불이 날 때를 기다린다고 한다.


  물론 환경에 적응을 한 탓도 있겠지만, 외부의 위험을 감지하고 자신을 통제하여 번식을 해나가는 체계는 식물이라고 해서 동물에 못지않다. 종이야 어떻든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신을 방어하고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마련해 놓는 체계야말로 동. 식물 모두 아울러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종이 다른 종의 생명과 번식 체계에 개입하는 경우 집단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혼란을 야기하고 나아가 생태계 전체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체계에서 벗어나 홀로 잘난 종이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바로 '인간'이라는 종이다.



플럼 바고(Plumbago auriculata)
갯질경이과에 속하는 열대. 아열대 식물로 가뭄과 더위에 강한 상록수 관목이다.  | 키는 2미터까지 자라며, 잎은 길이가 0.5-12Cm 정도 되고, 봄부터 가을까지 흰색, 파란색, 자주색, 적색 따위의 꽃을 피운다. | 흔히 Cape Leadwort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꽃 빛깔이 푸르스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막 채굴한 납의 빛깔이 푸르스름한데서 유래한다. 또한 같은 이유로 Sky Flower로 부르기도 한다.  | 건조한 지역의 염분이 많은 황무지나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

  겨울철 볼 것 없는 들에서 플럼 바고는 단연 돋보이는 꽃이 아닐 수 없다. 시기로 볼 때 꽃처럼 보이는 꽃이 피기는 어려운 겨울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혹시 누군가 일부러 키우는 식물이 아닐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이 꽃은 다른 식물들이 살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종자에 해당한다. 심지어 고속도로 주변의 바람 많고 험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비록 비가 내리지 않아 황량한 태평양의 해안 지역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험하진 않으니 돋보이는 자태가 수긍이 간다.



난쟁이 아욱(Malva neglecta, Common Mallow)
아욱과에 속하는 두 해 살이 식물로 유럽, 북아프리카가 원산지다. 미국에 서식하는 종은 유럽에서 건너왔다. | 4월부터 10월 사이에 핑크와 흰색이 섞인 꽃이 핀다. | 줄기는 옆으로 자라며 키는 4-8인치쯤 자라고, 꽃은 지름이 1/2인치 크기로 피어 눈을 씻고 봐야 찾을 수 있다. | 꽃과 잎, 어린싹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고국을 떠난 뒤로 아욱을 잊고 살았다. 들에 나가 돌아다니며 흔히 눈에 띄는 풀을 보면서도 무엇인지 모르다가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작은 분홍색 꽃이 소박하게 피어있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크기는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을 뿐만 아니라, 은은한 빛깔이 곱디곱게 피었다.

 


부겐빌레아(Bougainvillea glabra)
부겐빌레아는 분꽃과의 덩굴성 식물로 남미 브라질이 원산지다. | 꽃말은 '정열'이다. | 온도와 습도만 맞으면 일 년 내내 꽃을 피우지만, 무더운 여름에 가장 많은 꽃을 피운다. |  붉은 빛깔을 내는 부분은 꽃이 아니라 꽃받침에 해당하고, 꽃은 꽃받침 안에 있는 흰색 송이가 꽃이다. 보통 3개가 한 쌍으로 나지만, 동시에 피기도 하지만 때로는 3 송이가 따로 피기도 한다. 꽃받침은 빨강, 노랑, 분홍, 보라, 하양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더운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보니 캘리포니아에도 널리 분포되어 있는 식물 가운데 하나다. 많은 집들이 울타리나 집안의 뜰을 장식하는 식물로 키우고 있다. 꽃은 봉우리를 피우고 며칠 만에 지지만, 꽃받침은 한 달여 이상 지속되다가 진다. 떨어진 꽃받침을 만지면 마치 종이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종이꽃(Paper Flow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맘때쯤 되면 떨어진 꽃잎이 쌓여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보기에 좋지 않아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많은 것들이 항상 좋은 경우는 드물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게 마련이고, 하늘이 흐리다가도 때가 되면 비도 오고, 맑아지기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일 년 내내 행복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날인가 찾아드는 불편함에 너무 힘겨워하거나 느닺없이 다가온 어려움에 지나치게 당황할 일은 아니다. 부겐빌레아가 보기에 아무리 예쁘고 멋있다고 해도 꽃이 지면 불편해지고 지저분해지듯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꽃을 키우고 가꾸는 까닭은 오히려 녹녹하지 않은 삶에서 아주 조금일 수도 있겠지만 위로를 얻고 힘을 얻으려는 것이지 않을까?

  


  글을 준비하고 쓰는 동안 캘리포니아 인근에 드디어 비가 내렸다. 이틀 동안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려 산불이 난 지역에는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해안선의 황무지에는 짧은 기간에 일제히 새로운 생명이 움을 틔웠다.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비가 그치고 이틀 만에 찾은 그곳에는 이처럼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메마르고 죽어있는 것 같은 들판도 그 속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의 씨앗이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근처에 사람이 관리하는 빈터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 풀이 나면 제초제를 뿌리고는 해서 늘 메마른 곳이 있다. 조금이라도 풀이 자랄라치면 어느 틈 엔지 농약을 뿌려 새싹이 나는 꼴을 못 본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뿌리고 지나가면 죽은 듯이 보였던 그곳에는 일제히 파릇한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 그리고 농약이 살포되는 시기를 아는지 미처 농약을 뿌리기 전에 재빠르게 자라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잠시라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언제 자랐는지도 모르게 생명활동이 활발하다. 사람에게는 잡초에 지나지 않아 없애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풀들도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들의 최선을 다해 생명활동을 한다. 그래서 잘 가꾼 잔디밭보다는 여러 가지 풀들이 풍성하게 자란 소위 '잡초밭'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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