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에 홀리다 Feb 19. 2017

미국의 국립공원,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시간 속으로 떠나는 여행



여행을 다녀왔다.

틈만 나면 되나 가나 짐 싸들고 길을 나서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아니 이번에는 더욱 느닷없이 길을 나섰다. 금요일 아침에서야 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숙소며, 먹거리며 챙길 시간이 없었다. 일 끝나고 와서야 부랴부랴 숙소 예약하고, 먹거리 대충 챙기고, 옷가지며 여행 용품을 챙기는데.... 아, 약속이 있었지! 사람 만나는 일이 어디 일이십 분으로 되던가! 밤 8시가 돼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으니, 8시간 걸리는 거리를 밤새 달려 새벽 4시에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 담당이 그저 웃는다... 기절했다 눈을 뜨니 그래도 다행히 8시밖에 안됐다. 아, 정말 다행이다. '내가 여행이 체질화되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번 여행은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느닷없이 출발했으니 목적지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하는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부터는 어디로 여행할지 미리 정해 놓고 충분한 사전 정보를 챙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공원 안내소 옆에는 아주 작은 주유소가 있었다. 전자식을 넘어 스마트 주유기가 등장하는 마당에 여기는 아직도 기계식 주유기에다 기름 값도 2달러를 채 넘지 않는다.






목적지는 애리조나 주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이름도 생소한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
(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 '



음... 번역하자면 '화석림(化石林)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 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방문객이 적은 편에 속한다. 개인적으로 볼 때 다른 국립공원과 비교해도 볼거리가 적다거나, 경치가 수려하지 않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 공원이 다른 이름난 여행지와 좀 동떨어져 있어서 여행 코스를 잡기가 좀 애매한 위치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위 미국 서부지역의 이름난 공원, 빼어난 자연경관 지역을 통틀어 말할 때 ‘그랜드 서클(Grand Circ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은 여기서 살짝 빗겨 나 있다. 그래서 여행 코스를 잡을 때 포함시키기가 매우 애매한 곳이라서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볼까?’ 정도로 많이들 생각하고 들렀다가 대박(?) 치고 가는 곳이다.

공원의 출입구는 2곳에 있었는데, 남쪽 출입구에 있는 안내소 주변으로 많은 규화목들이 널려있었다.





약 2억 5000만 년 전,
지구 곳곳이 아름드리나무들로 가득한 밀림으로 뒤덮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 나이가 46 억년쯤 한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최근에 있었던 일 이기는 하지만, 사실 아직 인류가 생기기 전이니 우리에게는 까마득한 일이다. 아직 지각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땅이 뒤집히고 갈라져 숲은 통째로 묻혀버리고, 바다가 육지가 되는 일이 생겼다. 그때 묻혔던 나무들이 높은 압력과 열을 받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가 돌덩이로 변했다. 그렇게 돌로 변한 나무를 규화목(硅化木, Petrified Wood)이라고 하고, 본래 숲이었던 곳이니 이런 나무가 공원 안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래서 공원 이름이' 화석림 국립공원(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이라고 붙여졌다.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통나무를 잘라놓은 것으로 착각할 만큼 나이테까지 고스란히 화석으로 변했다.







‘페인티드 데저트(Painted Desert)’라는
별도의 이름을 붙일 만큼 독특한 지형이 형성되어있다


이 공원의 이름이 ‘화석림’이니, 아무래도 공원 측의 입장에서는 ‘화석’에 방점을 두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사실 이곳이 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으니 말이다.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던 초기에는 규화목을 비롯해서 다양한 화석들을 채취해서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이것을 막기 위해 정부 당국에 의해 지정 공원으로 정해졌다가 60년대 초에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이곳에 산재해 있는 자원들을 보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공원 안에는 규화목만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40번 도로를 중심으로 북쪽 지역을 ‘페인티드 데저트(Painted Desert)’라는 별도의 이름을 붙일 만큼 독특한 지형이 형성되어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의 드넓은 사막은 마치 페인트를 칠해놓은 것처럼 형형색색의 바위들로 덮여있는 오묘한 지역이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토사층이 굳어 바위가 되고, 지각 변동으로 그 토사층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바람과 비와 모래가 그들을 어루만지자, 각각의 층들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빛깔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우주에 비하면 지구별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나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구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크다. 아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세상은 참 큼지막하다



빛깔은 곱지만 이 지역은 황무지다. 이런 척박한 땅에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생명들이 있다. 그 억척스러운 생명력에 비하면 작은 풍파에도 흔들리는 나는 얼마나 부족한 존재일까?




잘 정비된 전망대마다 페인티드 데저트(Painted Desert)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공원의 핵심은 ‘블루 메사(Blue Mesa)’지역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공원의 핵심은 ‘블루 메사(Blue Mesa)’지역이다. 공원의 남부지역에 위치해 있는 이 지역은 메사(꼭대기는 평평하고 등성이는 벼랑으로 된 언덕으로 미국의 남서부 지역에 흔한 지형이다. 산이기는 하지만 한국식의 산과는 좀 다르다)의 위쪽 지역을 도는데 5.6킬로미터 정도 되고, 메사의 바닥 쪽에 나 있는 트레일 길을 걷는데 1.6킬로미터쯤 하니 그리 넓은 곳은 아니다. 특히 트레일을 하면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은 공원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지형의 특색을 이곳에서 다 볼 수 있다. 페인티드 데저트(Painted Desert)의 오묘한 빛깔들, 신비해 보이기까지 하는 규화목들, 그리고 규화목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어 그 조각들이 흩어져 형성된, 마치 초콜릿 칩처럼 보이는 토양들, 형형색색의 지층으로 형성되어 특히 보랏빛을 띠는 봉우리들(Butte), 그 사이사이로 난 길을 걷노라면 내가 어느 시대에 와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다.


이렇게 핵심적으로 집중해서 다양한 것들 보여주는 곳도 드물지 않을까? 그것도 그리 넓지 않은 곳에서 말이다.







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드넓은 이 공원 지역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바로 푸에불로 인디언들이 그들이다. 물론 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나바호 인디언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그들의 삶은 자연 친화적이며, 자연 의존적이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종족 간 전쟁과 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명 세계의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는 않았으며,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긍과 애착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평화의 땅에 날 선 코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포악하고 흉폭하며 이기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이상한 쇳덩이를 들고 다니면서 짐승들을 마구 잡았으며, 땅을 파헤쳐 값나가는 물건들을 캐내어 가져갔고, 결국에는 이 땅의 주인들을 향하여 그 포악한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방인들이 들어온 지 채 100년도 못되어 이 땅의 주인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갔다. 그들은 인디언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그나마 생존해 있던 사람들마저 보호구역을 정해 놓고, 그 안으로 밀어 넣어 그들의 미래를 막아버렸다. 이렇게 밀려난 사람들은 보호 구역 주변 관광지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장신구를 만들어 팔거나, 관광 안내를 하거나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오래전에 살아가던 터전들은 '문화재'라는 미명 아래 관광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고, 그들의 조상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은 ‘인류’라는 보통 명사로 포장해 선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점령자들은 이 땅의 주인이 되어 호의호식하고, 거기에 기대어 우리들도 그렇게 살아간다. 이번 여행지는 이런 우울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곳곳에 그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들은 관광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여전히 그들 가운데 일부는 관광지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 속에 간직한 채 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인으로서 우리는 또 더불어 그 상품을 소비한다.  

그는 밖에서 그의 아내는 차 안에 앉아 아주 드물게 찾은 손님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무엇인가? 또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무엇인가? 또 우리는 누구일까?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는 이 땅, 뿐만 아니라 나의 핏속에 흐르는 또 다른 피의 대가들을 기억은 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또 흘린 피에 대하여 최소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는 있는가? 그들의 희생으로 내가 편히 살고 있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 비록 풍요로운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닐 망정 현재 누리고 있는 사회. 경제적 복리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최소한 그들을 기억만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에 길가에 잠시 차를 멈추고 햇빛을 쬐고 있는 강아지 풀과 마주했다 들은 생명이 다한 듯 보일지라도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이 돋는다.  나도 그들처럼 늘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이래저래 나는 또 다음 여행을 꿈꿔 본다.


여행이 재충전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내 삶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여행이었다. 어찌 되었든 풍경은 근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은 것들의 아름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