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ounty Arboretum and Botanic Garden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동. 식물은 물론이고 아주 작은 미생물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약 190만 종으로 추정되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이 1000~2000만 종에 다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도 마찬가지로 알려진 생물 190만 종 가운데 하나며, 발견되지 않은 생물종까지 감안한다면 1000만~2000만 종 가운데 한 종으로서 이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사람이.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이 지구를 최대 2000만 종의 다른 생물과 나눠 쓰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주거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을 개발하면서 지구는 급격하게 변화를 겪었고, 인류의 동반자인 수많은 생물을 희생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은 생물종의 파괴자로 우뚝 섰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서로 연결되어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람을 비롯해 많은 생물들은 공기 중의 산소를 이용해 숨을 쉰다. 그런데 이 산소는 다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보통 녹색 식물들이 낮에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함으로써 산소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는 지구에서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 쉬는 산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프로 클로로 코 쿠스(Prochlorococcus)는 바다에 사는 미생물 가운데 하나다. 크기가 0.0005mm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 생물은 바닷물 한 방울에 수십만 개나 있을 정도로 엄청나다. 지구에 있는 생물 가운데 가장 많다. 바로 이 극미소 플랑크톤인 프로 클로로 코 쿠스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구에서 생산되는 이산화탄소의 절반을 흡수하며, 광합성을 통해 지구에서 필요한 산소의 절반을 생산한다. 이들이 없다면 지구는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조금 과장하면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발밑에 함부로 밟히는 풀일지라도 그들은 소중한 우리의 동반자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지구는 지금 보다는 좀 덜 힘들어지지 않을까? 우리 주변에 있는 수목원이나 식물원들은 생물 다양성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수목원은 로스앤젤레스의 동쪽에 이웃하고 있는 아케디아 시티에 있다. 앤젤스 국유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수목원은 4월-5월 즈음해서 다양한 꽃이 흐드러지므로 일 년 중 가장 방문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127 에이커에 달하는 땅에 다양하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돌다 보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과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모두 8천여 종의 식물을 기르고 있는 이 수목원은 아시아-북미 식물관, 남미 식물관, 호주 식물관, 아프리카 식물관 등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수목원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대나무와 공작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지난번 데스칸소 가든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정원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정원만의 특색 있는 식물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번에 다녀온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수목원은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다른 곳과 차별화된 점이다.
거기에 더해서 수목원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만, 그에 알맞은 동물들도 함께 있으면 좋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곳의 꽃은 공작새라고 할만하다. 물론 공작새 말고도 다양한 새들이 숲 속에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에 정원 안에는 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을 따로 마련하여 두기도 했다.
여기에 사는 공작은 청공작 또는 인도공작으로 모두 몇 마리가 있는지는 알아보질 못했지만, 공원 안을 걷다 보면 아주 흔하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다. 이들에게 귀소 본능이 있는지 공원 안의 공작은 집에서 기르는 닭처럼 그저 어슬렁 거리며 모이를 주워 먹거나 그늘에 들어 낮잠을 자거나, 그도 아니면 남의 집 담장에 올라 이웃집을 넘나들거나 꺽꺽거리며 동료를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을 하지 않으니 처음엔 가까이 가다가 주춤하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아직 짝짓기 철이 아니라서 깃을 펼치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인데, 4월쯤 가면 깃을 펼치며 구애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수목원에는 아직 꽃을 피운 식물들이 많지는 않았다. 다른 수목원에 비하여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식물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는 지역 특성상 굉장히 많은 종류의 선인장을 보유하고 있어서 하나하나 소개하기는 어려워서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한다. 마침 꽃이 핀 선인장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가시가 가득한 몸에서 피어난 꽃이라니, 볼수록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 살면 선인장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인근에만 꽤 여럿의 사막이 있기 때문에 사막에 나가면 가장 흔한 식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사막엘 가지 않아도 마을 뒷동산에만 올라도 선인장이 널려있기도 하다. 그러나 선인장도 식물인지라 군락지가 있기 마련이므로 볼 수 있는 선인장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이렇게 수목원에서 여러 가지 선인장을 한자리에 모아 기르고 있으니 멀리 가지 않아도 여러 종류의 선인장을 볼 수 있다.
매화가 한창인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꽃은 아직은 그리 많지는 않다. 분홍빛 꽃이 매화다. 수목원 입구부터 수목원 곳곳에 매화나무가 있어 봄 분위기를 북돋운다. 분홍빛깔, 붉은 빛깔이 마음을 북돋우는지 매화꽃을 보면서 산책하다 보면 살짝 들뜨기도 하고, 공원 분위기가 이들 때문에 화사해 보이기도 한다. 노랑꽃은 살구꽃이다. 영어 이름은 'Apricot trumpet tree'. 붉은 꽃은 케이폭 나무 또는 반지화 나무(Red silk-cotton tree)다. 이 꽃은 지난번 남해안 수목원을 소개하는 글에서 말한 풀솜 나무와 비슷하다. 열매는 섬유질의 속껍질이 씨앗을 둘러싸고 있어, 천상 목화와 비슷하다. 열매가 익어 단단한 겉껍질이 터지면 속에 있던 섬유질이 밖으로 불거져나온다. 이 섬유질은 목화솜과 달리 물을 잘 먹지 않아 물 곁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유칼립투스(Eucalyptus)의 한 종류다. 학명은 Eucalyptus torquata로 흔히 coral gum 또는 Coolgardie gum으로 부르기도 한다. 햇빛에 비친 꽃술들은 뭐랄까 분홍 밤송이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바다 생물인 말미잘의 촉수 같은 느낌도 있다.
이 꽃은 아카시아의 한 종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흰색 꽃을 피우는 아카시아와는 다른 종류다. 아카시아는 아카시아 속에 속하는 970여 종의 상록 교목의 총칭이고, 콩과에 속한다. 한반도에 분포되어있는 아카시아는 이와는 다른 아카시아 나무속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다. 이 꽃의 정확한 이름은 Knife Accacia며, 학명은 Accacia cultriformis고, 흔히 개 이빨 풀(dogtooth wattle), 반달 풀(half-moon wattle) 따위의 이름이 있다. 개나리가 흐드러진 봄이 떠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노랑은 봄을 생각나게 하는 빛깔 가운데 하나다. 이 꽃을 봄으로써 비로소 이 수목원에도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목원의 한 귀퉁이에서 수줍은 듯 피어나는 풀꽃들이 예쁘다. 크기가 작고 꽃 빛이 은은해 고개를 숙여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그들은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고, 앙증맞은 꽃을 피워낸다. 식물을 비롯해 많은 생명들에 대해서 어쩌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물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이 관리하고 가꿔야 보존되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자연에 자연스럽지 못한 일을 하게 되는 동기가 아닐까?
수목원 안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이름은 오래전에 이 수목원 자리에서 농장을 하던 농장 주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볼드윈 호수(Baldwin Lake)를 중심으로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다. 일부는 열대 밀림 지역을 떠올리게 할 만큼 숲이 우거졌다.
이 건물은 농장 주인이 살았던 집과 헛간이다. 헛간에는 각종 농기구와 농기계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살던 집은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1800년대의 목조 건축양식을 잘 볼 수 있어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볼드윈 호수에 붙어 있기 때문에 집 앞 뜰에는 물오리들이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거나 뒤뚱거리며 거니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수목원 곳곳에는 넓직히 대나무 숲이 있다. 그동안 대나무는 동양에서 자라는 나무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대나무를 너무 몰랐다. 지구에는 모두 5000여 종이나 되는 대나무가 있는데 말이다. 당장 여기에만 해도 십여 종은 넘을 듯하다.
고국에 있을 때도 보기 힘들었던 검은 대나무도 있고, 대에 줄무늬가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가늘고 키 작은 줄기가 수북한데, 어떤 것들은 굵고 기다란 대가 무리를 이뤘다. '세상에 무슨 대나무가 이렇게 많지?' 대숲 사이로 난 산책 길을 걸으며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몸을 맡겨본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어보자. 대나무가 만든 그늘에 잠시 몸을 숨기고 지친 다리를 쉬게 하는 것도 좋겠다. 바스락바스락 바람이 대숲 사이를 비집고 은근슬쩍 노래를 부를라 치면 나무 끝을 유린하던 햇살이 무뚝뚝한 나무줄기를 무심히 보듬는다.
수목원을 걷다 보면 한적한 시골길 같은 분위기의 숲 길을 볼 수 있고, 그 길 끝무렵에는 아담하지만 물길이 멋들어진 메이버그 폭포(Meyberg Waterfall)를 만난다. 그 앞에 길게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면 또 다른 감흥에 젖을 수 있다. 폭포를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기에 그만인 이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대나무 숲에 가려져 있어 찾는 사람이 적은 이 예스러운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건물뿐만 아니라 철길까지 재현해 놓아 마치 시골 간이역에 온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이 곳은 주말에만 문을 여는 카페 건물이다. 수목원 안에서 오지에 위치해 있어서 이곳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혹시 주말에 찾는다면 한 번 들러 차 한잔 하며 운치를 즐겨봄직하다.
따뜻한 겨울이 가고 비바람 세차게 부는 이른 봄 어느 날, 다시 외투를 꺼내야 할까 망설이다 슬쩍 다녀온 수목원이 좀 추워도 봄이 맞다고 진하게 하는 잔소리를 듣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