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이 주는 위로
눈에 띄는 녀석이 하나 있다.
비록 이름은 모르지만, 분명 야생 식물은 아닌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분갈이하다가 누락된 녀석이 아닐까 하고 넘겨짚어본다. 밝기도 좀 어둑어둑하고, 크기도 작달막하고, 꽃들은 머리를 숙이고 있으니 분명 그곳에 있었겠지만 눈에 띄기 어려워 보이기는 하다. 그런데도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충분히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녀석이 그곳에 살고 있는 줄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 녀석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희미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빛깔로 꽃을 피운 그 녀석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오며 가며 보이지 않던 녀석이 눈에 띄었다고 갑자기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옷을 갈아입었다고 해서, 좀 옅기는 하지만 화장을 했다고 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각자 뿌리내리고 있는 곳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것들을 바르고 적절하게 받아들이고 불어오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며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오며 가며 보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 녀석은 힘 없이 툭 쓰러졌다.
오늘에 와서야 그 녀석이 어떻게 그곳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분갈이에서 누락됐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버려졌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다시 거둬주지 않는다면 땅에 심기지 못한 식물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들에서 자라는 식물이 아니고 가꾸던 식물들이야 더 말해 뭘 하랴. 그런데 오늘 이 녀석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생겨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빛깔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곱게 단장한 여인처럼 수려하다. 한 줄기에서 여러 송이 꽃을 피워 재잘거리는 아낙들을 연상하게 한다. 꽃대가 받치고 있는 꽃잎들은 수줍어 얼굴을 붉히는 어린아이의 홍조를 닮았다...'
식물을 하나하나 훑고 있던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줄기를 살짝 건드리자 이 녀석이 힘 없이 옆으로 '툭'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 녀석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제야 난 그 녀석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한 녀석은 심기지 않은 채 뿌리도 없었고, 또 한 녀석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단 한 모금의 물이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사투를 벌였을 그들을 보면서 난 얼마나 미안하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오며 가며 그들을 바라보았던 난 얼마나 무심한가?
그들을 보면서 또한 위로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꽃을 피우고 대를 이어가는 그들의 꾿꾿한 자세, 포기하지 않는 인내, 불굴의 의지, 생명을 지켜내려는 그들의 치열한 싸움을 보면서 돌이켜 나를 생각해 보았다.
그 녀석들과 화해를 했다.
다가가 살피고, 돌아보아 어루만지고, 오며 가며 눈길을 보내다가, 눈이 맞으면 살짝 눈인사도 보내고, 부끄러운 듯 고갤 숙인 꽃술에 정도 주고, 연분홍 찍은 입술에 살짝 아주 살짝 다가가 입술을 맞춰보기도 하면서 화해를 신청해 본다.
재스민
미안한 마음에 난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 준비하는 재스민, 그들이 꽃을 피우면 요염한 자태, 현숙한 여인의 향기가 하늘을 덮는다. 이제 곧 그들이 다가올 것이다.
허브 식물
이름은 모르지만 작달막한 보랏빛 꽃이 일품이다. 허브 식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여러해살이 식물인데...
'잡초'라고 부른다.
이 녀석들은 야생식물이다. 화원에 있기는 하지만 일부러 키우지는 않기 때문에 흔히들 '잡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다가 남모르게 살그머니 하얀 꽃을 피운다. 길가 양옆 풀밭에도 널려있고, 품질이 좋지 않은 이웃집 잔디밭에도 기웃거린다. 이들이 경쟁에서 이겨 개채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 풀밭은 은은한 하양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소박하게 아름답다.
나는 민들레를 좋아한다.
특별히 난 이 녀석을 좋아한다. 드물게 이름도 안다. 다들 알고 있듯이 민들레다. 이 녀석은 철이 없다. 습도와 온도만 맞으면 언제든지 꽃을 피우고 번식을 한다. 아니, 습도와 온도만 맞으면 어디든지 뿌리를 내린다. 뿌리만 내리면 꽃을 피우고 홀씨를 날리는 것은 거의 자동에 가깝다. 이들도 소위 '잡초'에 속하는 식물이다. 그렇다, 잡초! 생각해 보면 이 단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차별적인 말이던가!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으면 잡초로 분류하여 솎아내고, 뽑아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약을 쳐서 말려 죽이고, 갈아엎어버린다. 그뿐이던가? 인간이 필요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접하고 떠받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녀석들에 비해서 민들레는 이런 인간들의 횡포에도 잘 버텨낸다. 그리고 왕성하게 자라나 꽃을 피우고 홀씨를 날린다.
이제 막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는 이 생명들이 앞으로 자라나 무엇으로 꽃 피울지 자못 기대가 크다. 이런 새싹을 보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들이 품고 있는 생명의 잠재력과 또한 그들이 벌여 나갈 치열한 싸움과 쟁취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아! '쥐며느리'다. 내가 누르는 사진기 단추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볕을 쬐던 이 녀석은 슬그머니 숨어버린다.
세상에 하찮은 생명이란 없다.
모든 생명은 각자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그 생명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오늘 내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받은 위로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