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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리 Jul 15. 2023

플로리스트였다가 다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전직 플로리스트의 현주소



나의 24살부터 30대, 지금까지를 톺아본다.


30대

난 아직 미련이 남았다. 5년 동안 플로리스트로 꽃을 다루면서 행복했지만, 꽃 일을 그만둔 후에는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나의 현주소였고, 그렇게 지금은 다시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24세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과 제품디자인을 함께 전공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엄청 열심히 했었다. 다른 학생들은 복수전공 힘들다며 안 할 때에 나는 '남들이 못 하는 걸 나는 해내겠다'하며 학점 욕심과 오기로 두 개의 전공을 학기 연장 없이 해냈다. 하나의 졸업장에 두 개의 전공이 적힌 것 외에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때는 꽤나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 대학교에서 최초의 두 전공 복수 전공한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던 것이었다.


첫 취업은 브랜드 디자인을 하는 회사였다. 

전공이 두 개다 보니 그 당시의 사회초년생보다 약간은 연봉을 높게 받는 조건으로 들어갔지만, 고작 두 달 만에 난 잘렸었다. 알고 보니 2,3 달마다 한 명씩 뽑는 식으로 사람을 쉽게 내치고 뽑는 회사였다. 그렇게 어이없게 첫 회사의 기억이 끝났다.


가장 관심 있던 브랜드 디자인 회사 위주로 다시 취업활동을 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면접에서 탈락을 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진 나는, 나를 뽑아주는 회사에 덜컥 들어갔다. 브랜드 디자인과 관계없는 회사로.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가 잘못된 것 같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나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난 그 당시의 백수가 싫어서 어디든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봐야 24살이었는데 뭐가 그리 급했던 것일까?


그렇게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디자이너 겸 SNS 마케팅을 하면서 4년간 열심히 해온 전공과는 다소 다른 일들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그냥 서울 강남의 회사에서 칼퇴하면서 야근 없는 삶을 즐기며 파워블로거로 사는 삶에 만족했었다. 그냥 현재를 즐겼던 것이다. 미래의 커리어나, 디자이너로서의 앞 날이나 노선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들은 삼성멤버십이다 서포터스다 온갖 대외활동을 할 때에 난 그냥 월급 주는 회사에 일찍 들어갔다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25세

길게 고민하지 않고 나를 뽑아준 회사에 들어갔던 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년 반쯤 다녔을까, 일이 힘든 건 아니었으나 내가 좋아하던 일이 아니었다 보니 열정도 없고 업무 외적으로 사람 스트레스가 있을 때면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한창 자만했던 나는 관두고 어디든, 뭐든 될 거야. 라며 생각 없이(?) 관뒀었다. 25살. 그때에 나의 공식적인 디자이너 이력은 멈춰있다. 프리랜서로 한 것들은 4대 보험 내역이 없으니 기록이 안되어서 인정되지 않으니까.


퇴사 당시 난 나름 방문자 2000명대를 갖고 있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었다. 나름 파워블로거였고 취미로 꽃시장을 가고 꽃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들을 블로그에 올렸었다. 


근데 꽤 반응이 좋네?


그렇게 개인 블로그에서 나의 꽃 사진과 디자인들이 관심을 받으면서 판매를 위해서 사업자까지 내게 되었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면서 나의 플로리스트 인생이 시작되었다. 26살 5월에 퇴사하고, 10월에 사업자 등록을 했다. 자영업이 뭔지 사업지 뭔지도 모르고 우선은 이 꽃을 팔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을 해야 한다고 해서 했던 것이다. 참 쉬웠지 그때는. 겁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했다.  


'플로리스트 하다가 잘 안 풀리면 다시 디자이너 하면 되지 뭐'


이 생각이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난 나를 너무 믿고 있었다. 전공 두 개인 졸업장이 먹여 살려주는 게 아니었다. 평균 평점 4.0인 학점이 날 만들어주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디자인 전공한 사람이 만드는 센스 있는 꽃다발이라는 자신감 하나로 꽃일을 시작했다.






26세

그렇게 세상에 겁이 없던 난 꽃을 배운 적 없이 꽃 판매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겁이 없었고 나 자신만 믿고 뛰어들었었다. 그리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를 회사에서 운영해 왔던 경험을 살려서 꽃집용 블로그를 운영했다. 난 SNS의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다. 왜냐면, 일반적인 꽃집처럼 대로변에 항시 오픈하고 있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 기반의 꽃집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꽃집이라고 하기 싫었다. 난 꽃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흔히 인식하고 있는 꽃집언니가 아니라고. 그래서 꽃집이라는 단어 대신 작업실이라 했고, 실제로도 주택가 골목에 있는 전혀 꽃집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업실을 갖고 꽃을 만졌다.






26~31세

26살부터 31살까지. 20대의 반을,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보냈다. 직원 고용 없이 혼자서 운영을 했다. 자영업. 딱 거기까지였다. 나의 역량 부족일 수도 있지만, 문득, 나의 성격은 혼자 일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혼자서 계속 꽃을 한다고 상상했을 때는 밝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처음 꽃을 시작했을 때는 또래 친구들보다 분명 더 벌었다. 부모님께 백 단위로 용돈을 드렸던 적도 있을 만큼. 하지만 그 상승폭이 가파르지 않았고 3년을 넘어서부터는 비슷했다. 그리고 이 꽃바닥은 자본이 있어야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의 자신감은 사라졌다. 나 역시도 초반의 '디자이너 감각으로 만든 꽃 선물'이라는 말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걸 느꼈다. 초반 작업들은 아트 같았고, 주변에서 보지 못 한 색 조합이었는데 점점 대중적인 색감 위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왜냐? 그래야 무난하게 판매가 되니까.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도 비슷하거나 하향세일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며 시작했던 플로리스트 업은 5년을 꽉 채우고 6년이 되던 해에 그만두었다.






32세

그만두고 나니 내게 남는 게 없더라. 다시 꽃 업계로 가지 않는 이상 하루에 백장 넘게 찍어댔던 사진들은 그냥 컴퓨터 용량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리고 5년간의 플로리스트로 지냈던 기간은, 즉 디자이너로서의 경력 단절을 의미했다. 고작 디자이너 2년 차 경력을 가진 경력단절 30대가 된 것이다. 물론 서른 살에 1년 정도 프리랜서로 브랜드 디자인을 몇 건 하긴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짧았고 불가피한 외부적 상황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그렇게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꽃 하다가 안 되면 다시 디자이너 하지 뭐!'

라고 세상 쉽게 생각하던 그때의 자만했던 나야. 


서른 넘은 여성을 어느 회사가 신입/경력으로 데려가고 싶어 할까? 플로리스트로 있던 기간이 디자이너 커리어를 끊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니? 디자이너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는 안 하면서 왜 그런 자신감이 있었니?


라고.. 근자감이 모두 빠진 다음에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게 돌고 돌아 나는 다시 디자이너에 도전한다. 

어릴 때부터 제일 좋아한 것도 미술이었고, 부모님도 그 계통이고, 나의 유전적 두뇌나 피는 여전히 예술 쪽이니까. 그나마 현재 나의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디자인'이니까. 








여기까지 읽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브런치에 플로리스트로 등록을 해두고 꽃집 창업기를 올려왔었는데, 이게 뭔 글인가 싶을 수 있겠죠. 어렵게 된 브런치작가인데 그냥 두기에 아까워서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해봅니다. 물론 종종 꽃 이야기도 할 거예요. 여전히 꽃은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그 5년간의 시간은 소중했고 아름다웠으니까요. 길게 내 인생을 봤을 때 너무 한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종종 플로리스트였던 그날의 이야기도 적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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