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기 싫어도 버텼어야 했을 시간이었다.
한창 욜로 붐이었던 때에, 꽃을 시작했다. 따로 배운 적도 없이 그냥 난 디자인 전공이고 미적 감각이 있으니까 남들과 다르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자신감 하나만 믿고 디자이너 일을 관두고 그냥 흥미따라, 취미로 즐기던 꽃을 업으로 삼아 시작했었다.
그 5년간의 시간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동시간대의 5년 동안 내 대학 동기들은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버티고 있던 시간이었다.
난 그 때 보냈어야하는,
견뎌냈어야하는 괴로운 시간을 지금 보내고 있다.
물론 그 때 당시에는 행복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욜로! 현재만 살 듯 했으니까 말이다. 워낙 성격이 장거리 달리기보다는 단거리 달리기처럼 뚝딱뚝딱 만들고 결과가 나오는 것들을 잘 하고 익숙해하기 때문이다. 뭔가 하나를 만들면 바로 피드백이 오고 수입이 생기고 그 과정을 또 소셜네트워크에 올리면서 마케팅을 하고 계속 반응을 얻고 그런 식으로 빠른 피드백, 댓가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성격에 잘 맞았다.
그에 비해 지금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있다.
하고싶은 일을 5년 간 했으니
이제는 해야만 했어야 하는 일을 해야하겠지?
현재 명확한 수입이 없다보니 불투명한 내일, 다음 달, 내년의 모습에 사실 매일이 스트레스다. 하지만 더한 스트레스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다는 것. 길이 보여야 앞으로 나아갈 텐데, 내게 보이는 길은 앞에 있는 길이 아니라, 저 멀리 뒤에 진즉에 거쳐왔어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플로리스트에서 다시 디자이너로 가는 중입니다.
라고 작가소개를 바꾸면서 다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로 가는 길과 관련된 글은 올리지 않았다. 별다른 소득이 없었으니까. 디자이너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해야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나만의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 무슨 글이라도 올렸던 것 같다. 하루에 무엇이라도 표출을 하지 않으면 한 게 없는 것 같은 허무함때문에 나는 글을 쓰고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는 것 같다. 피드백의 노예인가?
그동안 뭘 했나?
창피해서 포장해왔지만 처음으로 솔직히 털어놓는다.
우선 플로리스트를 관두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자 공무원시험 공부를 1년6개월간 했다. 3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난 뒤 깔끔하게 접고, 9개월간 요식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 생애 최저시급을 받는 일을 처음으로 해봤다. 요리도 좋아하니까 요리를 해볼까 싶어서 경험삼아 알바를 서른 넘어서 해봤다. 결론은, 몸만 고장났다. 관절 염증을 얻고나서 지금은 3달 째 도수치료, 운동치료를 다니며 회복중이다. 관절이 약해서 몸쓰는 일은 하면 안 되는 몸뚱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할까?
그러다가 나온게
'다시 디자이너로 돌아갈까' 였다.
현직 디자이너로 일하는 분들께서 혹시나 이 글을 본다면 가소롭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나마 나한테서 나올 만한 소스가, 감각이 그것 뿐인 걸 어쩌겠나. AI가 자동으로 디자인을 해주기 시작하는 이 시대에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일을 조금의 기대라도 갖고 눈을 뜨려면 다시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라도 해야했다.
자격증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우선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손을 풀고자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4월까지만해도 '실무 잘하면 되지 무슨 자격증이냐?' 하던 내가 그렇게 무시하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획득했다. 별로 기쁘지 않았다. 성취감도 들지 않았다. 60점만 넘으면 주는 자격증이었고 훨씬 높은 점수로 합격하긴 했지만 내 예상 점수에 부합하지 않았고 그냥 당연한 거라 생각해서 기쁘기는 커녕 못마땅해서 기분이 찝찝했다. 그냥 프로그램 다루는 손을 푸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의의를 둬본다.
대학원
명확한 결과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한 것처럼, 그래서인지 학업을 열심히 했었고 전액 장학금을 비롯해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처럼 직장이 없는 때에 대학원에 들어가는 게 어쩌면 나를 세상에 다시 나오게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해서 산업대학원에 진학을 결정했다. 사실 결정은 나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왜냐면 지원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기 모집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혼자 신청하고 혼자 합격하고 나만 결정하면 되는 대학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학부때 잘 배우지 못했던 분야를 배워보려고 한다.
미래를 향한 아무말 대잔치
내일 모레는 시각디자인기사 시험을 앞두고 있다. 시각디자인기사 자격증이 있고 디자인회사 창업을 해서 3건 이상의 매출을 내면 산업디자인전문회사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 다음 나라장터에서 디자인 용역 입찰을 받으며 일을 해나가는게 나의 현재로서의 베스트 플랜이다. 장거리 달리기 못 하는데, 이 과정 자체는 최소 5년은 봐야하는 장거리 달리기다. 아직은 이런 제도권 안의 디자인업 현황을 잘 모르기에 이렇게 쉽게 글 몇 줄로 적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터무니없더라도 미래를 그려보지 않으면 이 역시도 내일의 눈을 뜨기 어려우니까. 아무말 대잔치라는 소제목을 방패삼아 적어본다.
견뎠어야하는 시간,
해야만 했던 일들,
결국은 다 돌아온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과거의 플로리스트는 물장구를 치지 않으면 가라앉는 것과 같았다. 현재만 살았던 내게는 딱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미래의 투명도 정도가 중요해졌고 이런걸 인지하게 될 수록 꽃과 이별할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디자인 일을 계속 견뎌왔더라면 경력이라고 쌓였을텐데, 포폴이라고 쌓였을 텐데, 미래의 작은 실오라기라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에서야 작은 실오라기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서른이 넘었지만 현재 난 25살이다 라며 최면을 걸어본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나에게,
나라도 응원해야지.
힘내. 파이팅. 늦으면 어때. 잘 될거야.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