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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Dec 09. 2022

스위스 개발자의 평범한 하루

출근해서 가방을 놓기도 전에 TL(테크 리드)에게 말했어.

“어제 프론트엔드 버그를 찾았어요.”

평소 같으면 천천히 해결하겠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어. 곧 코드를 짜도 반영시킬 수 없는 ‘코드 프리즈’ 기간이 시작되거든. 근본적인 수정은 시간 내에 가능하지 않고, 일단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치고 내일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어. 수정을 하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바로 다시 올라와 마무리 지었어. 한숨 돌리고 실험 준비를 시작하는데, 이번엔 데모가 뜨지 않았어. 최근에 데모의 백엔드를 수정했는데 뭘 잘못 건드린 것 같았어. 디버깅을 해보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당장 오늘 밤부터 ‘프리즈’되는 부분이었어. 등 뒤가 서늘했어.


바로 이어서 팀 미팅이 있었어. 각자 돌아가면서 요즘 뭘 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얘기하는 스탠드업 미팅이었어. 나는 빠듯한 일정을 어떻게든 맞춰 프리즈 전에 실험을 시작해 보겠다고 말했어.

“Stretch goal(도전적인 목표)이에요.”하며 스트레칭하는 시늉도 했어.

솔직히 버그 생각에 다른 팀원들의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 회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끝났고 나는 자리로 돌아가서 바로 백엔드 버그를 수정하기 시작했어.


수정은 복잡하지 않았고, 유관팀에 연락해서 반영 승인도 바로 받을 수 있었어. 나는 승인받자마자 코드를 반영시켜 버렸어. 평소 같으면 테스트들이 다 돌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일단 반영시키고 테스트가 돌아가는 걸 지켜보기로 했어. 시간은 벌써 퇴근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어.


실험 준비를 하면서 모니터 한쪽에 테스트를 띄워두고 있었어. 아니나 다를까 테스트에 빨간불이 들어왔어. 테스트는 우리 팀 기능도 아닌 다른 팀의 기능을 내가 망가뜨렸다고 알려왔어. 그 팀에서 지금 당장 내가 짜 넣은 코드를 날려버려도 나는 할 말 없는 상황이었어. 연락이 오기 전에 빨리 ‘재’ 수정을 해야 했어.


정신없이 ‘재’ 수정을 마쳤지만, 반영시키려면 TL의 승인이 필요한데 이미 그는 퇴근한 지 오래였어. 그래도 뉴욕은 아직 낮이어서, 비슷한 일을 하는 뉴욕팀 TL의 도장을 받아 ‘재’ 수정을 반영시킬 수 있었어. 급한 불을 드디어 다 껐지만,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 지지 않았어. 실험 준비를 좀 더 하다가 밤 열 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어. 저녁을 먹지 못해 속이 좀 쓰린 채였어


오늘 평소보다 좀 바빴던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평범한 하루였어. 디버깅하고 , 고치고, 회의 들어가는 게 내 일상이야. 네 조카 꿈이 개발자라며? ‘라떼’만 해도 개발자가 꿈인 초등학생은 흔치 않았는데, 요즘은 좀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해. 암튼, 직업소개를 부탁받고 뭘 얘기해주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그냥 내 일상을 소개하는 게 제일 와닿을 것 같았어.


모든 직업이 나름대로 힘들겠지만, 개발자도 쉬운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 매일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기출 변형이 너무 다양해서 미간에 주름이 늘어. 업무강도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야. 그래도 내가 만든 기능을 사람들이 잘 써줄 때 보람 있어. 다른 직군에 비해 회사 분위기가 자유로운 것도 좋아. 일은 좀 힘들긴 한데, 개발은 누가 어디를 개발했는지가 다 남으니까 일한 만큼 성과를 챙겨갈 수 있어. 또 자기가 성과에 대한 욕심을 좀 놓으면 그만큼 여유롭게 일할 수도 있고. 아, 해외 취업 기회가 많은 것도 장점이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전반적으로 힘들지만 뿌듯하게 일하고 있어. 물론 언젠가 전업 오타쿠가 되는 게 꿈이긴 하지만 그 전까진 적당히 고생하고 적당히 즐거워하며 코딩하며 살 것 같아.


2022.12.9. 현업 개발자이자 전업 오타쿠 지망생인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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