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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가요?”
이민자로서 재이민을 준비하며 스위스에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인 것 같다. 미국으로의 이주가 결정되고 보험 해약을 위해 전화했을 때 보험사에서 “압멜둥"을 보내달라고 했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보험사 직원은 “디레지스트레이션 페이퍼”라고 다시 말해 줬지만 나는 여전히 “그게 뭔가요" 상태였다. 친절한 보험사 직원은 이민청에 가서 거주 등록 취소를 해야 한다고까지, 알려주었고, 그제야 나는 통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스위스로 이민 갈 때와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갈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나는 출발지에서도 이방인이라는 점. 그래도 스위스에 처음 왔을 땐 회사에서 제공하는 도착지 정착 지원 서비스가 있어서 도움받을 수 있었는데, “출발지 서비스" 같은 건 없었다. 한국을 떠나던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출발지엔 익숙할 테니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연금과 보증금 같은 받을 돈들과 세금과 약정 위약금처럼 내야 할 돈들이 읽을 수 없는 독일어 우편으로 고지되었다. 아니 고지되어야 했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본의아니게 탈세하게 될 수도 있고, 세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고,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고, 이미 가지고 있는 돈을 인출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독일어 양식들 위로 번역기를 돌려도 여전히 아리송했다. 꿈속에서도 내가 잊은 일이 없는지 헤아리고는 했다.
미국으로 이삿짐도 보내야 했다. 1 Lift Van 크기(원룸 이사 크기)로 이삿짐센터와 계약했는데 이삿짐센터에서 사전 방문했을 때 짐이 너무 많다는 피드백을 해주었다. 사내 벼룩시장에 헐값으로 가구와 세간살이들을 내놓고 대형폐기물을 처리해 주는 업체와도 연락했다. 소형 전자기기는 스위스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많은 겨울옷을 버렸다. 이삿짐은 배를 타고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 후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긴 여정에 물건들이 상하지 않도록 이삿짐 대부분을 손수 쌌다. 옷가지 사이사이에 제습제를 끼워 넣고 액체류는 새지 않도록 비닐로 다시 감쌌다. 배에 실을 수 없는 간장 식초 고춧가루 같은 먹을 것들과 취급 주의 마크가 있는 세제, 혹시라도 분실하면 골치 아픈 서류와 귀금속 등을 골라냈다. 석 달 동안 입을 옷과 필요한 물건들까지 캐리어에 정리하고 나니 이주가 지나 있었다.
2년 전 처음 집을 보러왔을 때처럼 이삿날엔 날씨가 좋았다. 내 짐들은 총 마흔 개 박스에 나누어 담겨 차에 실렸다. 이사 준비가 길어져서 이삿날이 빨리 오기를 바랐는데 집안이 텅 비자 자꾸만 집안을 서성거리게 됐다. 내 흔적은 치워졌지만 내가 이 집에 살게 한 창밖 풍경은 그대로 있었다. 거실에 햇빛이 가득했고 넓은 통창 밖으로 취리히 시내와 유틸리베르그 산이 보였다. 스위스로 오던 나는 영감을 주는 곳에 살고 싶어 했었는데 이 집이 바로 그런 집이었다.
결과적으로, 잊은 일들이 좀 있었다. 아직 인출해오지 못한 연금이 있고, 파리 올림픽 티켓을 양도하지 못했고, 스위스 교통 패스 환불을 잊었다. 다행히 대체로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스위스에 사소하지 않은 마음을 두고 왔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이삿짐을 실은 배는 대서양 건너 미국에 도착할 것이다. 나도 이제 뒤돌아보기를 멈추고,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