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지금 출근하는 버스 안이야. 그리고 버스 안에서 버그가 리포트 됐다는 메시지를 받았어. 가방에 있는 노트북을 꺼내 조금이라도 볼까 고민했는데 그건 좀 아닌 거 같지?
나는 새로운 팀과 새로운 나라로 옮겨온지 이제 넉 달이 다 돼가. "스위스 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한국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멋질 텐데 사실 그렇지 않아.
불편한 게 많지만 무엇보다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일이야. 겨우 일정 맞춰 실험 시작했는데 매일 날아오는 버그리포트에 두드려 맞고 있어. 뭐가 문제였던 걸까 버그 배쉬를 건너뛰었던 게 문제였을까. 원래 하던 일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실험 돌리고 보니 내가 생각지 못한 게 많았어.
벌써 회사다. 새삼 회사 건물이 너무 커. 갔다 올게.
다시 안녕. 나 이제 퇴근해. 다행히 버그는 오늘 안에 고칠 수 있었어. 문제는 원래 하려던 새로운 실험 세팅을 하지 못했다는 건데... 그건 내일 생각하자.
방금 트위터에서 맘에 드는 글을 봤어.
"수험생활은 무뇌처럼 해야 하는 듯 수학을 장마 온 것처럼 틀려도 속으로 케이팝 부르면서 오답노트 펴야 함"
오늘 나에게 이보다 필요한 말이 있을까! 장맛비처럼 버그가 쏟아져도 속으로 붐치키치키 하면서 수정하는 수밖에. 수정하면서 배우게 될 거고 그럼 다음 실험은 좀 낫겠지.
요즘 취리히엔 비가 정말 자주 와. 봄이 올 때까지 하루 건너 하루 비 오는 날씨가 이어질 거래. 가을 겨울 동안 비처럼 내리는 버그들을 고치다 보면 봄에는 나도 좀 아는 척할 수 있어지겠지. 너도 파트장이 듣도보도 못한 거 시켜서 힘들다며. 이 또한 지나가리. 지나가면 성장해 있을 거야.
2022.9.27 내일도 출근하는 유미가.
트윗 출처: https://twitter.com/q3_hv/status/1574404424545763332?t=4BOMLlRpRM07ZpIcQbxWUg&s=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