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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Sep 29. 2022

나를 키운 팔 할

성장에 지친 너에게

어제 새로운 영어 선생님을 만났어. 외국에서 밥벌이하려면 영어 공부해야지. 전공 공부도 계속해야 돼. 한동안 놓고 있었는데 이번 주말부터 다시 시작할 거야. 공부며 일이며 할게 많아서 얼마 전부터 스케쥴러를 다시 쓰고 있어. 중장기 계획도 있어야 하니까 매달 목표와 나와야 할 결과물들을  종이에 적어서 화장실 거울에 붙여놔. 이달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건 좀 어려워 보이네.

어제 “이 또한 지나갈 거고. 지나가면 성장해있을 거”라고 하면서 편지를 마쳤었지. 실은 나 어제 밤새 그게 불편했어. ‘성장’이란 단어가 너무 지겨워서.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창피함이야. 예전에 본가 갔다가 고삼 때 쓰던 스케쥴러를 봤어. 스케쥴러 맨 아래 칸에 오늘의 한마디를 쓰는 자리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도 매일 스스로를 혼내고 있었더라.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성장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내 미숙함이 창피해서야. 남의 미숙함은 때로 귀엽게도 보이는데 나의 미숙함은 매일 새롭게 끔찍해. 그래서 고삼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나는 스케줄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어.


이 또한 지나가긴 할 거야. 이달 안엔 어렵겠지만 다음 달 초에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겠지. 하지만 나는 금세 또 다른 나의 미숙함을 발견하고 끔찍해하고 있을 것 같아. 재촉하지 않아도 자라나는 나무처럼, 나도 그렇게 자랄 수는 없을까. 그냥 그곳에 있을 뿐이 햇살이 자연스레 나무를 키워내듯 말이야.


2022.9.28. 뜬금없이 수목장을 떠올리고 있는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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