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미 Oct 01. 2022

익숙했던 일들과 낯설어지기 위해

닥치고 싶지 않은 너에게

어제 회사 Summit이 있었어. 사전에 찾아보니까 ‘정상회담’이라고 나오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우리 본부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서 친해지기도 하고, 지난 성과나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얘기하는 그런 행사였어. (사실 ‘본부’라는 게 없긴 한데… )

팀별로 발표도 하고, 임원들한테 질문도 했어. 비슷한 행사가 한국에서도 있긴 했었는데, 분위기가 다르긴 하더라. 일단, 질문이 진짜 많아. 그리고 질문을 앉아서 안 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임원들한테 하고 싶은 말 하는 게 신기했어.

화상으로 같이 일하던 미국 팀이랑 실제로 만나서 세미나도 했어. 시작하기 전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자기소개 양식이 있었어.

1. 어떤 일을 하는지 2. 어떤 기술적인 질문에 답해 줄 수 있는지. 3. 제일 자랑스러운 코드나 설계문서가 무엇인지 4. 스스로를 한 단어로 소개한다면.

이 네 가지 질문에 답하는 거였어. 사람들이 3번 4번에 답하는 태도가 아주 당당했어. 대답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단 몇 분 밖에 되지 않았거든? 장전돼 있던 총알이 발사되는 것처럼 자랑이 바로 나오더라. 자기를 한 단어로 소개할 때에도, 자기 장점을 형용사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체계적’이라든지, ‘적극적’이라든지. 더불어 이 일을 하게 되어서 행복하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어.

나는 어땠냐고? 머리가 하얘졌어. 대충 얘기하고 후회하다가 나중에 “저 대답 다시 하고 싶어요.”하고 뒷북을 둥둥 울렸어.

행사 끝난 다음에도 신기한 일이 또 있었어. 미국 팀 사람들이 근처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갈 거라고 하는 거야. 저녁시간까지 남아있던 나랑 우리 매니저(팀장?), 팀원 한 명이 갑자기 그 미국 팀 저녁식사 자리에 끼게 됐어. 식당에 가니까 임원도 두 명 있더라. 임원들이랑 드라마 얘기하면서 파스타 먹었어. 파스타 다 먹고 몇 명은 남아서 와인을 더 마셨고, 나를 포함한 다른 몇 명은 먼저 일어났어. 그리고 계산은 각자 했어. 출장 온 사람들도 각자 계산하고 각자 출장비 청구했을 거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기한 게 너무 많았어. 좀 잊고 있었는데, 외국에 나오면 이런 낯선 경험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른이 말씀하실 때 조용히 듣고 있는 게 익숙하지만, 익숙한 게 꼭 나랑 잘 맞는 건 아니잖아? 어제는 나도 좀 닥치기 싫은 기분이 들더라.


 2022.09.30 익숙하게 닥치고 있던 유미가

작가의 이전글 나를 키운 팔 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