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일들과 낯설어지기 위해
닥치고 싶지 않은 너에게
어제 회사 Summit이 있었어. 사전에 찾아보니까 ‘정상회담’이라고 나오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우리 본부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서 친해지기도 하고, 지난 성과나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얘기하는 그런 행사였어. (사실 ‘본부’라는 게 없긴 한데… )
팀별로 발표도 하고, 임원들한테 질문도 했어. 비슷한 행사가 한국에서도 있긴 했었는데, 분위기가 다르긴 하더라. 일단, 질문이 진짜 많아. 그리고 질문을 앉아서 안 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임원들한테 하고 싶은 말 하는 게 신기했어.
화상으로 같이 일하던 미국 팀이랑 실제로 만나서 세미나도 했어. 시작하기 전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자기소개 양식이 있었어.
1. 어떤 일을 하는지 2. 어떤 기술적인 질문에 답해 줄 수 있는지. 3. 제일 자랑스러운 코드나 설계문서가 무엇인지 4. 스스로를 한 단어로 소개한다면.
이 네 가지 질문에 답하는 거였어. 사람들이 3번 4번에 답하는 태도가 아주 당당했어. 대답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단 몇 분 밖에 되지 않았거든? 장전돼 있던 총알이 발사되는 것처럼 자랑이 바로 나오더라. 자기를 한 단어로 소개할 때에도, 자기 장점을 형용사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체계적’이라든지, ‘적극적’이라든지. 더불어 이 일을 하게 되어서 행복하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어.
나는 어땠냐고? 머리가 하얘졌어. 대충 얘기하고 후회하다가 나중에 “저 대답 다시 하고 싶어요.”하고 뒷북을 둥둥 울렸어.
행사 끝난 다음에도 신기한 일이 또 있었어. 미국 팀 사람들이 근처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갈 거라고 하는 거야. 저녁시간까지 남아있던 나랑 우리 매니저(팀장?), 팀원 한 명이 갑자기 그 미국 팀 저녁식사 자리에 끼게 됐어. 식당에 가니까 임원도 두 명 있더라. 임원들이랑 드라마 얘기하면서 파스타 먹었어. 파스타 다 먹고 몇 명은 남아서 와인을 더 마셨고, 나를 포함한 다른 몇 명은 먼저 일어났어. 그리고 계산은 각자 했어. 출장 온 사람들도 각자 계산하고 각자 출장비 청구했을 거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기한 게 너무 많았어. 좀 잊고 있었는데, 외국에 나오면 이런 낯선 경험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른이 말씀하실 때 조용히 듣고 있는 게 익숙하지만, 익숙한 게 꼭 나랑 잘 맞는 건 아니잖아? 어제는 나도 좀 닥치기 싫은 기분이 들더라.
2022.09.30 익숙하게 닥치고 있던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