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버그가 떨어져도
언제나 방법을 찾아내는 너에게
나 좀 큰일 난 것 같아. P0 버그를 내일까지 고쳐야 해.
우리 회사에선 버그마다 우선순위를 매겨. P0가 제일 높은 우선순위이고, 24시간 안에 대응해야 해.
지금 나한테 온 P0버그는 특정 기종의 핸드폰에서 발생하는 이슈야. 오후 네시쯤에 버그에 배정되었는데 퇴근할 때까지 재현도 해보질 못했어. 가지고 있는 기기들로는 재현도 안된다고 매니저한테 말했고, 퇴근길에 그 기종의 핸드폰을 회사 카드로 사 올 수 있었어. 내일 아침 일찍 회사에 가서 재현하고 수정할 생각이야.
의료보험회사에서 환불받을 돈이 있어서 한 달 넘게 씨름 중이라고 했었잖아. 어제저녁에 드디어 돈이 들어왔어. 세관에서 문제가 생겼던 택배도 오늘 받았어. 이 둘은 내 개인적인 P0 버그들이었어. 한 달 넘게 끌긴 했지만, 마침내 오븐 위에 붙여뒀던 “보험료 환불”과 “관세 내고 택배 받기”, 두장의 포스트잇을 떼어낼 수 있었어. 한시름 덜었구나 하고 회사에 갔는데, 새로운 시름을 얻어왔지 뭐야.
솔직히 지금은 애꿎은 손톱만 또 물어뜯고 있어. 하지만 알고 있어. 못 받을 것 같았던 돈을 받았고, 잃어버릴 것 같았던 택배가 도착했듯이. 못 고칠 것 같은 이 버그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또 방법을 찾게 될 거라는 걸. 그냥 하나씩 해봐야지. 지금은 일단 늦었으니까 그만 자러 가려고.
2022.10.20. 손톱이 남아나지 않는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