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과 코딩 사이 글쓰기
글 쓰는 이유를 물었던 너에게
지인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11월호에 내 글을 싣기로 해서 오늘은 오랜만에 마감을 했어. 성장의 경험에 관한 글을 부탁받았는데 고심 끝에 아주 사적인 내용을 써서 보냈어. 그 글을 쓰는 건 정말 부담이 컸어. 오랜만에 쓰는 긴 글이기도 했고, 주제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잘 쓰고 싶었어.
내 취미는 글쓰기와 아이돌 덕질이야. 근데 이 둘은 취미라는 점만 같고 양상이 아주 달라. 일단 아이돌 덕질을 하는 나는 소비자인 반면 글을 쓰는 나는 생산자야. 덕질을 할 땐 (티켓팅만 빼면) 잘해야 한단 생각을 하지 않지만, 글은 오늘처럼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때도 있어. 그래서 덕질을 할 땐 즐겁기만 한데 글을 쓸 땐 때로 고통스러워.
글쓰기는 오히려 내 생업인 코딩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 일단 글이나 코드를 생산해 낸다는 점이 비슷해. 몰입해 있을 땐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는 점도 비슷하고. 과정은 거의 똑같아. 개요를 세우고,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고,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고, 첨삭을 받은 후 발행하는 글쓰기의 과정은 설계를 하고, 데모를 만들고, 수정을 하고, 테스트를 돌리고, 리뷰를 받은 후 반영시키는 코딩의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있어. 하지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돈을 벌어다 주냐, 아니냐야. 코딩은 돈을 벌어다 주니까 하는 건데, 글은 오히려 수강료로 돈이 나가기도 하는데 계속 쓰고 있어.
나는 자꾸 뭘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 글이나 프로그램, 가끔씩은 사진이나 그림도. 과정이 어렵더라도 결과물을 손에 쥐는 게 뿌듯해. 그리고 내가 만든 결과물이 세상에서 쓸모를 찾을 때면 자랑스럽기 그지없어.
코딩을 한지는 이제 십 년이 됐어. 코딩 경력도 짧지만 글쓰기는 더 짧아. 작정하고 쓰기 시작한 건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으니까. 대학생 때 짠 코드를 보면 귀엽기도 하고 너무 허접해서 창피하기도 해. 코딩처럼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덕질처럼 즐겁게, 글을 오래오래 쓰고 싶어. 그래서 오늘 쓴 글이 십 년 뒤엔 창피해지면 좋겠다.
2022.11.5. 글 쓰고 덕질하고 코딩하는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