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어. 친구와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나는 그가 오기 전에 김치찌개를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구웠어.
취리히는 외식이 비싸다 보니, 집으로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게 흔한 일이야. 나도 서울에선 친구를 보통 밖에서 만났었고, 집에서 만나더라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었는데 여기에 온 후로는 종종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게 되었어.
서울에서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던 건 거의 밸런타인데이뿐이었어. 5년 전, 남자 친구와 다섯 번째 밸런타인데이를 맞았었어. 사 먹는 게 훨씬 낫다며 올해는 초콜릿을 만들지 않겠다고 미리 말해두었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또 초콜릿 만들기 세트를 사 버렸어. 그때 살던 낡고 추운 원룸은 애써 녹인 초콜릿 베이스를 순식간에 다시 굳히며 나를 귀찮게 만들었어. 좁은 주방에서 자꾸 굳어 버리는 재료들과 씨름하며 ‘내년엔 꼭 사서 줘야지’ 다짐했었어.
다음 해 밸런타인데이엔 초콜릿을 만들 필요가 없었어. 1월에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거든. 준비할 게 없는 밸런타인데이에, 맛없고 못생긴 초콜릿을 맛있게 먹어주던 작년의 그를 떠올리며 마지막 초콜릿을 사지 않고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오늘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하면서 그때의 초콜릿이 생각났어. 주방은 사정이 훨씬 나아졌지만 내 요리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어. 그래도 나는 정성을 들여 소박한 찌개와 반찬을 준비하곤 해. 맛없고 못생긴 음식이어도 마음을 전하기엔 그만한 게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