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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Nov 20. 2022

맛없고 못생긴 음식

오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어. 친구와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나는 그가 오기 전에 김치찌개를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구웠어.


취리히는 외식이 비싸다 보니, 집으로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게 흔한 일이야. 나도 서울에선 친구를 보통 밖에서 만났었고, 집에서 만나더라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었는데 여기에 온 후로는 종종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게 되었어.


서울에서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던 건 거의 밸런타인데이뿐이었어. 5년 전, 남자 친구와 다섯 번째 밸런타인데이를 맞았었어. 사 먹는 게 훨씬 낫다며 올해는 초콜릿을 만들지 않겠다고 미리 말해두었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또 초콜릿 만들기 세트를 사 버렸어. 그때 살던 낡고 추운 원룸은 애써 녹인 초콜릿 베이스를 순식간에 다시 굳히며 나를 귀찮게 만들었어. 좁은 주방에서 자꾸 굳어 버리는 재료들과 씨름하며 ‘내년엔 꼭 사서 줘야지’ 다짐했었어.


다음 해 밸런타인데이엔 초콜릿을 만들 필요가 없었어. 1월에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거든. 준비할 게 없는 밸런타인데이에, 맛없고 못생긴 초콜릿을 맛있게 먹어주던 작년의 그를 떠올리며 마지막 초콜릿을 사지 않고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오늘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하면서 그때의 초콜릿이 생각났어. 주방은 사정이 훨씬 나아졌지만 내 요리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어. 그래도 나는 정성을 들여 소박한 찌개와 반찬을 준비하곤 해. 맛없고 못생긴 음식이어도 마음을 전하기엔 그만한 게 없더라.


2022.11.19. 언젠가 너에게도 밥을 해주고 싶은 유미가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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