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맥시멀리스트였어. 몇 년 전에 미니멀리즘을 해보겠다고 짐 정리를 시도했었지만 석 달만에 다시 수납장들이 닫히지 않게 돼버렸었어.
그런데 스위스에 와서 본의 아닌 미니멀리즘을 반년째 하고 있어. 임시숙소에서 지금 아파트로 이사온지 벌써 넉 달이 지났지만 아직 커튼도 형광등도 없어. 잠깐 쓰고 버리려던 휘어진 장스탠드를 계속 쓰고 있고,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바 체어를 여전히 협탁으로 쓰고 있어. 옷도 훨씬 적게 사고 있어. 최근 6개월 동안 카디건 하나를 샀는데, 찾아보니 작년 11월엔 한 쇼핑몰에서만 한 달 동안 7벌의 옷을 샀더라.
솔직히 이 갑작스러운 미니멀리즘은 좋아서 하게 된 게 아니야. 물건을 사는 게 불편해져서 그래. 서울에선 자기 전에 핸드폰을 보다가 이것저것 쉽게 주문했었어. 내 취향의 옷과 소품들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으니 밤마다 앱을 켜서 구경하고 결제했어. 그리고 이삼일만 지나면 틀림없이 현관문 앞에 택배가 도착해 있었지만 바로 열어보지 않고 쌓아 두기 일쑤였어. 갖고 싶은 물건을 산 게 아니었어. 습관적으로 결제를 하고 있었을 뿐이야.
지금은 뭘 하나 사려고 해도 돈을 세배는 더 줘야 하는 데다가 맘에 드는 걸 찾기도 어려워. 택배도 가끔 우체국으로 직접 찾으러 가야 할 때가 있고, 집으로 무사히 오더라도 현관문이 아닌 공동현관 앞에 두고 가서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 해.
어쩔 수 없이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어. 솔직히 이곳에서의 쇼핑은 좀 편해질 필요가 있어. 하지만 서울에서 하던 것처럼 멍한 눈으로 아무거나 사서 쌓아두는 걸 다시 하고 싶진 않아. 생각보다 꼭 필요한 물건은 별로 없더라고. 심지어 형광등과 커튼이 없어도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별 문제없어.
2022.11.21. 미니멀한 맥시멀리스트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