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는 수밖에 없었어. 마침 오늘 매니저와 미팅이 있었어서 고민 끝에 말을 꺼냈어. 늘 어려운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던 매니저지만, 뭘 부탁해야 할지도 정하지 못한 채로 무작정 얘기를 시작하려면 용기가 필요했어.
"사실 어제 팀 미팅 전에 화장실에서 좀 울었어요."
매니저는 놀라는 눈치였어.
내가 여기에서 제일 국제적이지 못한 사람 같다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스타워즈 얘기, 와인 얘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고, 나만 변방에서 온 촌뜨기 같다고 말했어.
이곳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말에 매니저도 동의했어. 마침 오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러 가는데(놀랍게도, 여기 스위스 취리히에서도 상영해!) 나는 티켓이 회차별로 두장씩 있었어. 저녁 회차 같이 보러 갈 사람을 구해보면 어떠냐고 매니저가 제안했어.
회사 전체 사람들이 잡담 주고받는 이메일 그룹이 있거든, 거기로 메일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하는 거야. 회사 전체 메일로 아이돌 얘기 라니. 좀 우스워 보이려나 싶기도 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딱히 내가 아이돌을 좋아하든 돌아이를 좋아하든 별 관심 없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냥 메일을 질러버렸어.
"[잡담][공짜 영화표, 오늘!] 000그룹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제목과 내용을 채우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어.
오후 회차를 보러 극장으로 출발하는데도 답장은 오지 않았어. 취리히에 사는 직장인 K-pop 팬, 흔하지 않은 게 당연해 보였어. 그런데 이동하는 트램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어.
"내가 보러 가도 될까?"
나는 방금 오후 회차를 다 보고 나왔어. 마침 영화관이 회사 근처라서 회사에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야. 곧 같이 보러 가기로 한 그 사람을 만날 거야. 꼭 첫 소개팅 나갈 때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어제 내가 그런 얘길 했었지, 지금 나는 낯선 곳에 와 기가 많이 죽어서 흐물흐물한 우동 면발 같다고. 처음 상경했을 때에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우동상태에서 다시 팔팔해질 수 있었듯, 지금도 매니저와 곧 만날 새로운 사람과, 나를 꾸준히 지지해주는 너의 도움으로 힘을 내 볼까 해.
2022.11.30. 두근두근한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