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유튜브가 있으면 좋은 이유
1년간 유튜브를 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퇴사로 위축되고 불안하던 시기의 감정과, 그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도전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출퇴근이 없어진 시기, 무엇인가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참 별안간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함께 퇴사한 팀원들 모두 이 프로젝트에 의기투합하기로 동의했습니다. 들이대는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보려는 간절함이 통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유튜브 도전을 실행하는 데에 내향적인 성격들은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바람 부는 언덕에 힘겹게 일어선 한 떨기 꽃 같았습니다. 구색은 그럴듯했지만 위태로운 모습이었습니다. 1주일에 한 편씩 영상을 올리기로 했지만, 그 외의 구체적인 계획과 자원은 만무했습니다.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시작한 공동의 일이기 때문에 의욕의 구실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계속해서 힘과 시간을 쏟아도 성과가 없다면 와해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녹록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애잔하고 애틋한 생각은 이 프로젝트를 책임감으로 지켜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느슨한 관계 속 꾸준함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1년 동안 80여 편 정도의 영상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3가지 정도 생각납니다.
첫째, 개인의 근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퇴사가 신변에 큰 이야기 거리이지만 굳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보니 꺼내기 곤란할 수 있는데, 유튜브로 공개하다 보니 그 번거롭고 난처할 수 있는 단계들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또 이야기의 형식을 제법 갖춘 콘텐츠였기 때문에 표현과 전달이 나쁘지 않았는지, 과분한 응원까지 받았습니다. '약점을 오픈할 때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라고 누군가 말하던데, 이왕 공개할 거면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기엔 유튜브만 한 플랫폼이 없었고요.
둘째, 새로운 매출이 생겼습니다. 바로 외주 영상 제작이었습니다. 유튜브의 영상을 보신 분들 중에 저희 나름의 감각과 자신 있게 펼치는 기획을 좋게 보셨다고 합니다. 주제가 우리 이야기이다 보니 거리낄 것이 없었고, 그래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퇴사 전까지 수년 동안 손발을 맞추며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왔던 집단이었다 보니 다른 기관과 업체들의 요청대로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클라이언트들께 20여 편의 영상을 의뢰받아 결과물을 만들었고, 동시에 귀중한 매출을 만들었습니다. 맨땅에서 이룬 '쾌거'였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오래간만에 계좌에 입금된 숫자로 존재의 가치를 느껴보았습니다.
마지막 셋째,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퇴사 후부터 현재까지의 기록이 우리만의 특별한 창업 히스토리가 되어 유튜브는 미팅이 예정된 파트너, 인터뷰를 앞둔 분들께 저희를 파악하는 중요한 데이터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유명 채널이 아니더라도 열혈 구독자와 크리에이터와의 관계는 마치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 같더군요. 처음 만나 아이스브레이킹이 필요한 어색한 관계임에도 소위 라포(Repport)라고 하는 일종의 정서적 유대를 수월히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안녕하세요" 다음에 바로 해주시는 인사말이 "유튜브 잘 봤습니다." 였으니까요.
영상 기획과 편집 실력이 나날이 느는 것은 물론이고, 몇 개월 뒤 콘텐츠 회사까지 설립할 수 있을 정도로 팀워크도 더 단단해졌습니다.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들이 펼쳐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의 큰 변화는 제가 '대표'가 되었다는 것과 바로, '관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 개인의 체면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주변을 예민하게 살피는 성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 불가능한 영역의 사람들에게 저를 오픈하는 부분엔 아주 신중합니다. 근 10년 동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피드 공개 범위는 '친구만 공개'였습니다.
그런 사람이기에 제가 소속된 집단의 대표성을 부여받는 일은 항상 부담이었습니다. 말이 많아지면 가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의도치 않게 구성원들에게 누를 끼치기 때문에 회사 이름으로 나가는 특강과 인터뷰는 저에게 큰 짐이었습니다. 창업 멤버로서, 부서장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한 것이지, 나서는 것을 즐겼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도 회사 내부의 이야기를 밖으로 보여주자며, 기업 유튜브 운영 의견이 나올 때마다 항상 냉소적인 입장에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책임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표가 된 이상, 우리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제 관종은 필수 불가결의 요소입니다. 기획과 편집 외에도 영상에 계속 출연하며 유튜브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알림과 구독 설정 부탁드립니다.' 하는 멘트를 할 때 어찌나 힘들던지요. 엄지를 들 땐 잠시 '현타'가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주목경제시대의 그 문턱을 넘은 것인지, 아니면 생존이라는 본능을 발휘하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는 이제 빼 박 '관종'이 되었습니다. 영상을 만들어 개인 계정에 업로드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럼없이 지인들에게 퍼다 나르고 있습니다.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말도 잊지 않습니다. 이제는 유튜브 영상뿐 아니라 우리가 다루는 다양한 서비스들을 알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 글도 그 노력의 일환입니다.
관종의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도 무감각해졌습니다. 오히려 회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내가 나서기 머뭇거리는 순간, 아까운 기회 하나를 놓치는 것이라 여기며 모든 도전에 응수로 맞서고 있습니다. 대표가 된 이상, '주제넘게 나서지 말자'라는 마음보다 '그 주제를 넘어서야 한다'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회사의 서비스를 알리는 홍보 배너를 가방처럼 메고 다니는 어느 스타트업 대표님도 계시더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제 관종은 계속됩니다. 브런치, 유튜브, SNS에는 회사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계속해서 꺼낼 예정입니다.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획력입니다. 콘텐츠 비지니스를 표방하는 스타트업에게 많은 경쟁사 사이에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능력은 실력이며 그 자체로 성과입니다.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시장에서의 틈을 찾아야 하고 동시에 시의적인 주제에 반응하는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MBC 9시 뉴스 앵커가 우리 유튜브 채널을 소개하는 사건도,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이야기가 일간지 지면에 대문짝만 하게 등장한 사건도 만들었습니다. 우연에 가까운 일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연속되는 일들이기에 이것은 자못 큰 성과입니다.
또 하나는 진정성입니다. 게임, 영상, 도서, 교재 등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지식과 방법은 이제 널려있습니다. <생활의 달인>에 등장하는 달인들이 비법을 공개하는 것은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콘텐츠를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보다, 지금은 '누가' 만들었는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누구인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에 많은 자원을 투입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디서 출발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할까요.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어떤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지 유튜브에 우리의 히스토리가 쌓일수록 우리의 진정성은 더욱 빛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약점과 한계와 맞선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 뻔뻔해지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영상에 나온 제 모습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유튜브를 주저하고 계시나요? 도움이 되시라고 찍어둔 영상이 있습니다. 부디 좋아요와 구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