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루 Jun 12. 2024

[에세이] 엄마는 다 알아

#1. 엄마는 모르게

[에세이] 엄마는 다 알아


엄마는 내게 이런 주문을 하셨다. 울면 지는 거라고, 울먹거릴 즈음에는 이를 꽉 깨물라고, 그래도 안되면 혓바닥도 잘근 씹어보며 버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주문이 의아했던 나는 매번 울음 조절을 실패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애랑 싸우고 울음이 터졌다.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살집도 많아서 자주 놀림감이 되었던 나는 작은 장난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기에 시비 걸기 좋은 상대였다. 눈물이 마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친구를 겨냥하여 웃고 떠들다가 하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맞벌이하셨던 부모님 그리고 나보다 학교 수업을 더 오래 듣는 오빠가 없는 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조용한 거실에는 시계 소리만 깔짝대고 활짝 열린 베란다 문에서 바람이 들어온다. 얇은 커튼이 바람을 맞고, 거실 안쪽으로 부웅 바람을 안고 있다가 이내 다시 차르르 자리 지키기를 반복한다. 그사이 먼지들은 대낮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멀리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외로움을 알리 없는 어린 나이었는데 거실에 멍하니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시계는 오후 세시.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엄마가 집에 도착하셨다. 오전의 눈물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퇴근하신 엄마가 나를 뚫어지게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울었지.


혹시 울었냐는 물음도 아니고, 이미 확신에 찬 단언이었다. 이어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셨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려다가 그날의 두 번째 울음을 터트렸다.


학교에서의 눈물이 그냥 창피해서였다면, 이번 눈물은 세 가지 정도 복잡한 이유를 가졌다. 첫 번째, 엄마의 주문을 지키지 못해 혼날 것 같았다. 두 번째, 내게 장난쳤던 아이를 떠올리니 분통이 터졌다. 세 번째, 엄마가 알아주니까 괜스레 더 서러웠다.


엄마는 겉옷을 벗지도 않은 채, 나를 무릎에 두고 안아 토닥여주셨다. 또래 친구들보다는 컸지만 엄마 품에는 쏙 들어갔다. 엄마 품에 있는 동안엔 혼내지 않으셔서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엄마는 내가 운 걸 어떻게 아셨을까? 오전에 운 건데, 눈이 부어있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혹시 전화하셨나?


귀신은 속여도 엄마는 못 속인다는 말이 정말 맞더라. 엄마는 마치 거짓말탐지기처럼 속이려야 속일 수 없었고 표정이나 말 한마디만으로 너무 빠르게 눈치를 채시는 통에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거짓말할 바에야 먼저 말씀드리거나 아니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그날의 엄마 마음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그리고 독립을 하게 되면서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만큼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졌고, 혼자 울기도 하고, 버텨보기도 했다. 토닥이는 엄마의 손길 없이, 엄마는 모르게 지켜온 이야기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 글쓴이 : 이가루(35/여/회사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