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는 모르게
길가에 웬 돌 하나가 떨어져 있다.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 비켜갔다. 그러다 가끔은 그 돌을 주워 던져봤다. 누군가를 겨냥한 건 아니었지만 비명 소리가 들렸던 걸 보면 사람이 맞은 게 분명했다. 반대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가 그 돌을 맞게 되었을 땐, 피 칠갑을 하고 주저앉아 울었다.
내가 한 말이 와전되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적, 다른 이가 살짝 던진 몇 마디 말에 며칠을 울며 상처받았던 적. 결국 말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너무 많았다. 친한 사람이니 상관없다며 믿고 이야기를 하고도, 자기 전에는 불안해하며 후회했다. 차라리 가끔 보거나, 아주 낯선 사람에게 내 고민을 가벼이 터놓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일이었다. 자연스레 말 한마디, 단어 한마디에 예민한 사람으로 변했다. 그러다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다. 말을 줄이기로 했다.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함부로 옮기려 하지 않았다. 이건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름 타지에서 함께 자취하는 자식들끼리 맺어진 의리랄까.
어느 날엔 오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취업 준비를 하게 되었다. 자의반 타의 반으로 갑자기 정해진 퇴사였기에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오빠는 퇴사 소식에 이어서 엉뚱한 말을 했다.
- 엄마한텐 아직 말 안 했어
‘엄마한텐 말하지 마’라는 뜻이었다. 오빠가 직접 엄마에게 말할 때까지 나는 의리를 지켰다. 학원 안 가고 동네에서 축구하는 오빠를 발견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 떨며 고자질했던 내가 드디어 발전했다.
엄마와의 통화 중에 오빠 얘기가 나오려 하면 모른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다른 얘기로 넘겼다. 오히려 이제 곧 장가갈 나이인 아들을 너무 애처럼 걱정하지 마시라며 안심시켰다. 엄마는 한참을 나중에야 오빠 소식을 오빠에게 직접 들으셨다. 놀랐다가 안도하시면서도 나에게는 배신감을 느끼신듯 했다.
- 너는 어쩜 입이 그렇게 무겁니?
몇 주간 비밀을 지켜온 나를 보고 황당해하시는 엄마를 보니 왜인지 모르게 뿌듯했다. 가족 간의 이야기가 돌은 아니었겠지만, 어찌 되었건 말이 주는 무게를 체감하는 나이가 된 것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 얘기를 쉽게 흘리지 말고, 내 얘기를 할 때에도 여러 번 고민하며 대화 상대와 신뢰자본을 쌓았다.
“엄마한텐 아직 말 안 했어”를 시작으로 소개팅 얘기, 연애 얘기, 돈 얘기 등 남매의 의리는 계속되고 있다.
・ 글쓴이 : 이가루(35/여/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