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는 모르게
[에세이] 힘들면 그냥 집에 와
- 나도 그냥 집에 오고 싶지. 근데 우리 집은 지방이잖아 엄마. 서울이 무조건 지방보다 좋다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서울에 더 많은데 어떻게 여기에 있어. 여긴 나중에 살러 오기 좋은 곳 같아. 엄마가 자꾸 일 그만두고 오라고 하면 나는 더 약해진다니까? 그냥 시시하고 재미없이 살고 싶진 않아. 갑자기 무슨 방송 작가야. 방송 작가는 뭐 내가 다시 하고 싶다고 시작할 수 있는 건 줄 알아?
힘들어 보이는 딸을 위로하고자 집으로 오라고 했을 뿐인데, 나는 오히려 엄마에게 버럭 화를 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엄마에게 실수가 많아졌고, 문 쾅 닫고 입 꾹 닫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돌아간듯했다. 밖에서는 웃는 척하고 사람 좋은 척하더니 막상 집에서는 이중인격자 같았다. 온 신경이 감정적으로만 꼬여갈 때는 마음과 말이 다르게 나온다. 엄마는 당신도 여자이기에, 딸이기에, 이런 나를 이해해 주시는 걸까. 한참을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계셨다.
물론 본가에서의 생활은 평온 그 자체였다. 아침마다 코끝을 할짝거리며 깨워주는 어린 강아지가 있었고, 매일 조금씩 하는 산책은 힐링이 되었다. 빨래도 내놓으면 엄마가 빨아주시고, 배고프면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놀고 싶을 땐, 주변에 사는 동네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시시덕거릴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강의를 나갔던 학교나 센터, 글 쓰는 방송국도 모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말 그대로 홈그라운드가 주는 안정감은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안 제일 불안해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들쭉날쭉한 수입과 밤낮 바뀌는 생활은 성실하고 건강한 생활이 아닌 듯 비쳤다. 그래서 서울이든 어디든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바라셨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효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집으로 내려오라며, 다시 프리랜서를 해보라니. 순간적으로 나는 그 또한 쉽지 않을 것을 지레 짐작하곤 이내 무력해졌다. 작은 우물 속에서 낮은 점프력을 핑계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한지 일 년여만에, 큰 물가에서 떠내려가듯 무너지는 내 모습이 초라했다.
한참 동안의 일방적인 짜증이 엄마에게 죄송스럽다가도 약간은 후련하기도 하면서 다행스러웠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 그것이 나를 다시금 평안하게 만들었다.
-그냥 하는 얘기지 뭐,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얘길 해요. 그냥 해본 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꽤 시원한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 믿을 구석도 있겠다, 세상에 밥벌이가 뭐 그 회사뿐인가 하며.
・ 글쓴이 : 이가루(35/여/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