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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루 Jul 10. 2024

[에세이]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

#5. 엄마는 모르게

[에세이]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


 20대 후반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 중간에 1-2년간은 나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때가 있었다. 오빠는 서울로 취업을 했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제주도민이 되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틈을 타서 꽤나 20대스러운 연애도 하고, 엄마가 싫어했던 인터넷 쇼핑도 자주 했다. 군것질도 눈치 보지 않았고 눈여겨본 귀여운 새끼 강아지도 덜컥 입양해왔다. 그렇게 부모님의 염려와 검열 없이, 자취하는 기분을 누리고 있을 찰나. 아버지께서 제주도의 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은 수술을 동반한 입원이었는데 엄마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장에 찌꺼기가 쌓여 복통을 일으켰고,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일주일 뒤, 엄마가 같은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질환의 원인을 그제야 제대로 여쭤봤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소화가 잘 안되는 음식을 섭취하거나 끈적이는 음식물 섭취 시 찌꺼기가 쌓여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단다. 가장 안 좋은 음식 중 하나는 '떡'이라고 했다.


 아뿔싸. 우리 부모님의 제주 취미는 매주 1회, 시장에서 오메기떡을 사드시는 거였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장날에 신선한 떡을 사드시고, 남은 6일 동안은 미리 사둔 떡을 냉장고에 보관하여 매일 간식으로 드셨으니.. 말 다 했다. 아프셨던 이유가 무조건 떡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날부터 나는 떡이 싫어졌다. 무조건 떡 얘기만 나오면 내가 노발대발 해대는 통에, 집에서는 떡은 절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몇 달 전, 본가 김치냉장고 한켠에 숨겨진 떡을 발견했다. 내가 보면 화낼 것을 알고 엄마가 검정 봉지에 둘둘 감아 숨겨두셨던 거다. 엄마는 머쓱하게 웃으셨다.


- 딸내미가 하도 뭐라고 해야지~ 

   일부러 숨겨놨더니 어떻게 찾았대?

   검열을 해라 아주~


 민망해하시는 엄마에게 또 한 번 직설적으로 떡 같은 소리를 날렸다.


- 떡 먹지 마세요. 떡 좋아하지 마세요. 

   병원 갈 생각하고 떡 드세요.

   병원 가고 싶으면 떡 드시면 되는 거죠.


 그날 이후로 나는 본가에 도착하면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꼭 뒤져보며, 떡의 존재 유무를 파악하곤 한다. 유일하게 내가 부모님의 건강을 염려하여 검열하는 과정이랄까. 이번 달에도 본가에 가면 냉동실 구석구석과 김치냉장고 속까지 샅샅이 뒤져봐야겠다. 나는 이제 한 개의 떡도 용납할 수 없다.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




・ 글쓴이 : 이가루(35/여/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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