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마는 모르게
[에세이] 수습하는 어르니
출근할 때, 한 번에 현관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출입증을 두고 와서 다시 집안에 들어오기도 하고, 지갑을 안 가져가거나 마스크를 두고 나오는 일도 잦다. 어릴 땐 안경을 쓰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하는 길엔 ‘왜 이렇게 뿌옇지~’하며 안경을 두고 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봐도 너무 심할 정도로 칠칠맞았다.
오빠가 옆 동네 공원에서 열리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챙기라던 손목시계를 집에 두고 나와, 결국 엄마는 내게 따라나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두 남매를 챙기기엔 꽤나 어렸을 엄마였기에,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대책 없는 잼민이로서, 손목시계를 가지고 무작정 엄마와 오빠가 있을 공원으로 나섰다.
대회가 열리는 곳은 성인 걸음으로 약 20분 정도 되는 곳에 위치했다. 나는 당시 아파트 안, 아파트 옆 상가, 오빠네 초등학교 외에는 혼자 걸어나가본 적이 없었다. 꽤 무서웠고 겁이 났지만, 언젠가 엄마가 해주신 말을 떠올리니 자신감이 생겼다. ‘길을 잃었을 땐 이왕이면 유니폼을 입은 사람한테 물어보기’.
우선 눈에 보인 야구르트 아줌마에게 갔다. 알려주신 대로 한참을 걷다가, 이번엔 우체부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왼쪽, 오른쪽도 아닌 “쭈욱 가, 계속 가”라는 몇 마디 말만 기억하고 일단 걷다 보니 글짓기 대회를 하는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청난 퀘스트를 끝낸 느낌에 영웅이 된 것 같았다.
엄마와 오빠를 찾는 일만 남았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두리번거리던 찰나,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꽤 많이 놀란 표정이셨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며 자초지종을 물어보셨다. 나는 마치 큰 미션이라도 수행한 듯 자랑하며 내가 걸어온 길을 말씀드렸다. 그날 밤, 인상적일 정도로 크게 혼났다. 다행스러움과 걱정이 섞인 훈육이었지만 당시 나는 왜 혼나야 하는지 이유를 몰라 마냥 억울하기만 했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겁도 없던 잼민이인 나를 떠올릴 때 피식 웃음이 난다. 물론 난 여전히 대책 없고 덜렁거린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 예방은 못하지만 수습을 할 줄 아는 어르니가 되고 있다. 가끔은 수습하는 과정이 버거워서 자책하기도 하고, 야무진척하느라 애쓰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나름 이 허술함이 기대가 된다. 모르던 길을 물어물어 찾아갔던 그날처럼 언젠간 내가 만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
・ 글쓴이 : 이가루(35/여/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