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1-오늘부터 호은당 (1)>

by 혜니



“으음. 뭐, 복장에 대해서는 말 없었으니까.”


나는 녹과 물때로 얼룩덜룩한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차림새를 점검했다. 양복을 입고 가자니 주 업무가 서빙인데 불편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편하게 입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구식이긴 하지만 미리 세탁소에서 다려 온 면바지와 어제 급하게 산 푸른색 셔츠, 남색 카디건을 걸쳤다. 음. 좀... 깔끔한... 아. 신발. 욕이 아니라 신발이 안 어울린다. 젠장. 나는 기껏 손질 해 놓은 머리를 벅벅 흩뜨리며 바지를 갈아입기로 했다. 짙은 색상의 청바지라면 좀 낫겠지. 어영부영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다시 빗고 나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났다. 나는 내 분신 같은 낡은 가방을 노려보다 그냥 어깨에 걸쳤다. 아무래도 옷을 좀 사야 할 것 같았다. 사는 김에 단정하고 편한 신발과 가방도. 서빙을 해야 하니 차림새는 굉장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나도 개량한복을 한 벌 사버릴까 보다. 아예 일 할 때 입는 옷으로.


화창하고 쌀쌀한 아침 기온이 몸이 움츠러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재킷을 걸친 나는 종종걸음으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왔다. 출근하는 주인집 아저씨와 마주쳤다. 이 아저씨, 새벽에 종종 평상에서 나랑 담배도 같이 피고 맥주도 한 잔씩 했으면서 처음 보는 사람 취급이라니. 내가 반갑게 인사하자 주인아저씨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엄지를 척 세우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훤칠한 총각이 왜 지금까지 꾀죄죄하게 다닌 거야? 꾸미니 훨씬 낫구만! 첫 출근이라지? 잘 다녀와. 내 곧 한 잔 살게!”


주인아저씨는 한쪽 눈을 찡긋 하고는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입술 앞에서 홀짝홀짝 꺾었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 손을 까딱이며 웃었다.


“그럼요. 저 첫 월급 타면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 한 번 거하게 열겠습니다.”


실없는 대화를 인사처럼 나누고 나는 주인아저씨가 가는 길과는 반대 방향인 지하철역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너무 느긋하게 가면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첫 출근부터 망칠 수는 없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꽤 붐볐다. 원래라면 이 시간, 마트에서 숙취해소 음료나 우유를 팔고 있었을 텐데.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자 기분이 묘했다. 저절로 웃음이 픽픽 새어 나왔다. 미친놈처럼 보일까 봐 애써 입꼬리를 끌어내리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저마다 바삐 걷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바삐 걸어 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침 들어오는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덕분에 늦기는커녕 이십 분 정도 일찍 약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방의 거대한 나무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잠시 문에서 떨어진 곳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엉성한 입간판도 안 나와 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것 같았다.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휴대폰으로 오늘의 뉴스도 이리저리 구경하다 시계를 보니 오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마트에서 일하면서 담배를 빨리 피우는 것이 습관이 된 탓이었다. 그래. 대충 십 분 전이니까. 혹시 모르니 문이라도 밀어 보자. 나는 커다랗고 낡은 나무문을 슬쩍 밀었다. 어라? 잠긴 줄 알았는데 문은 소리도 없이 열렸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간 나는 잘 정돈된 정원과 전통 한옥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며칠 전 들렀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이제는 내 직장이라서 그런 걸까. 왠지 긴장이 됐다. 조심스레 문을 닫는데 대청마루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일찍 오셨네요. 좋은 아침이에요.”


얼른 돌아보니 크림색 앞치마를 묶으며 방에서 나오는 은미 씨가 보였다. 아니, 이제는 사장님이지.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유, 호칭 그런 거 안 하기로 했잖아요. 그냥 원래대로 이름 불러주세요.”


은미 씨는 얼굴을 확 붉히며 손을 파다닥 저었다. 앞치마를 다 맸는지, 그녀는 고무신처럼 생긴 검은 단화를 신으며 정원으로 내려왔다.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던 오전의 황금빛 햇살이 그녀에게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둘둘 말린 검은 머리카락에 꽂힌 기다란 비녀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장식들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였다. 정강이까지 오는 기다란 남색 치마와 연노랑 저고리, 크림색 앞치마와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은, 지금껏 보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사람 같았다. 그녀의 조금 더 솔직한 모습을 본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낡은 가방을 벗으며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도요. 직원이 어떻게 사장님 이름을 막 부릅니까? 사장님 싫으시면 약사님 할까요? 아니면 선생님?”


“그... 그냥 이름이 좋은데요.”


은미 씨는 여전히 볼을 붉힌 채 웃으며 손짓했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정원 테이블 위에 놓인 머그잔 두 개를 이제야 발견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올 시간에 맞추어 차를 준비 해 둔 것이었다. 은미 씨는 싱긋 웃으며 의자를 빼 앉았다. 찻잔을 가리키며 자신의 앞에 놓인 새하얀 머그잔을 쥐는 그녀를 보며 나도 웃었다.


“예, 뭐. 그럼. 좋은 아침입니다, 은미 씨.”


“네.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에요, 정우 씨.”


두근. 가슴이 술렁거렸다. 긴장으로 떨리던 심장이 흔들거렸다.

다른 느낌이다. 아니, 은미 씨를 향한 속물적인 설렘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설렘이라고 해야 하나.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일에 대한 긴장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를 배려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위해 준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트 이모님들의 배려와 비슷한, 은미 씨만의 배려. 그래. 사람 사는 맛. 정. 따뜻한 마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나는 식어버린 손으로 따뜻한 잔을 잡으며 마주 앉았다. 시렸던 손이 천천히 데워졌다. 긴장했을 나를 위해 미리 시간에 맞춰 차를 준비해 주는 그 마음에 적잖게 감동했다. 무슨 의미였든, 나는 손이 시렸고 추웠고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반갑게 맞아주고 따뜻한 차로 몸을 데울 수 있게 준비 해 둔 그 마음에 모든 것이 바람처럼 날아갔다. 긴장도 풀어졌고 추웠던 몸도 녹았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두툼한 머그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우욱!”


젠장. 고삼차...




은미 씨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고삼차를 깨끗이 비워냈다. 나는 절반 정도 비우는 것도 고역이었다. 한 모금 입에 넣을 때마다 너무너무 써서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준비해 준 은미 씨의 정성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반잔을 비우는 동안 도망칠까, 그만둘까, 버릴까, 욕할까, 토할까.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겨우겨우 반 정도 비우는 것을 본 은미 씨는 싱긋 웃더니 잔을 빼앗듯 받아갔다. 나는 내가 씻겠다며 따라 일어섰지만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주방이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그녀는 작은 접시를 들고 나와 내 앞에 놓아주었다. 말린 대추 한 줌이 담겨 있었다. 나는 냉큼 대추를 입에 집어넣었다. 달달하다. 달다! 사탕보다 달아!


“고삼차는 엄청나게 쓰지만 그 효능만큼은 쓴 맛을 참을 만해요. 체력이 떨어졌거나 입맛이 없을 때 마시면 입맛도 돌고 기운도 난답니다. 정우 씨는 담배를 피우시잖아요. 고삼차는 호흡기와 심장에도 좋아요. 기관지염이나 천식이 있는 분들께도 좋고요. 그리고... 정우 씨, 밤낮이 바뀌어서 피부 트러블이 많았죠? 꾸준히 먹으면 피부도 좋아져요.”


은미 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고삼차에 대해 설명했다. 아니, 그보다 내가 요즘 체력이 달리고 등드름 많이 난 건 어떻게 아는 거지? 한의사 자격증 있다더니 얼굴 보고 아나? 진맥 안 하고? 그게 가능해?! 나는 대추를 씹는 것도 멈추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안색만 봐도 대충 알아요. 그렇게 귀신 보듯 보지 마세요. 모든 의사나 약사들은 기본적으로 익히고 경험으로 알게 돼 있는 거예요.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들이 대번에 알아보시지 않던가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싱글싱글 웃으며 대추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나는 딱딱한 대추씨를 손에 뱉어 냈다. 어느새 은미 씨는 티슈 한 장을 내밀고 있었다.


“정말 그런 걸로 알 수 있어요?”


내 질문이 얼마나 멍청한 건지 나도 알지만, 왠지 그녀라면 내 몸속을 나보다 더 잘 알 것 같았다. 마치 저 까만 눈동자가 투시라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픽 웃으며 대추씨를 뱉어냈다.


“병원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저는 무속인이 아니라 한약사라고요.”


와. 찐 바보다. 그녀의 눈빛이 말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큰 실례를 한 것 같았다. 죄송하다 말하려고 고개를 드는데 은미 씨가 없었다. 어딜 간 거야, 이 사장은.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변을 훑는데, 정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아닌 옆에 조금 떨어진 작은 건물의 문이 열리고 은미 씨가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옷가지가 들려 있었다.


“일단 제가 눈대중으로 사이즈를 맞추긴 했는데, 안 맞으면 말씀해 주세요. 내일은 맞는 걸로 준비해 드릴게요.”


그녀가 내미는 옷은 개량한복이었다. 오우, 쉣. 진짜 이걸 입을 줄이야. 그녀는 자기가 나왔던 건물을 가리켰다.


“저 쪽 방에서 갈아입으시면 돼요. 생활한복이라서 입는 건 일반 옷이랑 똑같으니 걱정 마시고요. 아,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절대 손대시면 안 돼요. 아무것도 만지시면 안 돼요.”


나는 고동색 바지와 베이지색 저고리를 손에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색깔마저 아주아주 개량 한복스러웠다. 하... 하하... 은미 씨는 그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며 나를 보냈다. 뭐, 내가 남의 물건 탐하는 사람은 아닌데. 왠지 슬쩍 기분이 나빠졌지만 내색 않고 문을 열었다. 어두침침한 방에는 전등도 없었다. 다행히 아침이라 문에 바른 창호지들이 빛을 내듯 은은하게 방을 밝혀주어 옷을 갈아입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어스름한 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뭘 만지... 와악!”


옥탑방의 내 방보다 조금 작은 방에는 작은 서랍들이 달린 서랍장이 벽을 따라 빙 둘러 서 있었고, 그 위에는 정체모를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상자의 위, 벽, 천장까지 주렁주렁 달린 것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뼛조각들이었다. 동물의 깨진 두개골, 괴상한 갈비뼈, 기다란 것이... 설마 척추?! 한의사라면서! 한약사라며! 이거 뭔데!!


“으으으으, 은미 씨!! 저거, 저거, 저거...!!”


나는 화다닥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은미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싱긋 웃었다.


“많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쳐요.”


의미심장한 웃음 속에 담긴 장난기가 보였지만 나는 소름이 돋아 그녀의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하며 나를 재촉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아오! 시발, 겁나 무서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후다닥 옷을 갈아입었다. 매무새를 다듬을 정신도 없었다. 대충 팔다리 끼워 넣고 나는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저저저, 저거... 저거...!”


“서랍에 있는 것들은 진짜 약재들이에요. 유골들은 제 물건이 아니고요. 대신 맡아 두고 있는 것들인데, 뭔가 위험하거나 무서운 것들은 아니에요. 그저 약해서 손대면 부서질 수도 있고, 또 제 것이 아니라서 괜히 파손시키면 안 되니까 조심하시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잠시만요, 실례 좀 할게요.”


그녀는 비뚤어진 저고리와 소매를 바로 잡아주며 입술을 꽉 물었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오, 쪽팔려. 나이 먹고 이게 뭐람. 나는 헛기침을 하며 바지춤을 바로 잡고 머리를 털었다. 구겨져 질질 끌리는 옷을 툭툭 털어 곱게 갠 나는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 옷도 저 방에...”


옷을 부둥켜안은 채 바들바들 떨었다. 아니, 떨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저절로 덜덜 떨렸다. 진짜. 모형이 아닌 진짜 해골들이 즐비한 방이었다! 핏자국인지 시커먼 얼룩도 있고! 괴상한 냄새도 나도! 머리통에 구멍 난 동물 해골이 노려보는 것 같았다고! 열 살 때 가 본 귀신의 집 보다 더 무서웠다. 진짜 무서웠다.


“아, 네. 저 방에 두시면 한약 냄새는 덜 배일 거예요.”


“아, 아니요. 한약 냄새 풀풀 풍겨도 되니까 다른 데 두게 해 주세요.”


나는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은미 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돌려 대청마루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손이 대청마루 구석에 있는 커다란 서랍장을 향해 뻗었다.


“그럼 저기, 대청마루 귀퉁이에 있는 서랍 맨 아래 칸에 자리가 좀 있어요. 거기를 조금 정리해서...”


한시라도 빨리 이 방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나는 바람처럼 달려 대청마루로 뛰어올랐다. 나는 가방을 뒤적여 휴대폰과 담배, 라이터만 꺼내 저고리 주머니에 넣었다. 커다란 서랍 앞에 쪼그려 앉아 고급스러운 금속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오래돼 보이는 서랍 치고는 부드럽게 잘 열렸다.


“잠깐만요! 정우 씨, 거기...!”


“와아아악!!”


아오, 시발!! 지네!!!!





작가의 이전글약방 호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