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오늘부터 호은당(2)>
“미안해요, 정우 씨. 설명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버리셔서...”
은미 씨는 자그마한 환단 하나를 내밀었다. 엄지손톱만 한 거무튀튀한 환단은 흔히 아는 청심환 냄새가 났다. 그녀는 놀란 가슴 진정시키는 데 좋은 거라며 물도 함께 건넸다. 나는 멍청하게 앉아 그녀가 내미는 약을 받아 씹었다. 씁쓸했지만 달달한 맛도 났다. 물 한 잔도 깨끗이 비웠다. 은미 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내 귀엔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을 가득 메운 온갖 동물 뼈로 1차 멘붕이었는데, 커다란 서랍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팔뚝만 한 지네들에게 2차로 후려 맞은 내 멘털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미친, 지네... 아오. 지네 옆에 옷을 넣어 두라고? 아무리 죽은 것들이고 말린 것이라고 해도... 으으, 시발. 지네 한 마디가 애기 주먹만 해. 다리는 얼마나 길고 많은지. 아니, 저런 거 가지고 있으면 신고 안 당하나? 불법 아니야?! 무슨 지네가... 저런 게 실존한다고?!
“그... 옷은 상담실에 둘게요. 한약 냄새가 제일 많이 나겠지만... 상담실 안쪽에, 거울 달린 서랍이 있거든요. 거기 넣어둘게요.”
내가 퀭한 눈을 하고 정신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 너머, 머나먼 우주로 보내버린 것을 알고 그녀는 조용히 내 옷을 들고 들어갔다. 나는 대청마루 기둥에 기대어 앉아 멍청하게 정원만 보고 있었다. 시발, 혹시 저 잔디밭 밑에서 살고 있는 거 아니야? 걸어가다가 지네 툭 튀어나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비 오면 뱀만 한 지렁이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엄마, 보고 싶어요. 차라리 시골의 밭에서나 나오던 작은 지렁이나 땅강아지 같은 벌레들이 귀여울 지경이다. 나, 취직 잘못 한 건 아니겠지...?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내 멘털을 쓸어 모으지도 않고 널브러져 있는데, 문이 쾅 열리며 중년 부인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들이닥쳤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어, 어서 오세요.”
“넌 뭐야? 여기 약사 년 어디 갔어? 약사 년 불러와!”
뭐, 뭐? 너? 약사... 년? 이 아줌마가 아침부터 무슨 난봉질인 거지? 당황스러웠지만 우선은 그녀를 말리는 것이 우선인 듯했다. 그녀는 집을 다 때려 부술 기세로 대청마루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얼른 그녀의 앞을 막았지만 어이쿠야. 중년 부인이 팔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나는 맨땅에 앉아 있었다. 뭐지, 저 아줌마...?
“야! 이 맹랑한 년! 안에 있지? 내가 들어갈까, 네년이 나올래?!”
창호지 팽팽하게 발린 미닫이문이 사르르 열리고 싸늘한 얼굴의 은미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의 장난기 가득했던 다정하고 평범했던 얼굴은 전혀 없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미소는커녕 입꼬리는 곧은 일자였고 귀여워 보였던 동그란 눈은 무시무시하게 빛났다. 뽀얗고 동글동글해서 귀여운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호랑이 같았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차가운 얼굴의 은미 씨와 씨근덕거리는 중년 부인만 번갈아 보았다.
“정우 씨, 물 한 대접만 담아 주시겠어요? 놋그릇은 왼쪽 두 번째 찬장에 있어요.”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고 매몰차게 지시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중년 부인이 어마어마한 욕을 쏟아냈다. 마치 내가 자리를 비우길 기다렸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날아드는 쌍욕들에 나도 모르게 욕이 치밀었다. 당장 박차고 달려 나가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네 년이 시킨 대로 석 달을 꼬박!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약 달여서 먹였어!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마시는 걸 봤다고! 근데 왜 애가 안 생기냔 말이야!”
아. 애 들어서는 약이라도 받아 간 모양이군. 요즘도 그런 거 받아가서 먹이는 부모가 있나? 거 참. 신기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은미 씨가 일러 준 찬장을 열었다. 와우. 놋그릇이 몇 개야? 이 많은 걸 다 여기 넣어두면 찬장 안 무너지나. 나는 그중에서 가장 큰 대접을 꺼냈다. 얼마나 무거운지, 내 키가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왕창 쏟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싱크대 위에 그릇을 놓고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담은 나는, 이것들 들고 갈 쟁반을 찾아 주방을 헤맸다. 다행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뭔... 고대 유물도 아니고.”
나무로 된 쟁반은 손때가 탔음에도 잘 관리를 했는지, 붉은 광택이 차르르 흘렀다. TV쇼 진품가품에 나와서 돋보기 든 전문가들이 살펴보다 오오. 하고 감탄을 터트릴 것 같은 예스러운 쟁반에 놋그릇을 올리고, 조심스레 주방을 나섰다.
어느새 부인과 은미 씨는 안방에 들어 가 있었다. 여전히 씩씩대는 중년 부인과 그녀의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얼굴로 앉아 싸늘한 검은 눈동자를 빛내는 은미 씨를 잠시 살피다, 나는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작은 상 옆에는 처참하게 깨진 도자기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이걸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은미 씨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 같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최대한 조용히, 숨소리도 죽여 가며 조심조심 걸어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작은 상 위에 물그릇을 올려 두었다. 혹시나 해서 챙겨 온 냉수 두 잔도 두 사람 앞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중년 부인은 잔을 홱 빼앗아가더니 벌컥벌컥 비우고 탕 내려놓았다.
“한 잔 더 줘!”
“예, 예.”
나는 얼른 잔을 들고 일어섰다. 은미 씨의 까만 눈동자가 도로로 굴러 나에게 왔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던 잔을 내밀었다.
“이거 드십시오. 정우 씨, 이 분 가시기 전까지 손님 받지 마세요.”
“네. 은... 선생님.”
아무래도 이름을 부르거나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손님들 앞에서 쓰는 건 아닌 듯했다. 아주 짧은 찰나의 고민을 거쳐 나온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은미 씨의 까만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빈 컵과 쟁반을 들고 나와 문을 살살 닫고 돌아섰다. 조용히 마루 아래로 내려선 나는 최대한 안방과 가까운 마루에 걸터앉아 조심스레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언제 다운로드 해 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녹음 어플을 켰다. 잠시 고민하다가 녹음 버튼을 꾹 누른 순간, 타앙! 부인이 물을 또 다 비운 모양이다. 모르는 사람이 소리만 들으면 총이라도 쏜 줄 알겠네.
이 잔... 비싸 보이는데. 깨지는 건 아니겠지? 손에 든 빈 잔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벼락처럼 들려온 호통 소리에 휴대폰을 놓칠 뻔했다.
“이 사기꾼아! 내가 그 약값으로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이딴 식으로 사기를 쳐?! 너 진짜 대한민국에서 살기 싫지? 내가 누군지 알아?! 어?!”
어... 모르는데요.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그녀의 악다구니에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시늉을 하다 그만두었다. 은미 씨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중년 부인의 욕설은 쉼 없이 들려왔다. 정말이지... 욕 배틀이라도 있다면, 저 부인은 적어도 결승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야, 지금 당장 와줘.”
욕설 사이에 갑자기 들린 은미 씨의 목소리에 눈을 끔뻑이고 있는데 중년 부인은 또 욕을 퍼부어 댔다. 도대체 약값으로 얼마를 썼길래 저 난리야? 뭐, 몇 천 쓴 건가?
그건 그렇고, 은미 씨는 왜 아무 말이 없지? 뭔가 문제가 크게 있는 것 같은데... 저러고 그냥 있어도 되나?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 부른 건 또 누구지?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들을 비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퍼졌다. 드라마에서 보는 부잣집 부인 같은 모습을 하고는, 입도 참 거칠다. 드라마에서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욕 안 하고 사람 처바르던데. 그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보다. 부잣집 마나님도 우리랑 같은 사람이구나.
“뭐! 부르긴 누굴 불러! 애먼 사람 불러다가 변명할 생각 말고, 환불해! 환불하고 위자료 내놔. 그동안 내가 한 고생! 그거 위자료 내놔. 안 그러면 내가 너 가만 안 둬. 알아?!”
쨍강! 또 뭐가 깨졌다. 일순간 집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릇 같은 뭔가가 하나 깨졌을 뿐인데, 집을 가득 채운 이 공기가 깨진 것 같았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뭐지? 내 눈은 저절로 해골들이 가득한 별채로 향했다. 몸이 부르르 떨려 나도 모르게 팔을 문지르는데 싸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 지껄이셨습니까?”
은미 씨의 목소리가 맞는데, 다른 사람 같았다. 거칠고 날이 선,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은데, 굉장히 차분했다.
이래서 착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고 하나보다. 은미 씨, 엄청나게 화가 난 것 같았다.
“뭐, 뭐?! 이 년이...!”
부인은 더욱 흥분했는지, 목소리를 더욱 높여 소리쳤다. 또 쌍욕이 한 바가지 터져 나오겠구나. 참... 내 귀도 고생이지만, 마주하고 있는 은미 씨는 또 무슨 고역이래.
뭐가 어찌 됐든, 약물 사고인 것 같으니.. 나는 조용히 듣고 있어야겠다. 나는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고 눈은 대문을 바라본 채 숨을 죽였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이니, 닥치고 들으세요. 아시겠습니까?”
헐. 뭐라고? 이거, 은미 씨 맞아?
갑자기 거칠어진 말투와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쌀쌀맞은 목소리에 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밖에서 듣는 나도 쫄리는데 저 아주머니는... 대단하다. 역시, 부자는 깡다구부터 다르구나.
“이 새파랗게 어린년이, 지금 내가 누군 줄 알고...!”
“몰라. 관심 없어.”
어... 으, 은미 씨...? 저 지금 녹음... 하는데... 요... 하면 안 되는 거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