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1-오늘부터 호은당(3)>

by 혜니




“몰라, 아줌마. 나는 아줌마가 누군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내가 처음에 그랬지? 보통 정성으로 안 될 거라고. 약만 먹는다고 되는 거 아니라고. 약은 애가 생겼을 때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거름 주는 개념이라고, 내가 나무 심기 전에 땅에 거름 주는 거라고 설명했어, 안 했어? 약만 먹으면 애 생기고 아들딸 골라 낳을 수 있으면, 내가 신이지, 약사야? 어? 내가 그랬지? 애 안 생기는 건 병원 가라고. 불임클리닉 가라고. 한약 처먹고 애 낳을 수 있으면, 시발 내가 삼신 할매다. 내가 북두 성군이다.”


나는 창문과 문틈으로 스르르 새어 나오는 은미 씨 목소리에 입을 틀어막았다. 와. 대박. 운전할 때 알아봤다. 보통 성격이 아닐 줄 알았다. 하긴. 나였으면 이미 예전에 주먹이 나갔든 쌍욕이 나갔든 했을 것이다. 어림잡아 벌써 십 분은 다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저만큼 폭언을 퍼붓는데 멘털 제자리에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은미 씨가 아무리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못 참을 거다. 아마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와도 저 아줌마 싸대기부터 치고 설교 시작할 거야. 나는 웃음을 꾹 참고 귀를 기울였다.


“이, 이게... 어린년이 말 시부리는 싸가지...!”


“그런 너는 나이를 얼마나 처 드셨길래 아침부터 남의 업장 찾아와서 쌍욕하고 진상 질이세요? 어? 먼저 욕질하고 삿대질하고. 말로 안 되니까 손부터 올라오고. 그건 나이 많이 처먹으면 해도 돼? 나보다 잘난 게 나이 많은 거뿐이야? 말끝마다 어린년 타령이야. 나이 많은 것도 잘난 거 아니거든? 늙어빠진 게 자랑이야? 이거, 보이지? 아줌마가 오자마자 깨 먹은 도자기. 이거 얼마 짜린지 알아? 아줌마 전 재산 팔아도 못 사. 그 자랑하는 돈 아무리 가져와도 못 사는 도자기라고. 거기다 이 컵, 이거 내가 그리스에서 진짜 힘들게 구해 온 컵이거든? 아줌마는 죽을 때까지 구경도 못 해 볼 작품 중에 작품이라고. 얘들 값 받고 소금 쳐서 내쫓으려다가 지금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주제 파악 못 하고 나한테 시비 걸어? 진짜 개털 돼 볼래? 약값도 깎아달라고 지랄해서 내가 이백이나 깎아 줬는데. 그렇게 돈 많은 아줌마가 돈 천만 원 더 얹어주고 잘해달라고 부탁해도 시원찮은 약 타갔으면서. 제대로 해 먹이지도 않고 약 안 듣는다고 와서 지랄 깽판을 쳐? 제 값도 안 치른 주제에 겁나 갑질 하네. 그건 갑질도 아니야. 그냥 진상 짓이지. 마음을 그따위로 쓰니까 삼신이 손주 안 보내주지. 자기 승질머리 드러운 건 모르고. 여기가 어디라고 똥 처바른 개새끼가 기어 들어와서 똥냄새 풍기고 있어?”


“하... 말...”


어, 말... 저기... 녹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또 녹음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처음부터 그랬지? 아들며느리 데리고 오라고. 누구 문제인지 산부인과 가서 검사받고, 검사받은 결과지 들고 오라고. 근데 개같이 떼써서 아들 들어서는 약 지어달라고, 사흘을 꼬박 장사 다 망치게 진상 부려서 약 타갔으면,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만나면 안 되지. 세상 혼자 살아?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아줌마 아랫것들이야? 미치셨어요? 요즘 세상에 그런 개념으로 살 수나 있어? 말 곱게 해. 마음 곱게 써. 새벽 네 시에 억지로 일어나서 세수 한 번 하고 부스스한 꼴로 나와서는 가정부 닦달해서 내린 약 가지고 무슨 효과 보려고? 너부터 똑바로 하고 큰소리쳐. 돈 많고 명품 휘감으면 다 대단한 사람이야? 사람이 명품이 아닌데 처바른다고 명품이 돼? 인성이 글러 처먹었는데. 교양이고 예의고 쌈 싸서 개새끼 처먹였나.”


헙. 저런 말을 진짜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입술을 꽉 쥐었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시원했다. 아까 먹은 고삼차가 싹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해골이고 지네고 다 기억도 안 난다. 박수를 치고 싶었다.


“야!!”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맞잖아. 아줌마, 직접 달이지도 않았잖아? 목욕재계 처음 사흘 하고 안 했지? 가정부 새벽에 깨워서 일 시키면서 고맙다는 말은 했어? 미안하다는 생각도 안 했지? 며느리 약 먹이면서 이 약이 무슨 약인지도 말 안 했지?”


“너, 너...!”


와. 맞나 보다. 중년 부인은 더듬거리기만 할 뿐, 조금 전처럼 악다구니를 써가며 소리치는 모습은 싹 사라져 버렸다. 진짜 약사가 아니라 뭐 관상을 본다거나... 진짜 막, 신기 있고 그런 거 아닐까?


“딱 보면 알아. 아줌마 같은 인성 쓰레기는 그거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나은 거 하나아도 없어. 말해봐. 내가 하라고 한 거, 다 지켰어? 단 하나라도 제대로 한 거 있어? 있으면 욕 해. 욕 더 해. 나 때려도 돼. 근데 그거 아니면... 주둥이 곱게 싸 물고 얌전히 짜져 있어. 저 파편들만 보면 속이 뒤집어져서 내가 아줌마 팰 것 같으니까. 도자기 값이랑 컵 값, 받을 거니까 그런 줄 알고. 곧 올 테니까 이거나 마시고 가만히 앉아 있어.”


그리고 안방은 조용해졌다. 나는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나무문이 열리고 화려하게 화장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여자 모델이 또각또각 걸어 들어왔다.


“어, 죄송합니다. 지금 중요한 손님이...”


“아, 오빠가 새 직원이구나? 난 손님 아니야. 언니가 불러서 왔어. 언니 있지?”


이건 또 뭐야. 다짜고짜 반말을 던지고 그녀는 도도한 걸음으로 날 지나쳐 대청으로 올라가더니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마루 아래에서 나뒹구는 새빨간 구두를 멍청하게 바라보다 그것을 주워 가지런히 디딤돌 위에 올려 두었다.

첫 출근인데. 출근 한지 겨우 한 시간 지났는데. 이게 뭐지...? 나는 그저 눈만 끔뻑거리다가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녹음 중이었다.


“하... 뭐냐, 이거...”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이 녹음된 파일을 저장했다. 여기...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나 아무래도... 취직하면 안 되는 곳에 취직한 것 같다. 돈에 눈이 멀어서 이상한 곳에 온 게 아닐까.


“서, 선녀님?! 선녀님이 어찌 여길...!”


선녀? 뭐, 무당 그런 거? 한숨을 쉬며 디딤돌 앞에 쭈그려 앉아 있던 내 귀에 꽂히는 부인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요란한 모델이 무당이라고? 무당이 하이힐 신고 헐벗고 다닌다고? 한복 같은 거 안 입나? 선녀님이라면 선녀 모시는 거 아니야? 저렇게 요란하게 입으면 벌 안 받나?

에라, 모르겠다. 나는 아예 대문을 걸어 잠가버리고 다시 마루로 돌아왔다. 빨리 갔다 왔는데 벌써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녹음 기능을 실행했다. 빨간 동그라미가 깜빡거렸다.


“아니, 여기서 깽판을 쳤어? 이 언니, 안 되겠네. 내가 그리 안 된다고 말렸던 결혼도 억지로 진행하더니, 이제는 여기서 약 트집을 잡고 있어? 언니, 내가 그랬잖아. 언니 아들은 그 여자랑 결혼하면 안 되는 팔자라고. 하면 망한다니까? 그 여자네 집은 멀쩡해도 언니네 집은 완전 박살 난다니까? 왜 선녀님 말을 안 들어? 선녀님 화나셨잖아! 아들 짝은 지금 며느리가 아니라니까!”


선녀라는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는 예의 따위 없는 것은 물론이요, 건방지기 그지없었다. 와, 싸가지 진짜 없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뒤에 들려온 부인의 목소리와 말투에 입이 딱 벌어졌다. 조금 전 은미 씨에게 악을 쓰던 그 사람이 맞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은미 씨가 이상한 걸 먹인 게 아닐까...

아까 내가 뭐 먹었더라...?


“하, 하지만, 선녀님! 그 년은 진짜 안 됩니다! 애미애비도 없는 천애 고아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라니요! 우리 집이 어떤 집안인데! 적어도 격에 맞는 며느리가,”


“격이고 지랄이고, 아줌마부터 그 집 며느리가 아닌데 어떡하라고? 아줌마부터가 첩인데, 첩실 팔자가 좋아봤자 뭐 얼마나 좋을 것 같아? 더구나 그 집 핏줄도 아닌 아들 세워놓고 무슨 격을 따져? 적어도 지금 아들이 만나는 여자보다는 백 배 천 배 낫거든?”


워... 이거, 아침 드라마 급 막장인데? 그러니까, 이 아줌마는 본처 밀어내고 들어온 첩이고, 아들도 데리고 온 아들이고... 근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 떼 내고 좋은 집 며느리를 들였다. 이건가...? 와. 혹시 어디 막장 드라마 작가님 안 계십니까? 여기 엄청 좋은 소재 있는데요. 이거 진짜... 전국의 아줌마들이 욕하면서 본방 사수할 드라마입니다만.


“마, 만난다니요? 우리 성혁이한테 여자가 있단 겁니까? 그 년, 또 만난 답니까?”


“아니. 걘 이미 텄어. 걘 언니 아들 아니어도 앞으로 복이 줄줄 들어올 애라서, 언니 아들보다 더 잘난 집에 시집갈 거야. 지금 언니 아들 등골 빨아먹는 애 있어. 아들을 족쳐! 남의 집 귀한 딸 데려다가 몹쓸 짓 하지 말고! 당장 이혼하고 위자료 두둑이 줘서 지금 며느리 보내. 그리고 지금 만나는 여자 떼 내. 올해 안에 다 정리 안 되면 언니 아들, 죽어! 며느리는 여름 오기 전에 보내고. 안 그러면 겨울에 언니네 남편 사업 엎어져. 지금 큰 거 하나 하지? 그거 엎어져. 그거 엎어지면 영영 끝이야. 그러니까 며느리부터 보내. 지금까지 시집살이시킨 거 사과해서 며느리 마음 잘 풀어주고, 넉넉하게 챙겨서 보내. 안 그러면 그 집 조상신 노해서 언니네 발칵 뒤집어질 거야. 그리고 지금 아들이 만나는 여자, 술집 여자네. 술 냄새가 확 나네. 병신같이 술집 여자한테 꽂혀서 전 재산 탕진하고 있어. 아들 씀씀이 안 커졌어? 차 사주고 난리 났을 걸? 그 여자 계속 만나면 아들 죽어. 아들이랑 여자랑 같이 사고 나서, 아들만 죽고 여자는 살아. 근데 그거 때문에 그 술집 여자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갈 거야. 그전에 잘라. 커지기 전에 뽑아. 그리고... 언니! 전처 아들 살았다니까 아직 안 들였지? 전처 아들 들여! 걔가 있어야 언니 아들이 살아! 명심해, 언니! 며느리는 입하 전에 응어리 다 풀어서 내보내고, 겨울 가기 전에 술집 여자 떼 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그리고 전처 아들, 빨리 들여. 빨리 들여서 남편 회사에 보내. 걔가 돈 벌어 와. 내 말, 지킬 거지?”


헐. 뭐? 이거 진짜야? 이거 실화야? 이런 일이 실제로 있다고? 작가들의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미친. 말도 안 돼.

나, 한약방에 취직한 거 맞는데. 한약방 겸 찻집에 서버로 취직한 거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약방에 취직했는데. 출근한 첫날부터 이런 막장 스토리나 듣고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아침부터 쌍 욕하는 아줌마, 이중인격 사장, 사이비 무당... 하. 다음은 뭔가요. 도깨비나 저승사자가 감기 걸렸어요, 하고 진맥 받으러 오나요.


“아, 아무렴요! 누구 말씀인데! 저희가 이렇게 크게 된 것도 다 선녀님 덕분인 걸요! 성혁이 이놈 자식을 내...”


저 선녀라는 여자, 가짜 무당은 아닌 것 같은데... 저 기세 등등한 아줌마가 저리도 설설 기는 걸 보니, 지금 저 자리에 올라 명품 휘감으면서 사모님 소리 듣게 해 준 게 저 무당인가 본데... 와. 정재계 휘어잡은 무당 있다더니, 저 여잔가? 애초에 무당이 시키는 대로 해서 팔자가 바뀌는 게 말이 되긴 해?


온갖 잡생각들이 마구 뒤섞였지만 그것들을 정리하고 곱씹을 정신은 없었다. 막장 드라마가 괜히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듣고만 있어도 재미있다. 미친. 진짜 재미있다. 엔딩은 언젠가요! 권선징악 실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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