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2-벌레에 물린 아기(2)>

by 혜니




주방을 둘러보고 사용법을 익힌 뒤, 나는 약방을 제대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커다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안채의 대청마루였다. 대청마루와 대문 사이는 꽤 널찍한 정원이 있고, 대문의 오른쪽에는 허름하고 작은 창고 같은 건물과 아까 그 해골바가지들이 걸려있는 별채가 있었다. 별채에도 작은 마루가 있었다. 별채의 처마에는 절에서나 볼 법한 물고기 모양 풍경도 걸려 있었다. 가끔 부는 바람에 땡땡 소리가 나면 그렇게 청아할 수 없었다. 끔찍한 별채지만 저 풍경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별채와 안채 사이의 공간, 담장 가까이에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시골 마을에 가면 마을 입구에나 있을 법한 당목처럼 생겼는데, 그 아래에 낮은 관목을 심어 울타리처럼 둘러놓아서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커다란 나무는 새파란 잎을 제법 많이 내고 있었다. 정원에는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철제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고, 대청마루엔 아직 아무것도 없었지만, 안쪽으로 상 두 개와 방석들이 쌓여있는 걸로 봐서는 손님이 오면 내주는 방식인 것 같았다.

안채의 맨 끝, 나무와 가장 가까운 마지막 방이 은미 씨의 방이라고 했고, 그 방과 연결된 대청마루 옆의 방은 상담과 진맥 등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 방은 조금 전에 갔다 왔지. 아. 깨진 그릇 조각들 치워야 하는데. 상담실이라고 부르는 그 방의 맞은편, 마루의 반대편에도 방이 하나 있었고, 그 방을 기준으로 기역자 모양으로 꺾어졌다. 꺾인 부분에 디딤돌이 있고, 그곳이 주방이었다.

꽤 넓은 주방의 옆, 원래 건물이 아니라 이어 붙인 것 같은 공간이 화장실이었다. 혹시나 푸세식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주아주 깨끗하고 쾌적하고 향기로운 화장실이 있었다. 아쉽게도 남녀 구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월풀 욕조가 있는 욕실도 따로 있었다. 와. 돈을 그냥 처 바르셨구만. 단열도, 방음도 완벽해 보였다. 가건물이지만 완벽한 건물이었다.

대문 옆에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을 것 같은 낡고 지저분한 창고도 하나 있었는데, 은미 씨는 그곳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신경 쓸 필요 없는 곳이라고만 할 뿐이었다.

약재들은 저마다 보관법이 다 달라서 각각의 방마다 골고루 분산되어 저장되어 있다고 했다. 그중에 내가 다녀도 되는 곳은 은미 씨의 방과 대문 옆의 창고를 제외한 다른 모든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 해골바가지 방은 절대로 다시 가지 않을 것이다. 주방 옆의 방을 쓰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문을 열어 본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갖 병과 상자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이 옷, 입고 다녀도 됩니까?”


그래. 차라리 쪽팔리고 말지. 요즘은 세련되고 멋있는 개량 한복도 많더라만. 예쁜 걸로 골라서 사달라고 해야겠다. 출퇴근할 때 덜 쪽팔리게. 차라리 한국의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편이 낫다. 저 해골바가지 방엔 죽어도 가기 싫다. 상담실은 왜 안 되냐고 물었더니, 그 방엔 씨씨티브이가 있다고 한다. 종종 몰래 들어와 귀한 물건들을 함부로 만지거나 슬쩍하는 사람도 있고, 상담하는 내용을 녹화해 두기 위함이라고 했다. 사기 치는 주제에 처신은 확실하네. 그렇게 약점을 잡는군. 나는 휴대용 녹음기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볼펜 형식의 녹음기가 있는 걸로 아는데. 볼펜은 흔히 쓰는 거니 의심 사지 않겠지.

은미 씨는 깔끔하게 프린트해서 코팅 해 둔 메뉴판을 보여 주었다. 차 종류만 오십 가지는 넘어 보였다. 이 많은 걸 다? 생각해 보면, 찻장에는 백 개쯤 되는 차 통이 있었다. 뭐. 그래. 그중에 절반이니까. 다과는 그때그때 들어오는 대로 쓴다고 했다. 다과를 제공하는 업체가 알아서 메뉴들을 겹치지 않게 짜서 보내준다고 한다. 그녀는 다과가 오면 그것과 합이 맞는 차와 짝을 지어 내주면 된다고 했다. 그런 건 어떻게 압니까. 하는 내 머릿속 외침을 들은 것인지, 은미 씨는 다과 오는 날마다 알려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참 구경하고 설명을 듣는데 꼬르륵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아, 쪽팔... 응?

은미 씨가 배시시 웃었다.


“식사... 하셔야죠?”


와. 이건 인간적이네. 나는 빙긋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분명 점심, 간식, 석식 제공이었지만 가능하다면 요리를 해 달라고 그녀가 덧붙인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집 밥을 먹지 못 했다면서 말이다.

나는 사 먹는 것보다 해 먹는 걸 더 좋아한다. 어머니가 요리를 못 한 탓이 크다.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 주면 그만큼 기쁘고 좋은 일이 없었다. 어머니는 늘 내가 만든 괴상한 모양새의 음식들을 아주 맛있다고 칭찬하며 깨끗이 비워 주셨다. 나중에야 그것이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알았지만, 어머니의 그 사랑과 응원 덕분이었는지 나는 이제 꽤 요리를 잘했다. 자신도 있었고.

싱크대 아래에는 엄청 비싸 보이는 냄비와 팬들, 각종 조리도구들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거의 새것이었다. 나는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반쯤 남은 콩나물, 물렁해지고 있는 애호박, 쭈글쭈글한 버섯을 꺼냈다. 은미 씨는 멋쩍게 웃으며 내가 찾는 양념들과 조리도구들을 꺼내 주었다. 설탕도, 소금도 돌이 되어 있었다.


“음식... 안 만들어 드셨어요?”


나는 완전 새것 같은 밥솥에 쌀을 퍼 담으며 찬장을 뒤적이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나무로 된 볶음 스푼의 포장을 벗기며 웃었다.


“네. 실은... 음식을 너무 못 해서요. 요리책을 보고 따라 하거나 너튜브를 보고 따라 해도 이상하게 저는 다 타거나 덜 익거나... 뭐, 그렇더라고요.”


그래. 음식을 못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감각이 없었다. 불이 센지 약한지, 이게 타면서 나는 연기인지 수증기 인지도 모르고, 졸아든 건지 탄 건지 모르더라. 어머니도 그랬고 처음 서울에서 자취할 때 같이 살았던 친구 놈도 그랬다. 그놈은 계란 후라이를 하다가 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다. 연기가 펄펄 나는데 그게 수증기인 줄 알았다고. 병신아. 기름인데 무슨 수증기야. 결국 그놈과 같이 사는 1년 동안 나는 놈과 나의 도시락과 저녁밥까지 책임졌었다. 그때가 생각나 아찔했다.


“예. 앞으로 제가 음식 할 테니,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오늘은 야채들이 물러가고 있어서 버리긴 아깝고. 채소 비빔밥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저, 저... 비빔밥 진짜 좋아해요! 연화가 준 양념 고추장도 있어요!”


그녀는 냉장고를 마구 뒤지더니 하얀 단지를 꺼냈다. 쿡 찍어 먹어보니 꽤 맛있는 소고기 고추장 볶음이었다. 연화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음식 솜씨는 제법 있는 듯했다. 나는 빙긋 웃었다.


“계란 하나만 구워 넣고 이거 한 숟가락만 넣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왜 안 드셨어요?”


양념 고추장은 거의 새것 같았다. 은미 씨는 눈을 도로로 굴리며 멋쩍은 듯 웃었다.


“그게... 계란을 구울 줄 몰라서... 예전에 불날 뻔했었거든요. 스프링클러 터지고 소방차 오고... 약재 다 버리고... 그 뒤로 그냥 밖에서 먹거나 배달 음식을 먹어요.”


아. 여기 요리 고자가 또 있다. 내가 얼마나 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은 먹을 거 잘 챙겨 줄게요. 사기 잘 치고, 치더라도 나는 엮지 말고. 큰 거 한 탕 하면 보너스도 좀 주고. 말 안 해도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며 고추장 단지를 받아 들었다. 나는 밥을 안치고, 물러가는 채소들을 씻고 손질하며 점심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때 멀리서 들리는 전화벨소리에 은미 씨가 후다닥 나가고, 나는 조용한 주방에서 흥얼거리며 비빔밥을 준비했다. 멋들어진 놋그릇에 담으면 예쁠 것 같았다. 티브이에서 봤던 멋스럽고 맛깔나 보이던 비빔밥 모양을 상상하며 나는 최대한 정성껏, 조심스럽게 비빔 채소를 준비했다. 얼마 뒤, 은미 씨가 상추 몇 장을 손에 들고 왔다. 몰랐는데 안채 뒤쪽에 장독대와 텃밭도 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사 갈 때 옥탑방의 내 채소들을 다 버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고스란히 여기 갖다 놓으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은미 씨가 가르쳐주는 곳으로 돌아 들어갔다. 예쁘게 가꾸어 놓은 텃밭에는 상추, 고추, 대파, 토마토, 들깨가 자라고 있었다. 오올. 제법인데? 꽤 정성 들여 가꾸어 놓은 듯한 텃밭에서 아직은 순이 여리고 작은 들깻잎도 두어 장 뜯어 왔다. 은미 씨는 내가 데치고 무치고 볶아 놓은 채소들의 정갈한 모양새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시크하게 깻잎을 씻었다. 은미 씨가 가져다준 상추와 내가 뜯어 온 깻잎을 조심스레 접어 곱게 썰자, 은미 씨는 아이처럼 신나 했다. 칼질 이렇게 잘하는 사람 처음 본다며 호들갑이었다.

맙소사. 은미 씨 부모님도 요리를 못 하셨나요? 차마 묻지는 못 하고, 나는 그저 웃었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애 같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나는 우쭐해진 채 열심히 칼질했다. 비빔밥용 채소들이 준비를 마쳤고, 이제 밥만 되면 된다. 최신식 밥솥의 화면에는 10이라는 숫자가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와! 이만큼 하는 데 이십 분 밖에 안 걸렸어요! 정말 요리의 신이시네요, 정우 씨는!”


이 여자가. 이런 식으로 날 사기단에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겠지? 난 절대로 그 팀에 합류 안 한다. 나는 딱 내가 할 일만 할 거니까.

은미 씨는 언제 꺼냈는지 딸기 한 주먹을 손에 들고 있었다. 밥이 될 때까지 이거 먹으면서 기다릴게요. 하더니 물에 슬슬 씻어 그릇에 담는다. 아니, 잠깐만요. 설마 아까 그 사과도 그럼 안 씻은 거? 나는 딸기를 빼앗아 그릇에 담았다. 베이킹 소다는 없는 것 같고, 식초를 조금 넣고 딸기 꼭지를 따 살살 흔들어 씻었다. 은미 씨는 조용히 내가 하는 양을 보고만 있었다.


“딸기는 단 내가 많이 나서 벌레가 많이 꼬여요. 그래서 약도 많이 친대요. 아무리 유기농이고 친환경 농약을 쓴다고 해도, 눈에 안 보이는 먼지나 유통 중에 꼬인 벌레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대충 씻어서 먹으면 어떡합니까? 딱 3분만 이렇게 씻으면 됩니다. 귀찮아도 꼭 씻어서 드세요.”


깨끗한 물에 헹군 딸기를 찬장에서 아무 접시나 꺼내 담았다. 하필이면 바닥에 애벌레 그림이 있다. 뭐냐, 이 접시는. 음식 담는 그릇에 벌레라니. 나중에 멀리 치워둬야지 생각하며 접시를 내미는데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는 은미 씨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전엔 그저 아는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면, 지금은 무한히 신뢰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다. 왠지 날 아빠라고 부를 것 같았다. 내 친구 놈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


“감사합니다! 정우 씨, 꼭 아빠 같아요.”


그럼 그렇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접시를 쥐어 주고 주방을 나섰다. 은미 씨는 딸기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괜찮다며 사양했고 그녀는 두 번 권하지 않았다. 은빛 포크를 챙겨 들고 쪼르르 마루로 달려가 걸터앉은 은미 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방실방실 웃으며 딸기를 맛있게 먹었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멈칫했다. 은미 씨는 내게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딸기에만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방이니까. 나는 담배를 문 채 대문 밖으로 나섰다. 문을 살짝 닫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작 딸기 몇 알 씻어 줬는데 저렇게 좋아하나. 남들 등 쳐 먹고 사는 사기꾼 치고는 순수한 면이 있네. 부연 연기가 새파란 하늘로 높게 올라갔다.


약방 주변엔 대부분 주택이었다. 골목 끄트머리에 고택을 개조한 큰 카페가 있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곳으로 가겠지. 이곳은 입간판을 내놓지 않으면 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아까 검색하던 최고급, 최고가 입간판을 훑어보다 멈칫했다.

딸기 몇 알 씻어 준 그 수고로움에 저리도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은미 씨의 웃음이 다시 눈앞을 스쳐갔다. 고작 그 작은 일에 그리도 감동하는 그 모습이 이상하다. 어딘가 짠하다.

스물여덟.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하지만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그 모습은... 조금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어리숙하다거나 순수하다는 생각을 할 텐데, 기쁜 얼굴로 딸기를 받아 들던 그 모습이 어째서 가여워 보였을까.

나는 담뱃불을 털어내고 꽁초를 들고 다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새 딸기 한 접시를 다 비운 은미 씨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더 드시면 점심 못 드십니다.”


짐짓 엄한 투로 툭 던지자, 은미 씨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뭐냐, 진짜 더 먹으려고 한 거냐. 나는 담배꽁초를 주방 귀퉁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빈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네. 그만 먹을게요.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우 씨.”


나는 곧 밥을 차릴 테니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먼저 가서 상이라도 닦아 두라며 행주를 쥐여 주고 그녀를 내보냈다. 잘 먹었다는 그 짧은 인사에 가슴 한쪽 어디가 욱신 했다. 콧등이 찡했다. 나이가 들었나. 이상한 데서 감정이 울컥한다.

신이 난 듯 경쾌한 걸음으로 햇살 잘 드는 곳의 철제 테이블로 다가가는 은미 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에 든 접시를 씻었다. 머리 위에 하트를 단 노란 애벌레 그림이 그려진 녹색 접시. 지금 보니 여기저기 실금도 있고 이가 나간 곳도 있다. 꽤 낡은 접시였다. 아무래도 이 접시는 치우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깨끗이 씻은 접시를 싱크대 위 건조대 위에 세웠다. 가장 눈에 잘 띄는 맨 앞에.

치익-. 밥솥에서 뜨거운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힘차게 치솟는 새하얀 수증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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