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2-벌레에 물린 아기(3)>

by 혜니




자투리 채소 끌어 모아 올리고 양념 고추장 한 스푼에 참기름 반 스푼, 계란 후라이 하나 올린 이 비빔밥을 눈앞에 두고 두 손까지 경건하게 모은 은미 씨를 보고 있자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와. 우와... 이런 걸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니, 정우 씨 정말 대단해요!”


은미 씨는 눈을 반짝이며 숟가락을 들었다. 제법 야무지게 밥을 싹싹 비비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풍겼다. 나도 숟가락을 쥐고 내 밥을 썩썩 비비기 시작했다. 가짓수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이 허접한 비빔밥을 몇 만 원짜리 고급 비빔밥과 비교하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연신 어느 한정식집, 어느 비빔밥집을 들먹이며 최고라 치켜세웠다. 괜히 머쓱하고 쑥스러웠다. 선년지 무당인지 하는 여자가 나가고 어색하고 무안했는데, 비빔밥 한 그릇이 모든 것을 섞어 맛깔나게 만들었다.

내가 했지만 간도 딱 맞다. 맛있네. 은미 씨와 나는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고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 사이 손님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설거지는 제가...”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입간판이 없으니 손님이 없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입간판 제작하는 곳을 몇 군데 봐 뒀습니다.”


나는 묵직한 놋그릇을 챙겨 내 앞으로 끌어당기고 휴대폰을 꺼내 내밀었다. 조금 전에 열심히 찾았던 최고급 최고가 입간판을 파는 사이트가 아닌, 형광 마커로 쓰는 블랙보드를 판매하는 문구점 사이트였다. 돈이 썩어 도는 사기꾼에게 몇 십만 원짜리 입간판이 비싼 것도 아니겠지만, 나는 왠지 그것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양심이 있거든. 그리고 그런 것들은 오히려 호은당과 어울리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저 엉성한 입간판이 제일 나았지만, 쓰기 편하고 가볍고 튼튼한 것으로 고르다 보니 이것이 나왔다.

은미 씨는 내가 내미는 폰을 받아 들고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블랙보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녀가 마음 편히 쇼핑하도록 내버려 두고, 빈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전에는 돌쇠, 점심때는 식모. 오후엔 뭘까. 마당이라도 쓰는 마당쇠가 돼야 할까. 나는 빈 그릇에 물을 붓고 세제통을 찾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세제가 뭔지 모르겠다는 내 말을 기억한 것인지, 개수대에는 한 개의 세제통뿐이었다. 동그란 수세미가 까칠했다. 거품을 보글보글 만들어 그릇을 씻는데, 놋그릇은 물기가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깨끗한 행주로 물기까지 싹 닦아 바람이 잘 통하는 마른 곳에 잘 올려두었다. 그리고 저 과일 귀신을 위해 디저트로 먹을 과일을 꺼냈다. 딸기는 밥 먹기 전에 먹었으니, 뭘 먹을까.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식초를 푼 물에 토마토를 넣고 열심히 문질러 씻었다. 깨끗해진 토마토를 한입 크기로 자르고 설탕을 솔솔 뿌려 버무렸다. 이 토마토 설탕 무침은 여름철 어머니가 자주 해 주시던 간식이다. 설탕을 뿌리면 신 맛을 잡아 주어 훨씬 먹기 쉬었다. 깊이 있는 유리그릇에 토마토를 옮겨 담는데 초록색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길쭉한 포크 두 개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은미 씨는 여전히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입간판을 찾지 못한 듯했다. 내가 토마토 그릇을 내려놓을 때까지 그녀는 휴대폰 속에 들어갈 기세로 집중하고 있었다.


“디저틉니다. 드시고 보세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토마토 하나를 냉큼 입에 넣었다. 나 역시 달달한 토마토 설탕 무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꽤 맛있었다. 설탕이 적었나. 조금 더 넣을까 고민하는데 은미 씨가 휴대폰을 슥 내밀었다. 화면에는 나무로 만든 깔끔한 입간판 사진이 떠 있었다. 매끈한 나무판 위에 레이저로 각인한 것처럼 그을린 글씨가 쓰여 있는 그것을 가리키며 은미 씨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런 게 좋더라고요. 나무로 된 가구들이 좋아요. 사실 이거 예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연화는 촌스럽다고 반대해요. 정우 씨 생각은 어때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낙서나 그림 같은 장식이 없어서 담백하고 깔끔해, 호은당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세 가지 색깔의 나무로 만든 샘플 사진을 찾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저는 이 어두운 색이 괜찮을 것 같아요. 대문 색깔이랑도 비슷하고요.”


“눈에 잘 안 띌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제일 밝은 색이 눈에 확 띌 것 같은데.”


여기서 이견이 생기는군. 그렇다면 오너의 뜻에 따라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네요. 골목 바닥도 어두운 색이니까요. 여기, 이 예시처럼 엘이디 조명을 둘러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전에 다이또에서 가느다란 줄 전구를 본 적 있는데, 알록달록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게 빛나는 게 있더라고요. 엘이디가 너무 화려하면 그런 작은 소품 전구로 포인트 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은미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 속 사진과 대문을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 테스트 중인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손은 연신 토마토를 입으로 옮기고 있었다. 방금 밥 한 그릇 다 드셨잖아요, 사장님? 사장님 밥, 저랑 같은 양이었는데요. 그거 꽤 많았는데. 대식가인 줄 알았지만 진짜 배가 크긴 크구나. 그렇게 많이 먹는데 왜 이렇게 작고 말랐나... 생각이 주르르 이어지다 뚝 끊어졌다.

나는 어느새 비어버린 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바닥엔 설탕 녹은 토마토 물이 자작했다.


“저기... 선생님 계신가요?”


싱크대 앞에서 서는데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오며 검은색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아, 예. 어서 오세요.”


비끔하게 열린 문 틈 사이로 젊은 여인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오, 이렇게 젊은 사람도 약방엘 오나? 이런 사람한테도 사기 치는 건 아니겠지? 문을 열어주자 문 앞의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앞에는 커다란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부우- 하는 귀여운 소리.

아기다!


“앗! 아기네요!”


나는 아기를 참 좋아한다.

물론 보는 것만. 내가 돌보라고 한다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아이들은 보고 있으면 귀엽지만 함께 하면 무서운 존재니까. 어쨌거나 귀여운 옹알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내 얼굴에 있던 푸근한 미소가 사라졌다. 그 미소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보얗고 토실토실해야 할 아기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뭐에 물린 건지, 혹은 무슨 알레르기인지, 온 얼굴이 울긋불긋하고 울퉁불퉁했다. 한쪽 눈두덩은 벌겋게 퉁퉁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했고, 저 자그마한 볼엔 새빨간 바늘 자국처럼 무언가에 쏘이거나 물린 것 같은 흔적이 서너 개는 있었다. 휘적휘적 젓는 손도 다를 것이 없었다. 보송보송 귀여운 노란 셔츠 끝에 나온 통통한 손은 팅팅 부어 있었다. 쥔 건지 편 건지 알 길이 없을 만큼 부은 손이 내 앞에서 꼼지락거렸다. 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건 웃을 일이 아니다. 이 아이, 심각한 것 같았다.

내가 아이의 상태를 유심히 보며 경악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이 엄마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이 어떨지, 나는 감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뒤돌아섰다. 어느새 은미 씨가 뒤에 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은미 씨는 눈을 내리깐 채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고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눈치껏 주방으로 들어가 찻장을 뒤적거렸다.

어느 차가 어떤 맛인지, 어떤 향인지 알 길이 없는 나는 일단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 동그란 종이 뚜껑을 열었다. 달달한 풀잎 향기가 확 풍겼다. 차통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70도의 물에 우리라는 설명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나는 찻장과 찻잔이 진열된 진열장을 하나하나 세어 이 차에 맞는 잔을 꺼냈다. 새하얀 연꽃 같은 도자기 접시가 잡혔다. 잔 안쪽, 가운데에 노란 꽃술처럼 은은하게 칠이 된 잔과 연꽃 봉오리처럼 생긴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고 데워지길 기다렸다.


그 사이 상담실에서는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스레 손이 떨리고 마음이 술렁거렸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지만 걱정이 됐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겠지만. 불안한 내 시선은 자꾸만 주방 너머로 향했다.

나는 얼른 뜨거운 물을 비워내고 찻잎을 조금 덜어 주전자에 담았다.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돌돌 말린 잎이 두툼한 걸로 봐서는 조금만 넣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큼직한 덩어리 두 개를 주전자 속에 집어넣고 적정 온도로 맞춘 물을 부었다. 은미 씨 말로는 찻잎을 넣고 씻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대충 주전자를 흔들어 안에 든 물로 찻잎을 씻고 비웠다. 몰라. 이렇게 하면 되겠지. 다시 더운물을 담은 뒤, 오래된 쟁반에 조심스레 올렸다. 다과를 담아야 하는데... 아기가 어려서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약과와 한과를 두 개씩 담아 챙겼다.

꽤 그럴듯하게 보이는 쟁반을 들고 나는 조심스럽게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닫힌 창호지 문 너머에서 설움을 삼키는 어미의 찢어지는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슴이 미어지는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목소리가 축축하다. 목소리만으로도 아프다.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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