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벌레에 물린 아기(4)>
“온갖 약이란 약은 다 쳤습니다. 모기장도 몇 겹으로 치고 빈틈없이 막았어요. 그런데도 자고 일어나면 이 꼴이에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전혀 안 듣고요. 어떤 벌레에 물린 건지 가늠도 못 하더라고요.”
나는 나직하게 노크하고 최대한 조용히 상담실 안으로 들어섰다. 엉망이었을 도자기 파편들은 흔적도 없었다. 언제 치운 걸까.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작은 상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은미 씨는 자연스럽게 주전자를 들고 새하얀 찻잔에 차를 따랐다. 연두색의 맑은 찻물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오. 색깔 좋고. 향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눈으로 봐서는 아이의 생명이나 건강에는 큰 지장은 없어 보입니다. 우선 차라도 드시면서 진정하십시오. 이슬차입니다. 아이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 해서 목이 많이 부으셨네요. 기관지와 편도염 등의 염증에 좋습니다. 달달하면서도 시원합니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실 겁니다.”
어... 이게 이슬차...였나? 어떻게 안 거지? 아, 잔. 잔이 정해져 있구나. 이래서 잔을 미리 정해 둔 거였군. 사기를 치려면 치밀해야지. 암. 근데... 설마 이 가여운 애기 엄마한테도 사기 치지는 않겠지? 꾸미지 않은 수수한 차림새와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오전에 봤던 그 부잣집 아줌마와는 천지 차이였다. 이쪽이 훨씬 더 정감 있고 인간적이고 사람다워 보였다.
나는 슬금슬금 물러나 문 앞에서 우물거렸다. 아이가 왜 저렇게 됐는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은미 씨는 내가 나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 사기 치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증거를 잡을 수 있었는데! 나는 아쉬움을 숨기고 조용히 나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가장 아까운 대청에 걸터앉아 아침처럼 녹음 어플을 켰다. 조용한 찻집, 창호지 문 너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이런 물린 자국이 나기 시작한 건 지난주 화요일이에요. 월요일에 저희 시어머님이 들르셔서 아기 선물을 주고 가셔서 기억이 나요.”
“무엇을 주고 가셨는지요?”
조금 전, 나랑 밥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묵직한 목소리였다. 여전히 가늘고 고왔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게가 실린 목소리는 조금 낯설었다. 진짜 약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예요. 올해 남편이랑 아이가 삼재라고, 몸에 지니고 있으라면서 염주를 사다 주셨어요.”
염주? 삼재? 삼 년 동안 재수 없다는 그건가. 마트에서 일할 때 이모님들이 삼재가 어쩌고 하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훌쩍거리는 여인은 많이 진정이 됐는지 꽤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보여주시겠습니까?”
염주랑 벌레 물리는 거랑 무슨 상관이람. 사기 치려고 하는 거다. 저래 놓고 저 염주에 나쁜 귀신 벌레가 따라와서 그런 거라고, 아까 그 무당 불러서 괴상한 소리 하고 굿이나 부적 쓰게 하려고 그러는 걸 거다. 아기니까 한약은 못 먹일 거고, 무당 불러다가 사기 치려는 속셈이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귀를 기울였다.
“염주에 벌레가 먹은 구멍이 있네요. 모르셨나요?”
“어... 전혀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거 봐. 사기 친다니까. 당장 들어가서 사깁니다, 큰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어쨌거나 돌쇠가 되기로 했으니 말이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는 염주를 상에 놓는 소리인 것 같았다. 잠시 달각달각 서랍을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 목욕은 어떻게 시키십니까?”
생뚱맞게 웬 아기 목욕? 이번엔 입욕제라도 팔 건 거. 상담하는 아기 엄마도 당황한 듯했다.
“예, 예? 저... 그냥 아기 욕조에 물을 받아서 씻기는데요...”
“욕조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요?”
“이 정도... 되는데... 그게 중요한가요?”
상 위에 묵직한 무언가가 놓이는 소리가 났다. 도자기 그릇 소리 같기도 하고, 맥주병 올려놓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것은 벌레에게 물렸을 때 쓰는 물약입니다. 하루 한 번, 자기 전에 이 물을 목욕물에 타 씻겨주세요. 다른 비누나 클렌저 종류는 당분간 쓰지 마시고, 이것만으로 목욕시키시면 금세 가라앉을 것입니다. 아기 욕조에 절반 정도 따뜻한 물을 담고, 소주잔 한 잔 분량의 물약을 희석한 다음 입욕하시면 됩니다. 벌레 물린 곳은 빠트리지 말고 꼼꼼하게 씻겨 주세요. 혹 다른 곳에 둥지를 틀었을 수도 있으니, 이것들을 가지고 가셔서 집안 구석구석 걸어 두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갈아주시면 됩니다. 한 달 정도만 쓰시면 될 겁니다. 이 병을 꼭 닫아 두셔야 향이 빠지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습니다..”
뭐지? 정말 이상한 벌레가 있나. 저건 뭘까. 약은 또 뭐지? 저래 놓고 얼마를 받아 처먹으려는 걸까. 나도 모르게 몸이 점점 기울어 벽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녹음은 잘 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염주 대신드리는 것입니다. 괴불 노리개입니다. 아이들은 염주보다 이것이 낫습니다. 하나는 아이가 자는 머리맡에 걸어 두시고, 하나는 부인께서 아이와 나가실 때 항상 챙기도록 하세요. 아기띠 어딘가 안 보이는 곳에 걸어두시면 좋고요.”
“그런데 그 염주... 시어머니가 주신 건데...”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준 물건인데 며느리가 마음대로 남에게 줬다고 하면 욕먹겠지. 다른 일도 아니고 삼재라서 일부러 손주 챙겨 준 건데. 잘은 모르지만 시월드는 무서운 세상이라고 했다. 이런 일로 고부갈등을 만들면 안 되지. 아, 혹시 고부갈등을 만들어서 굿을 하게 하려는 걸까. 은미 씨의 대답이 꽤 늦어졌다. 무언가 또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단, 아이의 몸에 직접 닿으면 절대 안 됩니다. 아이가 자는 방의 문 위에 걸어두십시오. 시어른께서 물으시면 너무 커서 자꾸 빠지고 아이가 입에 넣으려고 해서 뺐다고 하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문 위에 걸어둔 것을 보여드리면 됩니다.”
뭐야. 염주를 또 줘? 도대체 얼마나 뜯어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물약에 벌레 쫓는 무슨 약이랑 괴불인지 개불인지 하는 노리개도 두 개는 준 것 같고. 염주까지 주면, 도대체 얼마를 받는 거지? 이거, 정가는 있어? 약국 약들은 다 정찰제 아닌가? 부르는 게 값인가?
“다 기억하시겠지요?”
“예. 이건 아기 욕조 절반만 따뜻한 물을 담고 소주잔 한 잔만큼 넣어 섞어서 씻기고, 이건 아기 침대 난간에 걸고, 이건 아기띠에 걸고... 이건 방문 위에 걸어두고... 이것들은 집안 구석구석마다 걸어두고...”
“예. 걸어두는 주머니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구석이 좋습니다. 너무 많이 걸어 둔다고 해서 효과가 더 좋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통 벌레가 자생할 것 같은 그런 어두운 구석에 걸어두거나 던져두시면 됩니다. 일종의 해충 퇴치제 같은 거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사흘간 이 물약으로 목욕을 시켜보시고, 차도가 없거나 그 사이 벌레에게 또 물린 흔적이 생긴다면 곧장 오십시오. 다른 약을 드리겠습니다.”
부스럭거리며 짐을 챙겨 담는 소리가 들렸다. 호은당 찍힌 종이가방이라도 주나?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기는 앵 소리 한 번 안 내고 얌전하네.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아기가 순하겠지. 어쨌거나, 자. 이제 얼마를 부를 거지?
“그럼 약값은...”
“노리개는 선물로 드리는 것이고, 염주는 교환하는 것뿐입니다. 물약과 퇴치제 가격만 해서 오만 원입니다.”
“예, 예? 이, 이게... 이만큼이 다 오만 원이요? 여기 약값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거 봐. 사기 친다니까. 오만... 뭐? 오만 원?! 양심 있는 사기꾼이었던 거야? 아니, 저것들이 그렇게 싼 거야? 아니면 오늘 아침에 크게 한 탕 해서 인심이라도 쓰는 거야, 뭐야? 싸구려 짝퉁 아니야? 효과 없다고 다시 오면 굿 하자거나 그러는 거 아니겠지?
나는 정말 놀랐다.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인 것 같았다. 한약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오만 원이라니. 하다못해 홍삼도 수십만 원이고. 건강원에서 달여 주는 것들도 기본적으로 십만 원은 넘는데? 저거 도대체 뭐길래... 혹시 나프탈렌이거나 그런 거 아니야?
“아니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기 엄마는 확 달라진 밝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연신 건넸다. 나는 휴대폰을 슬그머니 숨기고 일어섰다. 곧 나올 테니 충실한 돌쇠는 마나님들의 신을 정리 해 두어야지. 나는 디딤돌 위에 올려진 낡고 구겨진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았다.
처음 샀을 때는 참 예뻤을 텐데, 이 신발. 갈색 스웨이드 단화는 굉장히 편해 보였고 또 단아했다. 깔끔하고 수수했다.
방문이 사르륵 열리고 한결 밝은 얼굴로 나오는 아이 엄마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기를 꼭 안고 나왔다. 한 손에는 아무 그림 없는 누런색의 두꺼운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뒤로 빙그레 미소를 짓는 은미 씨가 따라 나왔다. 은미 씨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아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기는 은미 씨의 손가락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고 정신없이 주변을 살피며 눈을 빛냈다. 그러다 혼자 까르르 웃기도 했다. 아이의 엄마는 놀란 눈이 되어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지난주부터... 아이가 제대로 웃은 적이 없어요. 몸이 이지경이 되니까 애도 짜증 나고 아프고 힘든지, 얼마나 울고 보채고... 그런데 여기 오니 단 한 번도 보채거나 울지도 않고... 신기하네요.”
“그런가요.”
은미 씨는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나는 대청에서 내려서는 아이 엄마의 손을 잡아 주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아기를 안은 채 허리를 숙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내민 손이었지만, 아이 엄마는 아주 감격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남편이 이런 거 안 해줍니까? 괜히 무안하네. 구겨진 신발에 대충 발을 쑤셔 넣은 그녀는 자신의 발이 편한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었다. 신발이 구겨지든 말든, 아기가 웃고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저 아기가 편하게 앉아 있도록 연신 아기를 끌어안고 도닥일 뿐이었다. 신발이라도 제대로 신지. 넘어지면 어쩌려고.
“신발... 제대로 신으세요. 넘어지면 어떡해요.”
나는 결국 작게 속삭였다. 아기 엄마는 얼굴까지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굉장히 힘겹게 신발을 신었다. 아마 꽤 오랫동안 이렇게 마구 구겨 신은 것 같았다.
그렇겠지. 울고 보채는 아이를 안고 어떻게든 달래야 했을 테니 신발이 구겨지든 찢어지든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여자에게 있어서, 하루의 모든 것의 우선순위는 이 아기였을 테니 말이다. 부스스한 머리도, 대충 한 화장도, 편하고 부드러운 옷만 입은 것도. 모두 아기를 위한 것이다. 이 여자의 삶이 오로지 이 아기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녀는 아기를 꼭 안고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주 안은 아기와 엄마는 마치 딱 맞는 퍼즐 조각 같았다.
은미 씨는 빙긋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나도 그녀의 뒤에서 함께 허리를 굽혔다. 또 사기나 칠 줄 알았는데. 꽤 진지하게 약사 노릇을 하긴 하는구나. 아기가 더는 저렇게 붓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진심으로 빌었다. 빨리 나아서 예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이제 아프지 말라고. 아기 엄마는 통통하게 부은 아기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기는 까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커다란 대문이 닫히고, 아기의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아기를 어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밝고 즐겁고 행복했다. 나는 문을 닫고 돌아섰다. 은미 씨는 벌써 대청마루로 올라서고 있었다.
“아까 깨진 파편들은요?”
“아, 그거... 급한 대로 방석 밑에 깔아놨어요.”
도자기 파편을 방석 밑에... 방석... 솜 방석이던데... 절망감이 담긴 내 표정을 살살 살피던 은미 씨는 냉큼 방으로 들어갔다. 이내 잘각잘각하는 도자기 파편 소리가 들렸다.
“아, 걍 냅둬요! 손 다쳐요!”
나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한쪽 옆에 수북이 쌓여 있던 행주를 한주먹 집어 물을 적셨다. 으유. 저러다 손에 파편 박혀서 아프다고 징징거릴 거야. 저래 가지고 사기는 어떻게 치나 몰라. 행주 뭉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니, 은미 씨는 어정쩡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방석을 둘둘 말아 쥐고 바닥을 닦고 있었다. 거 솜 방석인데 속에 파편 다 박히면 어쩌려고! 엉덩이에 도자기 주사 맞을 거요? 답답하기는. 사기만 칠 줄 알지 살림은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구만. 나는 냉큼 방석을 빼앗고 은미 씨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방석이 반짝거렸다.
“아까 그 유리컵도 깬 거죠?”
끄덕끄덕. 은미 씨는 눈만 도록도록 굴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녀를 대청에 앉혔다.
“요기 가만히 앉아 있어요. 알았죠? 치우는 건 제가 할 테니까, 얌전히 있어요.”
은미 씨는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며 얌전히 앉아 내 눈치를 살폈다.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굳은 얼굴을 애써 유지한 채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와. 저걸 어떻게 치울까. 바닥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은미 씨, 혹시 청소기 없어요?”
“없어요...”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