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당신 가거든(1)>
<에피소드 3-당신 가거든.>
노곤한 햇살 아래에서 시골집 똥개마냥 꾸벅꾸벅 졸던 나는 문이 덜걱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돌아서니 커다란 대문이 열리며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온화하게 웃었다. 나는 마당을 쓰는 노비가 됐던, 꿈인지 생신지 모를 것을 털어버리고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여기, 약방이 맞는지요?”
고아한 한옥, 커다란 나무, 푸릇푸릇해지는 잔디와 드문드문 놓인 테이블, 결정적으로 내가 마시던 물 맺힌 커피잔을 보고 멈칫하는 듯했다. 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호은당이 맞습니다. 약을 지으러 오셨습니까?”
“예. 약사님이십니까? 꼭 필요한 약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나를 약사로 본 것인지, 망설이면서도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거칠고 주름진 큰 손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빈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했다.
“아닙니다. 저는 노, 직원일 뿐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약을 만들고 계십니다. 시원한 음료라도 내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할아버지는 내가 약사가 아니라는 것에 조금 아쉬워하는 눈이었지만, 약사가 부재중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는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다행입니다. 매번 올 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오늘도 안 계시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습니다.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없어서...”
알쏭달쏭한 어르신의 대답에 의문을 표하기보다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가 묻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도움이 될 일도 없다. 어차피 약은 은미 씨가 짓는 거니까. 나는 잠시 기다리시라 하고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단 과일 주스는 별로일 것 같고, 나는 찬 물에도 우릴 수 있는 차가 있는지 열심히 차 통을 뒤적거렸다. 벽장 구석, 익숙한 티백 차 상자가 보였다. 아싸. 메밀차다.
나도 이건 안다. 열을 내리고 갈증 해소에 좋다고 마트 이모님이 여름이면 달고 살았다. 어르신에게는 과일 음료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았다. 찬 물에도 잘 우러나고 맛도 고소하니까. 나는 길쭉한 유리잔에 미지근한 물을 반 정도 붓고 티백을 넣어 흔들었다. 물은 이내 황금빛이 되었다. 얼음 몇 조각을 넣어 잘 저어준 다음 얼른 가져다 드렸다. 어르신은 빙긋 웃으며 시원하게 들이켰다.
“어유, 시원하네. 감사합니다. 한참을 걸어오느라 갈증이 났었는데.”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 돌아섰다. 내가 어질러 놓았던 자리를 치우려고 책을 집어 들었다. 혹시 여기 메밀차도 나와 있을까? 나는 책을 파라락 넘겼다. 역시. 메밀차는 열을 내려주고 온갖 영양소가 잔뜩 들어 있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뿌듯한 얼굴을 한 나는 대청으로 올라갔다. 마침 드륵드륵하는 돌 구르는 소리가 멈추었다. 똑똑. 나는 문살을 톡톡 두드렸다.
“선생님, 손님 오셨습니다.”
“네, 제가 나갈게요.”
그래. 나오세요. 방이 좀 더럽나. 밖에서 상담하셔.
나는 은미 씨의 까만 고무신 같은 구두를 돌려놓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은미 씨 몫의 메밀차를 또 만들어 어르신의 맞은편에 놓아두고 곧 약사님이 나오실 겁니다. 하고 웃었다. 어르신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몇 번이나 헛걸음을 하고도 또 찾아왔다니. 얼마나 간절했을까. 이렇게 간절한 손님들이 있는데 사장인지 약사인지 하는 사기꾼은 영업도 안 하고 맛집 탐방이나 하고 돌아다니고. 쯧. 본분을 잊은 거야. 사기 쳐서 크게 한 탕 하는 것만 생각하고 정작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안 돌보고. 좋게 보려 해도 좋게 볼 수가 없어.
여신은 개뿔. 얼굴만 예뻤지 속은 썩은 사과였다. 외모에 속은 내가 병신이지. 해고만 안 당했으면 여기서 일 할 일도 없었을 텐데. 내 속의 은미 씨는 이미 여신에서 악마로 단번에 바뀌어 있었다.
사람 자체가 악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수단이 틀렸다. 하지만 깊게 얽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제발 걸리지 말고 몇 달만 나 써 주세요. 어차피 여기도 길어야 6개월이겠지.
어르신은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책을 들고 어르신과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기로 했다. 우선은 서버니까.
“보리수가 잘 컸군요. 올해가 우리 할멈이랑 내가 결혼 한 지 60년이 되는 해라오.”
어르신은 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아득히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푸르른 하늘이 눈부셨다.
“할멈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다오. 생판 모르는 남자한테 시집와서 아들딸 다섯이나 낳고 농사, 삯바느질, 남의 집 허드렛일까지 해 가면서 자식들이랑 나랑 어린 시동생들, 시누들에 부모님까지 데리고 살았지요. 나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밖에서 노름에 술판에 계집질이나 하면서 허송세월 했다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장남이 장가갈 때가 되었더라고. 장가간다고 아가씨를 데리고 왔는데... 집이고 뭐고 줄 수 있는 게 나는 없었지. 부모님 유산도 내가 노름으로 떨어먹었고... 형제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었지요. 집안 사정을 대충 들은 아들 녀석의 여자 친구는 얼마 뒤 헤어지자 했다고 하더이다. 빚더미 집안 맏며느리는... 그래. 내가 그 아가씨였어도 싫었을 거요. 내가 그 아가씨 아비였으면 어떻게든 뜯어말렸을 거요. 그렇게 나는 아들의 혼사가 무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할멈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지. 내가 죽일 놈이라고. 자식 앞길까지 막는 쓰레기였다고. 어리석게도 그제야 깨달았지. 그리고 나는 건설 현장 막일부터 3년짜리 원양 어선도 탔다오. 할멈은 낮에는 식당 일을 하고 밤에는 마늘을 깠지. 둘이 미친 듯이 모으고, 빚도 갚고, 자식들도 부모가 가여웠는지 조금씩 보태주고. 그렇게 자식들을 하나둘 내보냈다오. 힘들고 팍팍했지만 나 혼자 신나던 그 시절보다 훨씬 행복하더이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어르신의 주름이 빙긋 휘어졌다. 그의 주름진 눈꺼풀 속의 까만 눈동자 안에 새파란 하늘이 가득 찼다. 잠시 하늘에서 춤추는 흰 구름 조각들을 바라보던 어르신은 다시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구수하고 좋군요. 하며 웃던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부인이 웃고 자식들이 기뻐하고. 결혼하고 40년이 다 된 그 무렵에야 나는 우리 할멈에게 처음으로 고기쌈을 먹여 주었다오. 고작 돼지고기 한 조각이었지만, 내 손으로 정성껏 싸서 입에 넣어 주었다오. 옳은 화장품 하나 찍어 바르지도 못 해서 기미가 잔뜩 핀 주름진 그 얼굴이, 영감이 다 늙어 주책이라며 웃으면서도 수줍게 받아먹던 그 얼굴이, 그 날은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큰손주가 장가를 간다고 고운 처자를 데리고 왔더라고. 이 망나니 노친네도 어른이라고, 인사드리는 것이 예의라면서 고기며 과일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고운 처자가 인사를 왔더라고. 그 모습을 보는데 큰 아들놈이 장가보내달라고 처자 데리고 왔던 그 날이 생각이 납디다. 그래서 할멈이랑 가진 재산들을 꺼내놓고 착착 나누었지요. 이건 누구, 이건 누구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나눈 것들로 유언장을 쓰고 공증도 받고... 전문가에게 유언장도 맡겨 놓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 그랬습니다. 마음이 놓였던 게지요... 이제 부모 노릇, 늦었지만 마지막 가는 길까지는 다져 놓았으니 자식들끼리 알콩달콩 잘 살면 된다. 그리 생각하고 나니... 할멈은 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정신을 놓아 버리더이다. 그리 똑 부러지고 야무지고 똘똘하던 사람이 열 살 꼬맹이가 되어 버렸다오. 허허허... 이 나이 먹고 또 애를 키우는 기분이라 우습기도 하고 버겁기도 한데... 그래도 할멈이 그리 된 것은 내 탓이 아닌가... 내가 할멈 속을 좀 썩였어야 말이지. 벌을 받는가... 했다오. 할멈도 얼마나 답답하겠소? 정신은 열 살인데 몸은 칠순이 넘었고, 온갖 병마들이 들끓고 있으니... 저도 어지간히 답답하고 짜증이 날 테지. 허허허. 그래도 요즘은 늦둥이 키운다 생각하고 잘 살고 있다오.”
어르신의 긴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동안, 내 눈앞으로 흑백 무성 영화 한 편이 펼쳐졌다. 고운 소녀가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그 시간이, 그 역경과 고난과 괴로웠던 눈물의 시간들이 봄바람과 함께 사르륵 펼쳐져 날아갔다.
그 힘들었던 시절, 악착같이 자식들을 키워내고, 시부모를 공양하고, 시동생들을 키우고,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다 해낸 할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그 힘겨웠던 세월을 이겨냈을까. 어떻게 그 고달픈 시절을 이겨냈을까. 그 고생을 늦었지만 깨달은 이 어르신은, 어떤 마음으로 부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반평생을 매달려 번 재산을 차곡차곡 나누어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분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을까. 주름진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어떤 얼굴을 했을까.
아이가 되어버린 부인을 돌보면서 이 어르신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하지만 어르신. 치매는 한약으로도 치료가 가능한지 알 수가 없는데요...”
나는 불치병이나 다름없다는 치매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아무리 좋은 약을 쓰고 좋은 치료를 받아도, 세월은 막을 수 없다고.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아니, 아닐세. 나는 할멈의 기억을 살리고 싶은 게 아니라오. 나는... 혹시라도 내가 덜컥 죽어, 내가 없는 세상에 홀로 남을 할멈이 걱정이 되는 것뿐이라오. 자식들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그건 할멈도 같은 마음일 게요. 다 늙어서 제 몸 하나 건사 못 하는 노인네가 열 살짜리 꼬맹이가 되어 징징거리면... 아무리 자식이라도 꼴 뵈기 싫지. 요양원 같은 곳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 가는 걸 하늘에서 지켜보는 것도 못 할 짓인 것 같고... 내 너무 늦었지만, 할멈이 더는 외롭고 힘들지 않게, 한창 곱디고왔던 그 시절을 나 때문에 날려버린 가여운 우리 할멈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 거라오. 나 때문에 고생만 했을 우리 할멈, 가는 길은 내가 같이 가려고. 같이 가서... 거기서는 고생 안 시키고 웃게 해 주려고. 저승 가는 길엔 내가 업고 갈 거라오. 작은 두 발에 흙 안 묻게, 예쁜 꽃신 신겨 내가 업고 갈 거라오. 세수도 내가 시켜주고, 밥도 내가 떠먹여 줄 거라오. 이제 우리 할멈은, 정말 고생 안 시키고 정승 집 마나님처럼 떠받들어 모시고 갈 거라오. 우리 할멈, 그 고생 내가 보답할 길이 없으니... 저승 가는 길이라도 내가 모시고 가고 싶다오.”
순간 나는 잘 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 말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어르신. 그래도 그...”
내가 당황해서 어물거리자 어르신은 시원하게 웃었다. 허허 웃는 웃음에 조금의 슬픔도 미련도 없었다. 조용한 마당을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허허허. 괜찮아요. 나는 살 만큼 살았고 놀만큼 놀았지. 우리 할멈이 가엽지. 누릴 것 하나 못 누리고 힘들고 아프게 산 우리 할멈이 가엽지. 그러니 내 할멈 숨이 다 하는 날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고 살 거라오. 자식들이야 이제 제 갈길 잘 가고 있으니, 노친네들이 유산이나 딱딱 나눠주고 조용히 떠나면 오히려 편하지. 안 그렇겠소?”
대답할 수 없었다. 어차피 어르신은 내 대답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어르신의 말에 동의도, 반대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마 알고 계실 테니까. 어르신은 또 한 모금 꿀꺽, 메밀차를 마셨다. 반 정도 줄었다. 우리 할멈도 메밀차 좋아하는데. 하며 중얼거리는 그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할멈이 떠나면, 딱 사흘만 있다가 갈 거라오. 할멈이 좋아했던 옷들 태워서 미리 보내 놓고, 할멈이 좋아하는 주전부리도 좀 챙기고... 우리 할멈 발에 신길 고운 꽃신 준비해서 마지막 가는 밥상 거하게 차려주고. 그러고 나서 따라갈 거라오. 내 요즘 매일 말한다오. 혹 먼저 저승 길목에 가거든, 사자님한테 딱 사흘만 기다리게 해 달라고 말하라고. 딱 사흘만 기다리면, 내가 예쁜 꽃신이랑 할멈 좋아하는 과자랑 고운 옷 챙겨서 뒤따라온다고. 그러니 혼자 가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이오. 혼자 다니면 길 잃으니,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사흘만 기다리면 내가 간다고. 그러면 내 손 꼭 잡고 할멈 좋아하는 코스모스 핀 꽃밭에 소풍 갈 거라고. 늘 그리 말한다오. 하루에도 수십 번은 말해야 겨우 기억하니, 자꾸자꾸 말해야지. 허허허!”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저 주름진 웃음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알고 있다. 그 어떤 말도 필요 없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이 어르신에게는 그 어떤 말로 만류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것이 한 평생 자신과 자식만 보고 살아온 가여운 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인 것을. 어르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최선임을. 나도 안다. 그것이 부인을 향한 어르신 만의 사죄의 방식일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는 얼굴 속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부인을 향한 어르신의 깊은 사랑과 감사, 고작 그것뿐이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나 따위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그 깊은 마음은 어르신의 주름진 미소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