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믿음의 가운데에서(E)>
누워있던 여자가 깨어나고, 은미 씨는 약과 복용법을 적은 봉투를 잘 챙겨 넣어 건네며 용법을 꼭 지키라며 신신당부했다. 여자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인사하고 휘적휘적 약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간 뒤, 은미 씨와 나는 이유 없이 글자 쓰기 대결을 펼쳤다. 봄의 해가 귀갓길을 서두르는 시간, 나는 천하의 악필임을 스스로 인정한 뒤 노비로 돌아갔다. 나는 역시 노비가 맞았다. 꼴에 어울리지 않게 선비 노릇 해 보려다가 된통 까이고 짚신을 찾았다.
“이런 멋진 옷 말고, 노비 옷 준비해 주시죠? 짚신이랑요.”
나는 툴툴거리면서 수북한 종이 뭉치를 들고 일어섰다. 은미 씨가 왼손으로 쓴 글자보다 내가 쓴 글자가 더 형편없었다. 은미 씨는 깔깔 웃으며 대청을 정리했다.
“짚신은 비싸니까 고무신 사 드릴게요.”
“그것도 좋네요. 흰색으로 부탁합니다. 알죠? 그 백마 표 고무신.”
상을 옮기던 그녀는 아예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내가 노비 흉내를 내며 장난치는 것이 그리도 우스운가. 기분이 나빠야 하는지, 재미있어하는 그녀를 보며 같이 웃어야 하는지 조금 헷갈렸다. 뭐, 어때. 나도 재미있는데. 나도 좋았다. 내 마음은 재미있어했다. 내 마음이니까.
박 노비는 이만 저녁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하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은미 씨도 입을 틀어막고 웃으며 같이 허리를 숙였다.
“점심때 먹었던 된장찌개, 남았으면 또 주세요. 박 노비 씨.”
노비라고 놀리면서도 저렇게 깍듯하게 하는 게 더 우스웠다. 나는 예이 하며 굽실거렸다. 은미 씨는 깔깔 웃었다. 어스름해지는 마당 가득 우리의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아, 어서 오세요!”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대문이 열렸다. 아, 여기 차도 팔았지. 깜빡했네. 나는 종이 뭉치를 주방에 대충 던져두고 대문으로 다가갔다. 싱글벙글 웃는 내 얼굴 때문일까. 막 들어서던 젊은 여자 손님 두 명 역시 방긋방긋 웃었다.
“이 쪽으로 앉으세요. 오늘 모처럼 공기가 맑아서 마당놀이하기 딱 좋아요.”
괜히 말이 많아졌다. 기분이 좋아서 일까, 신나게 한바탕 웃은 덕일까. 어쨌거나 나는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고, 어색해하는 손님들 역시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래. 내 마음이니까.
나는 메뉴판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종이 뭉치들을 분리하고 있는데 은미 씨가 들어왔다.
“장미꽃 차 두 잔이요.”
열린 주방 문 너머, 주황색으로 빛나는 푸른 마당 속에서 까르르 웃고 있는 두 사람, 문 앞에 서서 메뉴판을 든 채 방긋 웃고 선 은미 씨. 따뜻하고 싱그러운 푸른 봄바람이 불었다. 민들레가 웃고 나무가 춤추고 하늘이 노래한다. 어째서일까. 오늘은 만물이 웃는 것 같았다.
고부갈등으로 말라가던 여자가 다녀간 지 사흘이 지났다. 그 사이 약방에는 자잘한 손님들이 꽤 많았다. 고작 감기약을 사러 온 돈 많은 부부, 흔한 자양강장제를 사러 온 사람들이 서넛 있었다.
주말인 오늘, 차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오전부터 꽤 많았다. 이삼일에 한 번씩 오는 사람도 있었고, 오랜만에 온 듯한 손님도 있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꽤 오래 이 곳에 차를 마시러 다니는 것 같았다.
은미 씨는 손님이 들어오기만 해도 무슨 차를 주문할지 맞추었다. 처음엔 정말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단골이라서 취향을 알고 있는 것뿐이었다. 사기꾼이 따로 없었다. 아. 원래 사기꾼이었지. 깜빡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에 연화 선녀인지 하는 무당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무당이 보내주는 손님도 없었다. 매출은 그저 그랬고, 약 값은 늘 그렇듯 얼토당토않은 금액을 책정해 받았다. 한바탕 손님들이 다녀 간 뒤, 은미 씨와 나는 대청에 걸터앉아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다던 은미 씨 덕분에 나는 난생처음 수제 버거도 만들어 봤다.
사실 은미 씨는 사 와도 된다고 했지만, 내가 만들어보고 싶었다. 처음 한 것 치고는 꽤 괜찮았다. 내가 먹어도 맛은 썩 좋았다. 은미 씨는 앞으로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햄버거는 못 먹을 것 같다며 엄지를 세웠다. 늘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요리할 맛도 나고 재미도 있었다.
“근데 여긴 티브이가 없네요? 은미 씨 집이기도 한데.”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잔디가 흔들거렸다. 손님들이 모두 나간 뒤의 조용한 호은당은 적막 그 자체였다. 그 흔한 음악 하나 없으니, 우리가 음식 먹는 소리가 이곳 배경음악의 전부였다. 은미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딸기 우유를 꿀꺽꿀꺽 마셨다. 덧붙이자면, 거래처에서 덤으로 얻은 무른 딸기를 가지고 내가 직접 만든 딸기 우유였다.
“아. 있으면 너무 그것만 들여다볼까 봐 치웠어요. 사실 보고 있으면 계속 멍하게 보게 되잖아요. 바보상자.”
나는 반가운 옛날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시던 단어였는데. 어릴 때도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잘 없었는데. 왠지 반갑고 친숙했다.
“와. 진짜 오랜만에 듣네요, 그 말.”
입 안에 음식을 가득 넣은 채로 킬킬 웃다가 사래가 들려 죽는 줄 알았다.
“요즘은 스마트 시대니까요. 폰으로 뉴스 보면 되죠.”
은미 씨는 싱글싱글 웃으며 스마트폰을 톡톡 눌러 오늘의 주요 뉴스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버거를 우적우적 먹으며 그녀가 읽는 헤드라인들을 곁눈으로 보던 나는 움찔했다. 얼른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듯 받아 들고 굵은 글씨로 적힌 뉴스 하나를 터치했다.
[종교 문제로 시작된 고부갈등, 결국 파국으로… 종교 강요하는 시모 살해한 며느리 A 씨(29).]
「 지난 27일 오후 6시 30분경, 경찰은 서울 xx구에서 며느리 A 씨(29)가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시모 B 씨(65)를 식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것을 이웃 주민의 신고로 현장에서 긴급 체포…. B 씨는 결혼할 때 종교 강요는 없을 거라 약속했음에도 결혼 생활 내내 압박을 해 왔고…. A 씨에게 사탄에 씌었다며 종교적 물건들로 수개월간 폭행을 휘둘러…. 그 때문에 A 씨는 온갖 질병들에 시달리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며 혐의를 시인했다. B 씨가 강요한 종교는 이단 종교로 밝혀졌으나 B 씨는 이를 부인하며…. 한편 A 씨의 남편 C 씨(41)는 해외 출장 중에….」
“으, 은미 씨...”
나는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휴대폰을 건넸다. 은미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아주 시니컬하게 슥슥 움직였고, 그녀의 표정 또한 변함이 없었다. 분명 며칠 전에 다녀간 그 여자 환자일 것이다. 말도 안 돼. 그 몰골을 하고? 작은 반상 하나 들지도 못 해서 부들부들 떨던 사람이, 사람을 찔러 죽여? 나는 손이 덜덜 떨려 버거를 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그렇군요라니? 이게 그렇군요. 하고 끝낼 일인가?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약방에 와서 약까지 타 갔던 사람인데. 우리가 아예 모르는 사람이 아닌데. 당신이 진맥하고 약 지어 준 사람이잖아요?
“자기 마음대로 한 거죠.”
은미 씨는 무덤덤한 얼굴로 버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아삭. 양상추 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아니, 마음 내키면 사람 죽여도 됩니까? 이건 미친 거죠!”
미친 거 아니야? 이게 그런 말로 설명이 되는 겁니까? 사기 친 상대라서 상관없다, 뭐 그런 겁니까? 받을 돈은 다 받았으니 상관없다는 겁니까? 미친 거 아니야?
“그래서 거기 따른 벌도 자기가 받아야죠. 남편의 원망도, 살인에 대한 벌도, 사람들의 비난과 욕설도. 모두 자기가 받을 결과죠.”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흥분을 하는데도 은미 씨는 그저 담담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 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그녀는 오물오물 버거만 뜯어먹고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아니잖아요. 화난다고 사람 죽이면 세상천지 전부 다 살인마만 살게요? 그럼 세상 사람 모두가 범죄자입니까?”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 아닌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지금 은미 씨의 반응에 화가 나서 은미 씨를 찔러도 상관없잖아요. 할 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해도...!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찰서에 가서, 우리 환자였는데 많이 아파하고 많이 심각했다, 그래서 약도 지어줬다. 심신이 매우 미약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이니 참작 해 달라. 그렇게 빌기라도 할까요?”
은미 씨는 우물거리던 것을 꿀꺽 삼키더니 나를 휙 돌아보았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무엇일까. 알아볼 수 없었다. 무언가가 시커멓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은미 씨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차분하게 되물었고, 나는 대꾸할 말이 없어졌다. 할 말이 없었다. 그게 아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저는 그 사람에게 기력을 회복하고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약을 드렸어요. 제가 준 약을 먹고 기운 차려서 시모를 죽였다, 뭐 그렇게 봐야 하나요? 아니면 제가 준 약 때문에 사람이 미쳤다고 봐야 하나요?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나요? 제 탓이라고 하고 싶으신 거예요? 제게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예요?”
은미 씨는 내가 화내는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되물었다. 오히려 화를 내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한순간에 쑥 가라앉고 말았다. 은미 씨는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계속 쏘아내듯 말했다.
“아니... 저...”
“물론 경찰에서 조사는 나오겠죠. 무슨 약을 주었고, 무슨 술을 주었느냐. 진맥은 어떻게 내렸고 처방은 어떻게 했는지, 약 값으로 얼마를 받았는지. 모든 것을 물어보러 오겠죠. 하지만 저나 정우 씨나 뭘 했죠? 그 사람에게 자기 시모를 죽이라고, 우리가 부추겼나요? 말이 안 통하면 죽이라고 시켰나요? 저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약을 주었고, 정우 씨는 그런 저를 도왔고요. 약 값도 안 받았어요. 기억하시죠? 그것 외에 제가 한 게 더 있다면 알려주세요. 제 탓이라고, 저와 제 약으로 인한 영향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시다면, 그 사건과 제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그래. 그러고 보니 약 값을 묻는 그녀에게 돈은 필요 없다며 보냈었다. 그녀의 개인사를 다 듣고도 우리는 가타부타 말 한 적 없었다. 힘드셨겠어요.라는 쉬운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당신을 이해한다는 뉘앙스조차 풍기지 않았다.
그것은 나도 은미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 은미 씨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내게 알려주었다. 은미 씨는 그 여자와 정말 환자와 약사, 딱 그 정도의 대화만 나누었다. 나 역시 다른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우린 그 날, 그녀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 떠들었을 뿐이다.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결국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은미 씨 말대로 화를 낼 이유도 없다. 단지 충격이 컸을 뿐이다. 나는... 그 연약하고 비실비실하던 여자가 사람을 죽였다는 그 사실에, 그리도 괴로워하면서도 한 집에서 부대끼며 같이 살던 시모를 죽였다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알아요. 충격을 받으셨다는 거. 저는... 화가 나요. 기껏 정성 들여 만든 약을 줬는데 저런 마무리라니.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실망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선택한 거예요. 우리에게서 책임을 찾을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안면도 있고 사정도 아니까 안쓰러우니까...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고 동정하게 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환자로써의 그 사람이죠. 살인자인 그 사람에겐 그런 마음을 가질 이유가 없잖아요. 이미 저 사람은 우리가 본 가여운 환자가 아니라, 시모를 죽인 며느리, 사람을 죽인 살인자. 그저 그것뿐이에요. 그 사람 사정이 무엇이든, 얼마나 딱하고 가여운 사람이든.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저 사람이 살인자임은 변하지 않아요.”
은미 씨는 조금 전보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간간이 한숨이 섞여 있었다.
그녀 역시 충격을 받았고 놀랐지만 딱히 내색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 말대로, 딱히 우리의 감정을 소모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한 편으로는 매정하고 냉정하다고 하겠지만, 은미 씨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한 때는 가여운 환자였지만, 지금은 동정해야 할 환자가 아니라 그저 살인자일 뿐이었다.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는 죄인이고 살인자일 뿐, 그때의 애처로운 환자는 아니었다.
“... 죄송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어쩌면 은미 씨가 나보다 더 충격이 컸을 수도 있을 텐데. 직접 약을 지어주며 그리 세심하게 챙겼는데. 배신감이 들 수도 있겠다.
“아니에요. 이런 일은... 아무리 겪어도 단련되지 않을 테니까요.”
은미 씨는 빙긋 웃었다. 텅 빈 것 같은, 어딘가 허전한 미소를 띠며 그녀는 남은 햄버거를 입에 쑤셔 넣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지만, 이런 일은 은미 씨 말대로 수십 번, 수백 번을 겪어도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남은 버거를 바라보다 그냥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지고 말았다. 은미 씨는 조금 남은 딸기 우유를 가만히 바라보다 내려놓았다. 바닥에 가라앉은 빨간 딸기들을 빨대로 휘적휘적 저으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즐거워 보였던 마당이 지금은 무서웠다. 황량했고 썰렁하고 외로웠다. 홀로 핀 민들레마저도 애처로워 보였다.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은데, 일찍 닫고... 한 잔 하실래요?”
은미 씨는 빈 접시와 잔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나도 조용히 그녀를 따라 일어서며 그릇들을 챙겼다. 휭 하고 불어오는 봄바람이 오늘은 차가웠다. 나는 예. 하고 짧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