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5-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1)>

by 혜니



<에피소드 5-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



호은당에서 사기꾼들을 도와 노비 생활을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났다. 어제는 처음으로 맞는 휴일이었다. 휴일이면 편히 쉬어야 하는데 왜 그리도 불안한지. 아무래도 은미 씨 밥을 차려줄 수 없어서인 듯했다. 배가 고프면 돌변하는 무시무시한 그 여자가 하루 종일 굶지는 않을까, 뭔가 제대로 먹긴 할까. 걱정이 돼서 초조할 지경이었다. 밥만 해서 먹으면 된다고, 반찬도 몇 가지 만들어 뒀고 쌀 씻는 법과 밥 물 맞추는 법, 밥 안치는 법까지 세세히 가르쳐 주고 왔는데도 불안했다.

계란 프라이 먹을 거라고 불을 내지는 않을까, 비빔밥 먹겠다며 반찬 다 뒤섞어서 괴식을 만들어 먹지는 않을까. 아마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마음이 이랬을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저녁 무렵에는 전화를 하고 말았다. 밥은 잘 먹었는지, 약방에 불을 내지는 않았는지, 진심으로 걱정하는 내게 은미 씨는 쾌활하게 웃으며 걱정 말라 대답했다. 뭘 먹었냐는 말에 아침은 브런치 카페에서 먹었고 점심은 칼국수를 먹었단다. 저녁엔 해물탕을 먹으러 갈 예정인데 올 거냐 물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맛있게 드시고 오라며 끊었다. 통화하는 내내 옆에서 오빠 오빠! 부르는 연화 선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지난 한 주, 내 눈치를 보느라 사기 회의도 못 했을 테니 둘이 신나게 사기 칠 계획이나 세우라지. 그날 저녁, 나는 라면이나 끓여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침부터 호은당의 문 앞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아, 씨. 지금 몇 통짼데!”


호은당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은미 씨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이미 출근 시간은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나는 열일곱 번째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안 받으면 담을 넘어서 들어가던지 아니면 집에 가버릴 거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대문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한참을 집중하니 희미하게 벨소리가 들렸다. 신명 나는 트로트 가락이 들렸다. 맙소사. 어제 진하게 한 잔 할 거라고 자랑하더니. 뻗은 모양이었다. 돌겠네. 결국 전화는 친절한 응답기 누나가 받았고, 나는 전화기를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어휴, 내가 미쳐.”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근처 마트로 향했다. 콩나물과 북어, 무와 해장 음료를 산 뒤 호은당으로 돌아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담장 저 너머에서 트로트 가락이 흥 넘치게 퍼지고 있었다. 또 응답기 누나가 대답한다. 나는 대문 아래 틈으로 봉지와 가방을 쑤셔 넣고 담장 앞에 섰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쉽게 넘을 수는 없는 높이였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힘껏 뛰어올라 담장에 매달렸다. 한참을 낑낑 대며 겨우겨우 담을 넘어 올라섰는데, 담장 아래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도둑이야! 아침부터 도둑이야!”


“아, 아니! 저 여기 직, 와악!”


골목을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명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나를 가리켰다. 놀란 나는 담장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오, 허리야. 치료비 받고 말 테다. 나는 낑낑대며 일어서서 손을 저었다.


“도둑 아닙니다! 여기 직원인데 사장님이 지금 뻗어서 문을 안 열어줘서요!”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길 매일 지나다니는데! 당신 같은 직원 본 적도 없어! 도와주세요!”


다른 아주머니는 이미 수화기에 대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내게 고함치던 아주머니는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드셨는지, 우렁찬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덕분에 나는 아침부터 용감하게 약방 담치기 하려는 좀도둑이 되어 동네 사람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아니, 나 여기 일주일을 다녔는데...


“응? 약방 박 군 아닌가? 문 안 열고 뭐하나?”


“어, 어르신!”


할렐루야! 아멘! 타불! 감사합니다! 메르시! 땡큐! 모르겠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단골 어르신 두 분이 차를 드시러 오셨는지 북적이는 사람들을 뚫고 들어와 날 보고 알은체 해 주셨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어르신들에게 향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당장에 주먹을 날릴 기세로 서 있던 대학생 두 명이 움찔했다.


“아이고, 어르신! 잘 오셨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은미, 아니 약사님이 어디 안 좋으신지 전화도 안 받으십니다! 그래서 담이라도 넘어 들어가려는데 도둑으로 몰렸어요! 이 분들이 제 말을 아예 안 들으신다니까요!”


그러자 어르신들은 껄껄 웃으며 이 총각은 약방 직원이 맞다며, 지금 입고 있는 저 푸른 옷은 내가 골라 준 옷이라는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내 결백을 증명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까지는 안 하셔도 되는데... 그때, 골목 끝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애옹애옹! 경찰이다. 와. 나. 진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엄청난 소란 덕분에 골목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경찰은 내 손목에 채우려고 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번쩍이는 수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허허 웃었다. 은미 씨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대충 묶은 부스스한 머리를 보며 나는 가슴을 쳤다.


“덕분에 이 근처 분들은 이제 얼굴 기억하시겠네요. 수고하십시오!”


도대체, 지금, 그게 위로라고 하시는 겁니까? 경찰 네 사람은 수고하시라며 손을 흔들고 돌아갔고, 비명을 질렀던 아주머니들도 미안하다 사과하고는 후다닥 멀어졌다. 그 와중에 어르신들은 이미 대청에 올라가 직접 방석을 깔고 반상까지 펴 놓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날 때려눕힐 것 같았던 대학생들도 사과하고 돌아갔다.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골목 끝 커피숍의 알바생 몇 명, 스쳐가며 보았던 상점의 직원들이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었다. 아오. 저 사람들, 내 얼굴 낯익을 텐데. 너무하네. 난 결국 이 동네 유명인사가 되겠지. 아... 쪽팔려.


터덜터덜 들어와 어르신들에게 차를 내 드리고 마당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출근도 하기 전에 기운이 쫙 빠졌다. 은미 씨는 좌불안석이었다.


“진짜 죄송해요. 새벽에야 잠이 들어서... 전화하시지...”


“... 전화기 안 봤어요?”


은미 씨는 이제야 전화기를 눌렀다. 부재중 전화 18건. 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우. 진짜. 뭐, 됐다. 가게도 들어왔고 쪽팔리고 짜증은 나지만 덕분에 동네 사람들이 내가 또 담을 넘어도 도둑이네 뭐네 하지는 않겠지. 좋게 생각하자. 때려치울 수도 없잖아. 노비 짓 해야 먹고사는데. 아. 근데 진짜...


“아니, 어제 얼마나 드신 겁니까?”


“그...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 늦게까지 마셔서...”


“몇 시까지 마셨는데요?”


은미 씨는 손을 슬그머니 들어 보였다. 손가락 하나, 둘... 아니, 미쳤어요? 새벽 네 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이 아가씨가, 미쳤구만.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새벽 네 시까지 여자 둘이서 술을 마셨다고? 아침 열 시에도 못 일어날 만큼?


“히익. 잘못했어요!”


은미 씨는 내 눈치를 힐긋 보더니 아예 싹싹 빌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장이 뻗어서 늦게 열었는데. 직원에게 빌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가게 영업이야 사장이 하는 건데. 뭔... 웃음밖에 안 났다.


“아니, 됐어요. 무슨... 그래도 직원한테 빌어요? 사장 가오가 있지.”


“그래도요...”


비 맞은 생쥐, 혹은 해바라기 씨 훔치다가 딱 걸린 햄스터. 주인 몰래 사료 봉지 뜯던 강아지. 그래. 그런 느낌이다. 직원 눈치를 보는 사장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대청에 앉은 어르신들도 껄껄 웃었다.


“박 군, 그래도 자네가 너그러이 봐줘. 오라비 아닌가? 백 선생도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그만 혼내고 밥이나 차려 주시게. 백 선생도 오라비 속 그만 썩이시고.”


“아, 그런 거 아닙니다. 어르신!”


나는 손사래를 쳤다. 어르신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빙긋이 웃으며 나와 은미 씨를 번갈아 보았다.


“뭐, 아님 말고.”


어르신들까지 끼어드니 결국 은미 씨도 나도 더는 이야기를 끌 수 없었다. 그리고 오너이자 고용주인 은미 씨에게 더는 이런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정말 동생을 보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은미 씨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가게 늦게 여는 거든, 뭐 이런 건 다 아무래도 좋은데요.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마세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큰일 나요. 연화 선녀랑 둘이 놀았죠?”


“네...”


그럼 그렇지. 그 무당이 문제야. 항상. 따끔하게 혼을 내야지. 친구도 좀 가려서 만나지. 어휴.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순둥이 아가씨야. 약삭빠른 애한테 속아 사기나 치고.


“으휴. 둘이 그러고 다니면 진짜 큰일 나요. 나쁜 놈들이 허튼짓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늦게 다니지 마요. 늦게까지 놀고 싶으면 차라리 야식 시켜서 마당에 자리 깔고 먹던가요.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내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은 이제 숫제 아비가 됐네! 하며 웃었다. 내가 들어도 아빠가 딸에게 하는 잔소리 같았다. 은미 씨도 같은 생각인지 비식비식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네, 아빠...”


푸웁. 결국 은미 씨는 웃음이 터졌고 나도 어쩔 수 있나. 같이 그냥 웃어버렸다. 미안하면서도 무안한 마음에 나는 괜히 정색했다.


“나 방금 도둑놈 될 뻔했다고요.”


하지만 소용없었다. 은미 씨도 내가 이미 화가 다 풀렸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고, 나 역시 더는 화가 나지 않았으니까. 도둑놈 될 뻔 한건 좀 억울하긴 했지만, 나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허리를 접어버리던 은미 씨의 모습은 그때의 화와 짜증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죄송합니다.”


은미 씨는 까칠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어우. 얼마나 마셨길래 몰골이 저래. 빨리 해장국이라도 끓여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저래서는 분명 제대로 진맥도 못 할 것이다.


“어우, 정말. 세수라도 해서 술 좀 깨워요. 이거 마시고요. 해장국 금방 끓여 줄게요.”


해장국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 빛났다. 먹는 거 참 좋아한다니까. 나는 웃고 말았다. 드르륵 돌려 딴 숙취해소 음료를 내밀자 그녀는 단번에 말끔히 비워 버렸다. 아이고. 진짜.


“네엥...”


은미 씨는 씩 웃으며 쪼르르 욕실이 있는 가건물로 들어갔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마트에서 사 온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얼큰한 콩나물국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콩나물 봉지를 뜯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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