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5-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3)>

by 혜니





“그... 일단 저는 약사가 아니라 여기 직원이고요, 약사님을 모셔 올 테니까... 진정 좀 하고 계세요.”


나는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가 시원한 냉수 두 잔을 가져다주었다. 곧장 상담실로 들어간 나는 안방으로 연결된 방문의 문살을 통통 두드렸다.


“은미 씨, 연화 선녀가 보낸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으윽. 연화 이 죽일 년.”


그래. 죽일 년이지. 하다 하다 죽을 사람을 살려내라고 보냈더라. 어떻게 돌려보내냐... 한숨을 쉬고 돌아 나오는데 문이 열렸다. 은미 씨는 눈을 비비며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돈했다. 얼핏 보인 방 안은... 대단했다. 무슨 로마 공주님이 쓰는 방인 줄. 침대 주변으로 하얀 캐노피가 둘러져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여자, 어쩌면 엄청난 공주병 인지도... 됐어. 나한테 공주 노릇만 안 하면 되지.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니까.

은미 씨는 대충 정돈이 끝났는지 상을 펴고 앉았다. 나는 밖에서 울고 있는 부부를 불러 방으로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녹음 기능을 실행시켰다.

이건 난제다.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아무리 은미 씨가 뛰어난 약사라고 해도,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어떻게 살리겠어. 이번엔 사기 안치겠지. 나는 휴대폰을 바라보다 녹음 기능을 꺼버렸다. 대신 귀를 바짝 갖다 대고 집중했다.


“연화 선녀에게서 언질을 받았습니다. 내일 오시기로 하지 않으셨는지요.”


은미 씨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웠다. 아. 올 걸 알고 있었나. 그럼 사기 칠 준비를 했다는 소리구나. 나는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 사기꾼들. 어제도 그 사기 모의하느라 그랬구먼.


“죄송합니다. 마음이 너무 급하고 불안해서... 도저히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어제 왔는데 잠겨있고, 오늘 아침에도 잠겨있고...”


“어제는 휴일이었습니다. 영업시간은 오전 열 시부터고요. 연화 선녀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수요일에 오시라고.”


와. 까칠하네. 배고플 때랑 피곤할 때는 건들지 말아야겠다. 방에서는 연신 사과하는 목소리와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은미 씨의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쨌거나 오셨으니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연화 선녀도 이야기했겠지만, 제 능력 밖의 일은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다면 최대한 도와드리겠으나... 아니라면 고집부리지 마시고 조용히 돌아가십시오.”


중년 여자가 서럽게 흐느꼈다.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저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찾은 것이니... 작은 것이라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녀님께 전해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저희 민이의 명이 만 열아홉이 되는 해에 끝이 난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아직 할 것도, 누릴 것도 많은 그 어린것을 열아홉 생일에 보내야 한다니...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명입니다. 하늘이 내린 명,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명을 조절할 수 있다면 죽는 사람은 왜 있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응? 무슨 소리야? 뭐 얼마나 중병에 걸려서 열아홉을 못 넘기고 죽어? 무슨 병인데? 은미 씨도 못 고치는 병이... 있겠지. 은미 씨가 신도 아니고. 그래 봐야 사기꾼인 약사일 뿐인데. 이건 뭐 등 쳐먹을 돈도 없는 사람이거나 등 쳐먹으면 탈 나는 사람인가? 아니면 설마 진짜로 답이 없는 사람인가?


“하, 한 번만! 방법을 좀 찾아 주시면 안 됩니까? 예? 뉴비스 강 회장님 댁 딸도 살려주셨잖아요! 심성 그룹 막내 손주도 살려주셨고! 하늘 그룹 며느리도 애를 가졌는데 왜 저희 애는 안 되는 건가요?! 그들만큼의 재력이 없어서? 권력이 없어서요? 우리도 그들 못지않은 집안입니다! 전직 대통령 집안과도 사돈이고, 엘에이 그룹과 저희 친정은 멀지 않은 친척 관계라고요! 우리도 그들 못지않은 보답을, 더욱 큰 보답을 해드릴 수 있는데 왜 안 된다고만 하십니까!”


뭐? 그런 굵직굵직한 대기업한테 사기를 쳤다고? 미쳤네, 미쳤어. 사기인 거 걸리면 뒷감당 어쩌려고 그랬대? 차암... 용감하다, 용감해.


“그 사람들과 댁의 아드님은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그들은 약으로써 치료를 한 것뿐입니다. 댁의 아드님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그런 게 어디 있어! 강 회장 딸, 숨만 겨우 쉬는 거 살려냈잖아! 의사들도 포기하라고 하는 거 당신이 살렸잖아! 심성 막내 손주도! 으스러지고 가루 된 뼈들을 다 붙였잖아! 멀쩡히 잘 걷게 만들었잖아! 시험관 시술도 불가능하다는 하늘 며느리도 쌍둥이 가지게 해 줘 놓고 왜 우리 민이만 안 되는데! 왜! 왜 안 되는데! 우리가 우스워?!”


“여보! 선생님 앞에서 무슨 추태야!”


“추태? 추태? 이게 추태야? 사람 가려서 받는 저 여자 행실이 추접스러운 거지!”


하. 역시. 저런 사람들은... 진짜 입만 열면 재앙이다. 자기보다 좀 잘난 사람들 앞에서는 설설 기면서, 조금만 어려 보이고 어디 큰 기업 가족 아니면 다 아랫것들 대하듯이 함부로 하고. 저따위로 살고 싶을까? 진짜... 아무리 사기 치는 거라지만, 저런 것들도 다 상대해야 하니. 은미 씨도 불쌍하다.


“... 이만 돌아가십시오. 정우 씨, 손님 가십니다.”


어라, 이번엔 뭐 안 하나? 드르륵. 문이 열리고 은미 씨가 성큼 나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싸늘하게 굳은 까만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걸까. 은미 씨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힘없는 미소를 슬쩍 지어 보였다. 나는 얼른 디딤돌의 신발을 돌려놓았다. 하지만 그 신발의 주인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은미 씨가 돌아보며 얼굴을 굳혔다. 안에서는 대성통곡하는 소리와 제발 살려달라는 비명에 가까운 애원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절대 돌아갈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열린 대문과 울음소리만 가득한 상담실을 번갈아보았다.


“문... 걸어주세요.”


은미 씨는 한숨을 쉬며 대청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곧장 대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집 안에는 숨이 멎을 정도로 서럽게 우는 중년 부인의 울음소리만 가득 찼다. 은미 씨는 안채와 가장 멀리 떨어진 마당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정우 씨, 차 우리는 연습은 좀 하셨어요?”


“아, 네.”


그녀는 어두운 미소를 지으며 가장 자신 있는 차를 타 달라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마시면 좋은 차가 뭐더라... 나는 차통들을 주르르 훑다가 보라색 틴 케이스를 꺼냈다. 라벤더 꽃이 빼곡하게 그려진 뚜껑을 열자, 라벤더 향이 확 끼쳤다. 사실 그리 좋아하는 향은 아니지만, 라벤더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라벤더 차와 같은 순서에 자리한 투명한 유리 주전자를 꺼내 차를 우릴 준비를 했다. 스테인리스로 된 망에 찻잎을 한 스푼 넣고 끓기 직전의 물을 부었다. 그 사이 동그란 유리잔과 차와 함께 먹을 달콤한 간식을 준비했다. 스트레스엔 역시 단 음식이 최고니까. 안 어울리는 건 알지만 약과 두 개와 잘 익은 포도 몇 알을 따서 담고, 골동품 대신 얼마 전에 사 온 새하얀 다이또 표 쟁반에 담아 들고나갔다. 은미 씨는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있었다. 언제 나왔는지, 부부가 은미 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쩐지. 차 우리는데 시끄럽더라.


죽을 사람을 어떻게 살려내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물론 귀한 아들이 위독하다는데 뭐라도 붙드는 게 부모 마음이겠지만, 꼭 그렇게 신분과 재산을 들먹이면서 잘난 체를 해야 하나? 하다못해 인정에 기대어 하소연을 해 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은데. 하여튼 있는 집이 더 하다니까. 자식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굳이 재력 과시하면서 막말하는 건 아니잖아? 원래 있는 집 사람들은 다들 아랫사람으로 보이나? 돈이 많으면 저절로 저렇게 되는 건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무식해 보이는데.


나는 땅에 엎드려 우는 부인과 입술을 꾹 다물고 무릎을 꿇은 남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은미 씨의 앞에 차와 다과를 내려놓았다. 은미 씨는 내가 내려놓는 주전자를 보고 빙긋 웃었다. 평소와는 달리 밝지 않아서 내 마음도 불편했다. 나는 조용히 빈 찻잔에 차를 조르르 따라 주었다.


“라벤더네요. 고마워요. 딱 적절한 차예요.”


“감사합니다.”


나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조용히 옆에 섰다. 그 사이 부인은 더욱 크게 울었고, 남편은 힐긋힐긋 은미 씨를 노려보았다. 우리가 자존심 다 버리고 이렇게 비는데 감히 너 따위가 내 앞에서 차나 마시고 있어? 하는 눈빛.

역겹다. 자식 살려달라고 빌러 왔는데도 저러고 있다니. 자존심이 문젠가. 간이고 쓸개고 빼다 바쳐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데 뭐 얼마나 중병이길래 열아홉을 못 넘긴다는 거지? 지금 몇 살이길래 그러는 걸까?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았지만 입을 굳게 닫고 잔디밭에 엎드린 부인과 은미 씨를 노려보는 그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은미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라벤더 차만 잘도 호로록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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