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4)>
“돌아가십시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제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시키시는 일은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십시오. 저희 집안 오대 독자입니다. 정말 힘들게 얻은 아들입니다.”
은미 씨가 차를 다 비울 때까지 두 사람은 그녀의 앞에 엎드려 있었다. 자존심을 세우며 이글이글 불타던 남자의 기세도 푹 꺾였다. 독기는 없었다. 그저 간절함뿐이었다.
울던 여자는 은미 씨가 세 번쯤 더 안 된다고 거절하자 실신을 해 버려서 대청마루에 눕혀 둔 뒤였다. 남자는 은미 씨가 무어라 하든 그저 재고해 달라며 빌고 또 빌었다. 이젠 그 사람들이 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세 시간째 은미 씨 앞에서 빌고 있었다.
“하늘이 하시는 일을 제가 뭐라고 끼어들어 그것을 바꾼다는 말입니까? 할 수도 없을뿐더러, 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이미 정해진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저는 못 합니다. 할 줄 모릅니다.”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 전 재산을 다 바칠 테니, 우리 민이만... 민이만 살게 해 주십시오.”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은미 씨는 무뚝뚝한 얼굴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남자 역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두 사람은 쳇바퀴처럼 도는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은미 씨가 마신 다구들을 치우고 돌아오자 은미 씨는 눈짓으로 앞에 엎드린 남자와 사랑채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남자를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남자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손님, 저 쪽에 가셔서 연초라도 한 대 태우시지요.”
“... 예,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 벌레 보듯 보던 대단히 높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다리가 저린지 비틀거리며 따라왔다. 나는 낡은 의자를 툭툭 털고 남자를 앉혔다. 담배를 꺼내 내밀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담배를 받아 물었다. 그의 담배 끝에 불을 붙여주며 내가 물었다.
“아드님이 많이 아픕니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다 알면서 묻는 다고 생각한 걸까.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던 그는 내가 진짜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한숨과 함께 부연 연기를 토해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건강합니다. 아주 건강해요. 우리 민이는 프로 축구팀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아픈 게 아니라... 명이 짧은 겁니다. 우리 민이는 만 열아홉이 되는 내년 봄에... 수명이 다 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눈을 끔뻑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그것이 다였다. 아니, 그럼, 지금, 사주가 그렇게 나온 앤 데, 사주를 바꿔 보자고 약방을 온 거야?
“그... 어, 그러니까... 사주, 뭐 그런 걸 보신 겁니까?”
“예, 저도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화 선녀의 괘라서... 몇 번을 찾아가서 굿이나 부적 같은걸 부탁을 드려도 안 된다고 하시고... 한참을 매달리니 마지못해 여기를 알려 주시더라고요. 장담은 못 하지만 방도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헌데 그것도 아닌가 봅니다.”
그래. 아니다. 아무리 한약이 동양인에게 가장 최적의 약이라고 해도... 아무리 그래도 약으로 사주를 바꾸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애초에 사주라는 게 정확한지도 모르고. 은미 씨가 그쪽 바닥에서 도대체 어떻게 소문이 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백은미라도 사람 사주를 바꾸는 건 좀... 안 될 것 같은데.
“사주가 틀렸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민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라고요. 전국을 돌며 용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다 만나 보았지만, 모두 같은 말이었습니다. 어쩜, 마치 짠 것처럼 같은 말을 하더군요. 스물은 못 된다고. 생일상도 못 받을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남자는 이미 시커멓게 죽은 얼굴에 눈물 자국 가득 담고 한숨만 쉴 뿐이었다. 나는 담배꽁초를 깡통에 던져 넣었다. 그도 벌건 불이 살아있는 작은 담배를 휙 던져 넣었다. 허연 연기 두 줄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선생님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겠습니까?”
남자는 간절한 얼굴로 내 손을 꾹 잡았다. 나는 입술을 말아 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떨리는 눈동자, 빨갛게 충혈된 눈, 부르튼 입술과 핼쑥한 볼. 항상 멋있고 완벽한 모습으로 살았을 이 대기업체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만인의 위에 군림하며 거대 기업을 쥐고 있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은 길에서도 볼 수 없을 사람이 아버지다.
그 대단하다는 재벌도 사랑하는 아이의 아버지 일 뿐이었다. 평범한 아버지. 우리 아버지처럼 그저 한평생 가족들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평범한 가장일 뿐이었다. 두르고 있는 포장지만 화려할 뿐, 속 알맹이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아버지. 허리 펼 새 없이 농사짓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그런 그냥 아버지. 그 모습이 전부였다.
“죄송합니다. 약사님은... 이름 그대로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라고 해서 약사님 마음을 돌릴 재주도 딱히 없고요.”
“그렇습니까...”
남자는 두툼한 한숨을 토해내고 일어섰다. 사랑채를 돌아 나오니, 어느새 정신을 차린 부인이 은미 씨의 소매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은미 씨는 눈을 감고 그저 흔들흔들, 흔들릴 뿐이었다.
“여보, 갑시다.”
“어디, 어디를요?”
남자는 콧등을 몇 번 주무르고는 애처롭게 매달리는 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되물었다.
“집으로 갑시다. 곧 민이도 올 시간이고... 갑시다. 이 분은 약사님이지 신이 아니잖아요.”
“여, 여보...”
부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 안의 모든 것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녀는 멍하니 자신의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앙상해진 손이 은미 씨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그는 부인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은미 씨는 의자에서 일어나 한 걸음 물러섰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선생님.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남자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부인도 더는 매달리지 않았다. 세상 모두를 잃은 얼굴의 그녀는 비틀거리며 남편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은미 씨도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살펴 가십시오.”
나는 걸어두었던 빗장을 풀고 두껍고 무거운 대문을 스르륵 당겼다. 문이 열렸다. 골목을 지나가던 젊은 남자 두 명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아이고... 민아. 우리 민이, 대학도 못 가보고... 저렇게 큰 모습도 못 보고... 가여운 내 새끼.”
부인은 지나가던 젊은 남자들을 보자, 다시 감정이 격해졌는지 풀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또 울었다. 가여운 내 아들, 내 죄가 커서, 전생에 내가 큰 죄를 지어서, 내 새끼가 죽는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슴을 두드렸다.
터져 나오는 울음은 피를 머금은 듯 처참하고 구슬펐다. 당장이라도 저 잿빛 하늘이 와장창 부서져 쏟아져 내릴 것처럼 울었다. 한 걸음 앞에 불바다가 끓고 있는 것처럼 울었다. 옷깃을 쥐어뜯고 가슴을 치며, 부인은 서럽게도 울었다.
“정우 씨. 대문 걸어주시고, 두 분을 안으로 모셔주세요.”
은미 씨는 휙 돌아서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말에 목 놓아 울던 여인이 울음을 그쳤고 눈꺼풀로 눈물을 막던 남자가 고개를 홱 돌렸다. 나 역시 둥그레진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좇았다.
설마... 방법이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