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5-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5)>

by 혜니





은미 씨는 눈을 내리깔고 창가에 향을 피우고 있었다. 지난번에 맡았던 그 향기였다. 허둥지둥 달려 들어온 두 사람이 눈을 빛내며 그녀의 앞에 철푸덕 엎드리고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마치 신이라도 영접하는 모양새였다. 은미 씨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분께 따뜻한 오미자차를 내주시고, 저는...”


은미 씨는 선뜻 먹고 싶은 차를 고르지 못했다. 평소라면 지금 내 상태가 이러이러하니, 무슨 차를 달라. 그렇게 말했을 텐데, 지금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 부부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했다.

조금 전에 책을 볼 때, 마지막으로 읽고 있었던 카모마일이 떠올랐다. 스트레스와 피로 완화, 두통 등을 부르는 예민해진 신경을 가라앉히는 데 좋다고 했던 내용이 있었다.


“카모마일, 드릴까요?”


“네. 그게 좋겠네요. 진하게 부탁드려요.”


은미 씨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녹음이고 뭐고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애끓는 부모들의 그 심정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쓸 것 같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나는 저 두 사람이 정말 소원을 이루길 바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단 하루라도 좋으니 아들의 명을 늘려주었으면 하고 진정으로 바랐다.

따뜻한 차를 내어주고 다시 나가려는데 은미 씨가 나를 불렀다. 안에 있어도 된다며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아. 불안하구나. 그녀가 하려는 처방이 너무나 터무니가 없거나, 너무 어렵거나, 너무 비싸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저 사람들이 날뛰게 될까 봐 두려운 거구나.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오른쪽 뒤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부는 내가 자리를 잡자 어째선지 내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듯했다. 은미 씨는 내가 편하게 앉고 나서야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두 분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연화 선녀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드님도, 여러분의 부모님도. 날아가는 먼지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이 약방을 나서는 그 순간, 이 이야기는 입 밖으로 절대 내시면 안 됩니다. 두 분은 그저 새겨들으시고 행동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협박에 가까운 말투만 들어도 그녀의 표정이 어떨지 대충 짐작은 됐다. 마주 앉아있는 부부의 얼굴에 조금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조금 전보다 밝았다. 미소는 없었지만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 목숨과 바꾸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부인은 두 손을 꼭 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은미 씨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한숨이 길게 퍼져나갔다. 막상 불러 앉혀놓고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왜 이리도 뜸을 들이는지, 아무 상관없는 나도 애가 닳아 죽을 것 같은데 저 부부는 오죽할까.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은미 씨의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음력 3월 6일 자정에 청주 한 병과 사슴고기로 만든 육포를 가지고 남산 팔각정 뒤에 있는 벼랑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가면 피가 흰 소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동안, 두 분은 입도 벙긋하지 말고 술을 따르고 육포를 가늘고 길게 잘라 잔 위에 올려두십시오. 잔이 비고 육포가 사라질 때마다 쉬지 말고 잔을 채우고 육포를 올리십시오. 단, 그분들이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들이 여러분께 직접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다른 그 어떤 말을 해서 입을 열게 하더라도 절대 말하면 안 됩니다.”


“그분들이 누구시길래... 그리고 어떻게, 무슨 말을 안 하고 있으라는 건지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나도 놀랐지만 앞의 부부는 더 놀란 듯했다. 흰 소나무? 바둑을 두는 사람? 이거 뭐,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신선 뭐 그런 건가...? 부부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반신반의하면서 갸웃 거리는 저 표정, 분명 나도 저런 얼굴일 것이다.


“그분들은 인간의 생과 사를 관장하시는 북 성군과 남두성군이십니다. 흰 옷을 입고 무서운 얼굴을 한 노인은 죽음을 관장하는 북두성군이시고, 붉은 옷을 입은 잘생긴 젊은 분은 생을 관장하는 남두성군이십니다. 그분들께서 여러분들을 시험하실 것입니다. 그 어떤 말씀을 하셔도 대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께 말을 건네실 때는, 분명 알아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험을 통과하신다면, 아마 두 신께서 여러분들의 소원을 들어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신들의 뜻을 한낱 인간이 어찌 알겠습니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제게 매달리던 이 정성으로 매달려 보십시오. 제 마음을 돌린 것처럼, 두 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 거기에 흰 소나무가... 없는데...”


그래. 팔각정 뒤로는 계단인데. 아마도. 올라가 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흰 소나무가 있다는 것은 들은 적도 없었다. 거기에 벼랑이 있다 하더라도, 흰 소나무가 실제로 있을 리가 없잖아.

아. 또 사기구나. 에휴. 배우도 쓰나 보다. 저래 놓고 어떻게든 말하게 만들겠지. 그래서 말하면 시험에서 떨어졌다! 하고 내쫓겠지. 아니면 끝까지 대답을 안 해서 결국 말을 걸게 되면, 마음을 돌리지 못했으니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 하고 내쫓거나. 어차피 또 사기다. 괜히 긴장했네.


“저는 다 알려드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두 분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은미 씨는 거기까지만 딱 끊어 말하고는 조용히 차만 홀짝홀짝 마셨다. 부부는 은미 씨를 힐긋 보다 서로를 마주 보고, 그러다 내 눈치 한 번 살피고 다시 은미 씨를 바라보다 마주 보기를 한참 반복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은미 씨가 차 한 잔을 거의 다 비웠을 무렵, 부인이 입을 열었다.


“청주라 하심은... 일반 정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정종이 아닙니다. 청주입니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술입니다.”


은미 씨는 잔을 입에 댄 채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뭐 이런 무식한 인간이 다 있어?라는 투로. 누가 들어도 그런 말투였다. 그녀는 투명한 유리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정종은 청주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청주는 그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청주는 일본식 청주이고, 제가 말하는 청주는 전통 조선식의 청주입니다. 그리도 재력이 대단하다 하셨으니, 구하실 수 있겠지요.”


삐쳤다. 은미 씨, 지금 삐쳤다. 아까 기분 나빴던 그거, 지금 화풀이한다.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슬그머니 돌려 입술을 꽉 물었다. 웃어서는 절대 안 된다.


“제가 두 분을 도와드리는 이유는... 여기 있는 우리 소사(小師)께서 제게 간곡히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 소사께서 부탁하지 않으셨다면 절대 알려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알려 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니, 나머지는 두 분이 알아서 하십시오.”


뭐? 소사? 그게 뭔데? 아니, 나?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나는 부탁 같은 거 안 했어요. 내가 빈다고 들어줄 사람도 아닌 데다, 나는 진짜 안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날 끌어들이는 거지?

부부의 눈이 변했다. 그저 병풍 바라보듯 보던 시선이 갑자기 확 돌변했다. 생명의 은인을 보아도 저런 눈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나 남편 쪽. 남자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우러러보듯 바라보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멍청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 나도 그저 따라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사님. 감사합니다, 약사님.”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꿈에서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이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예상 가능하시지요? 그럼, 저는 더 이상 드릴 말도, 드릴 약도 없습니다.”


은미 씨는 쌀쌀맞게 대꾸하고 주전자를 들어 찻잔을 채웠다. 진한 황금빛 찻물이 뽀얀 김을 희미하게 피워 올렸다. 은미 씨는 다시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차만 마셨다. 부부는 은미 씨에게 큰 절을 올리고 내게도 허리를 거의 반으로 접다시피 인사하고 나서야 상담실을 나섰다. 나 역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지만 은미 씨는 그들에게 잘 가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단단히도 삐쳤나 보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 앞장서서 대문으로 향했다.


“소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대문이 열리고 부부는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허리 부러지겠네. 그만하세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상당히 겸손하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는 좀도둑이었는데 지금은 소산지 뭔지가 되더니 갑자기 이 부부의 은인이 되고 말았다. 하루가 아주 극과 극으로 달리는구나. 빨리 좀 가세요. 나도 두통 올라 그래. 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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