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5-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E)>

by 혜니




“소사가 뭐예요? 아니. 그것보다, 제가 언제 간곡히 부탁했습니까? 뭐 그런 식으로 저 팔아먹고 그래요? 동의도 안 구하고.”


사기꾼 집단에 한 발만 걸치고 있으려고 했지, 완전히 담글 생각은 없었는데. 졸지에 나도 사기꾼 패거리가 되고 말았다. 젠장.

이제 그러겠지. 3월 6일인가 언젠가 하는 날, 소나무에 밀가루 칠 좀 하러 가자고 하겠지. 그리고 빨간색인지 흰색인지 옷 입히고 바둑 두라고 하겠지. 바둑 둘 줄 모르는데. 어우. 두야.


“소사는 고려시대에 있던 관직의 하나예요. 종 2품의 관직인데, 삼소 중에 하나예요.”


아, 뭐래. 고려? 종 2품? 삼소는 또 뭐고. 삼손은 아는데. 뭔... 사극 좋아하세요? 갑자기 나온 고려와 사극에서나 쓰는 관직이 나오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역사가 제일 어렵다.


“고려시대 때, 태자의 교육을 위해 동궁전에 두었던 관리들의 관직 이름이에요. 문종 때 생긴 관직인데, 후에 세자이사로 불리기도 했고요.”


아니, 역사 공부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그런 괴상한 호칭은 왜 쓰냐고. 내가 점점 삐죽거리는 것이 보였는지, 은미 씨는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안 해도 돼요. 해도 못 알아들어요.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태자의 일을 돕는 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일종의 최측근? 스승이나... 보디가드? 그런 개념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니까, 댁이 태자고 내가 호위무사다, 뭐 그런 겁니까? 허. 도대체 갑자기 그런 건 왜 붙이는 겁니까. 갑자기 나를 왜 끼워 넣냐고. 나는 그런 거 안 할 겁니다.


“약방을 관리하는 분인데 매니저라는 외국식 직함을 붙이기도 뭣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붙인 거예요. 그때 갑자기 소사가 생각나서 붙인 거지,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그리고 종 2품이면 꽤 높은 자리예요. 어지간한 국회의원들보다 높을걸요.”


“됐어요. 뭔 정치인을 갖다 붙여요? 기분 나쁘게. 아무튼 뭐... 소사. 노비보다는 듣기 좋네요. 어르신들이 박 군아. 하시는 것보다 훨씬 낫고요.”


“그렇죠? 막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니까요.”


아이구, 그러셔요?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나는 왜 이 사기극에 끌어들여서. 아오. 진짜 빼박 사기꾼 됐네.

근데... 아까 그 이야기는 진짜인가? 북두성군, 남두성군 하는 이야기. 나는 그대로 남은 오미자차가 담긴 잔을 주섬주섬 쟁반으로 옮겨 담으며 은미 씨의 눈치를 살폈다. 은미 씨는 아까보다 훨씬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근데 은미 씨. 그... 북두성군, 남두성군 그러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거, 진짭니까?”


“믿기 나름이죠.”


역시. 사기였어. 가면 아무도 없는 거야. 에라. 얼마 받은 거야? 나는 구시렁거리며 잔들을 챙겨 나왔다. 막 방을 나서는데 은미 씨가 덧붙였다.


“그래도 이번엔 일단 그 부부에게 먼저 기회를 줬으니, 정우 씨는 다음 기회를 노려보세요.”


응? 진짜라는 거야? 내가 얼른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안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너울거리는 캐노피와 함께 은미 씨는 사라졌다. 뭐야. 헷갈리게. 진짜 그런 신이 있단 거야, 없단 거야? 나보고 그 날 거기 가란 거야, 말란 거야? 아, 헷갈려.


나는 새빨간 오미자차를 싱크대에 쏟아붓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은미 씨 간식 시간이다. 아니지, 조금 전에 라벤더 차 마실 때 간식 줬으니 그만 줘야겠다. 어제 과음도 했으니 좀 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읽다 만 책을 펼쳐 들었다. 해가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하루가 길다. 저녁엔 뭐 먹이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오늘 일의 원흉 연화 선녀가 들이닥쳤다.


“오빠! 나도 해장국!”


그녀는 오늘도 요란한 복장으로 또각또각 걸어 들어왔다. 날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대뜸 해장국이다. 인사는 어디 팔아먹었습니까? 안녕하세요, 몰라?


“여기가 식당입니까? 그리고, 젊은 아가씨 둘이서 새벽까지 밖에서 술을 그렇게나 마시고 돌아다니다니 제정신입니까? 댁은 선녀님인지 신님인지가 지켜주신다고 생각해요? 몸뚱이는 신이 못 지켜줘요! 미친놈이 작정하고 덤비면 어쩌려고 그 새벽까지 술에 쩔어서 돌아다녀요? 겁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닙니까? 은미 씨는 뻗어서 못 일어나고, 나는 도둑놈 될 뻔하고! 연화 선녀 때문에 이게 뭐요? 예?!”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쪽팔림과 분노가 뒤섞여 터졌다. 나는 아침부터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말을 와다다 쏟아냈다. 연화 선녀는 한껏 움츠리고 눈을 끔뻑거렸다.


“오마마? 이 오빠, 왜 이래? 오늘 기세가 왜 이리 등등해? 뭐, 칼이라도 하나 찼어?”


칼... 그래. 칼 찼다. 뭐 호위 무산가 뭔가 됐다.


“그게 중요합니까? 앞으로 밤늦게까지 놀 거면 차라리 호은당 마당에서 자리 깔고 놀아요! 어린 아가씨들이 겁이 없어!”


“에엥? 오빠, 이제 아빠 하기로 했어? 왜 이래? 벌써 아저씨 되려고 그래?”


이 꼬맹이가 진짜! 얻다 대고 아저씨야! 해장국이고 뭐고 확 굶겨버릴까 보다!

나는 말로는 저 성격 낭창낭창한 연화 선녀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해장국, 너 안 줌. 걍 맨밥만 줄 거임.

아니지. 맨밥이라도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라. 너는 여기 직원 아니잖아. 나까지 사기꾼 패밀리로 끌어들인 사기꾼 대장이지.

아. 생각하니까 또 억울하네. 소산지 소시진지 하는 이상한 자리 차지하고 결국 사기꾼 팀에 합류하고 말았으니. 난 진짜 억울해! 억울하다고요! 난 사기꾼이 아니에요!라고 외쳐도 안 믿어주겠지. 믿어도 벌은 똑같이 받겠지. 하... 이대로 사기꾼으로 굳어버리는 거 아니겠지, 나...? 아, 소시지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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