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외전 1-심부름>

by 혜니




<외전 1-심부름>


나 박정우, 약방 호은당에서 소사라 쓰고 노비라 읽는 사람이 된 지 한 달하고 사흘. 내가 하는 일은 약사이자 약방의 주인인 백은미와 문턱이 닳게 들락거리는 무당 연화 선녀의 점심과 저녁, 간식을 해다 바치는 것이다. 간간이 들어오는 약방 손님들과 차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에게 차를 팔기도 하고,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종종 대리운전을 해 달라고는 했지만, 약사인 백은미는 단 한 번도 핸들을 넘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차키를 받았다.


“으어억! 진짜 그냥 지하철 타고 가면 안돼요?!”


“그치만 거기 멀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정우 씨가 가끔 운전할 거라서 보험도 따로 다 들어 뒀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 이 사람아! 수억은 훌쩍 넘을 저 차를 내가 어떻게 모냐고! 내가 카레이서라도 간 떨려서 못 타겠다! 어우, 진짜. 벌써부터 후달리네.


“부탁드려요. 날짜를 착각하고 예약을 받아 버려서요. 이거 진짜 진짜 중요한 거란 말이에요. 시간도 별로 없어요. 네?”


은미 씨의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일이라서 상관은 없는데... 저 차 흠집이라도 나면 내 월급을 얼마나 까야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니, 오빠. 대리운전이나 심부름도 계약 조항에 있는데 왜 그래?”


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내가 만들어 준 수제 아이스크림을 마구 퍼먹던 연화 선녀가 말했다. 나도 안다고! 그때는 그 차가 저 차를 말하는 건지 몰랐지! 심부름 가는데 저거 몰고 가라고 할 줄은 몰랐다고!


“그건 그거고! 저 차를 내가 혼자 몰고 나갈 줄을 알았냐고!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다니려고 했지!”


“그래 봤자 쇳덩어리지. 비싼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이야? 걱정 마, 오빠 명줄 길어서 안 죽어. 오늘 사고 수도 없고.”


“아오! 너 좀 가라!”


“저녁 먹고 갈 건데?”


아, 약 올라! 어쩔 수 없이 나는 대문을 나섰다. 번쩍거리는 자동차 운전석에 앉으니... 아, 좋다. 진짜 좋다. 좋은데... 진짜 겁나. 엄마, 아부지. 아들 어떡해. 이러다 빚더미 앉게 생겼어. 좀 살려주라.

나는 시동 버튼을 눌렀다. 오메, 간 떨려. 그래.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해야 할 내 일이고, 보험도 다 들어 놨으니까. 이 차... 튼튼한 거 맞지...? 그르릉. 자동차 주제에 표범 같은 소리를 냈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핸들을 꽉 잡았다. 그래. 사고만 내지 말자. 초보의 마인드로 돌아가서, 절대 안전이다!


약 30분 정도 걸릴 거리를 40분이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데 다리가 얼마나 후들거리는지. 쓰러질 뻔했었다. 도착한 곳은 한적한 주택가였다. 빌라들과 원룸, 주택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는 평범한 동네였다.

나는 은미 씨가 알려준 빌라로 들어가 해당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내 누군가 대답하더니 문이 열렸다.


“아, 호은당 젊은이가 왔구먼.”


“어? 어르신?”


“어서 오게나. 일단 들어오시게. 냉수라도 한 잔 대접해야지.”


내가 호은당에 출근하고 며칠 되지 않았던 그때, 죽는 약을 달라고 찾아왔던 그 어르신이었다. 집으로 들어갔다. 낡았지만 깨끗한 집으로 들어서니 괴괴한 냄새가 확 끼쳐와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그러졌다. 시큼하면서도 따가운, 아니 매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분 나쁜 냄새였다.

소름이 돋는 냄새. 그랬다. 집안에 들어서니 소름이 돋았다.


거실에 자리한 고급스러운 소파에 걸터앉으니, 어르신은 냉수를 한 잔 내밀었다.


“미안허이. 다 정리하고 물만 있어서. 물 밖에 대접할 것이 없구먼.”


정리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알았다. 내가 무슨 심부름을 한 건지. 지금 이 냄새가, 이 공기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어르신의 인자하고 푸근한 미소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물이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꼭 이래야만 했나? 내가 꼭 저승사자가 된 기분이다. 왠지 모르게 콧등이 시큰했다.


“허허허. 오늘이 보름이라오. 내 잊고 있었는데 자네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기억이 났다네. 안 그래도 곧 올 거라고 생각은 했네만...”


“어르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보 같은 말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외치며 어르신의 손을 잡았다. 어르신은 허허 웃으며 주름 자글자글한 손으로 내 손등을 두드렸다.


“아닐세. 내 한 달 동안 참으로 재미있게 살았다오. 우리 할멈 줄 고운 꽃신도 준비했고, 할멈 먹을 주전부리도 다 준비 해 두었다네. 오늘 할멈 가고 나면... 내 손으로 우리 할멈 예쁜 옷 입혀주고... 챙겨 갈 것들 잘 챙겨서 뒤따라 갈 거라오.”


집 안의 이 냄새는, 이 기운은, 아마도 죽음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환기를 시켜도, 향을 피워도 없앨 수 없는 죽음의 냄새. 사신의 향수 냄새. 그 사신이 내가 되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에 든 약봉투를 내밀었다. 작고 네모난 반지 상자처럼 생긴 목각함 두 개가 달각 소리를 냈다. 어르신은 그것이 엄청난 보물이라도 되는 듯, 품에 소중히 안고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내 할멈에게 이거 왔다고 자랑 좀 하고 올 테니 쉬고 계시게.”


어르신은 안쪽의 방문을 열었다. 시커먼 죽음의 냄새가 확 끼쳐 나왔다. 방문 너머에서 두런두런 말하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얼핏 들려왔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할멈,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딱 사흘이야. 사흘만 기다리면 내가 갈 테니, 사자님께 부탁 꼭 해야 해. 할멈 혼자 가면 길 잃어. 안 돼. 내가 할멈 좋아하는 약과 한 보따리 가지고 갈 테니 기다려. 알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나오는 길, 연화 선녀가 이것도 챙겨 줬는데. 나는 지금까지 품에 안고 있었던 하얀 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문득 눈이 간 집 안은 휑뎅그렁했다. 낡은 식탁 하나, 오래된 소파와 탁자, 벽에 걸린 가족사진. 흔한 화분도, 작은 장식 소품도 없었다. 모든 것을 정리한 것 같았다. 얼핏 보이는 주방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빈 생수병 두 개와 종이 뚜껑이 붙은 컵라면 용기 하나가 나무젓가락을 비죽이 꽂고 멀뚱히 서 있었다. 울컥 무언가가 솟아났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어르신의 목소리는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잔뜩 처진 기분으로 호은당에 들어섰다. 은미 씨는 막 비워진 테이블을 닦고 있었고 연화 선녀는 툴툴거리며 빈 찻잔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별말씀을요.”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내 표정은 좋지 못했나, 은미 씨와 연화 선녀는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손님도 없고, 나는 사랑채 뒤로 들어가 담배를 꺼냈다. 부옇게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나는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또 한 대를 태운 뒤에야 마당으로 나왔다. 은미 씨와 연화 선녀는 빈 테이블 앞에 앉아 내가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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