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7-운수 좋은 날(1)>
<에피소드 7-운수 좋은 날.>
한 달이 지나자 이제 해골바가지 방도 무섭지 않았고, 서랍 속 지네나 시퍼렇게 눈을 뜨고 노려보는 술병 속 뱀도 무섭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 알아! 외치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갑질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됐다. 이런 것에 덤덤해지는 내가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내세울 것이 그런 것들뿐인 가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동정심도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누군지 아느냐 소리치다가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인사하고 돌아가는 남자를 배웅하고 돌아섰다. 은미 씨는 당이 떨어진다며 푸들푸들 떨었다. 나는 잽싸게 냉동 블루베리와 꿀을 요구르트에 잔뜩 뿌려 내밀었다. 그녀가 마당의 테이블에서 힐링 타임을 갖는 동안, 나는 상담실로 들어섰다.
“하... 폭풍이 따로 없었구나.”
반상의 다리 한쪽이 부러져 있고 도자기 몇 개가 박살이 나 있었다. 바닥엔 찻물이 흥건했고, 찻잔이었을 잿빛 파편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있었다. 구겨지고 찢긴 책들도 몇 권 나뒹굴었다. 나는 책부터 주워 치웠다.
“하여튼, 있는 놈들이 더 지독하다니까. 비싼 돈 들여서 유학 가고 외국물 처먹으면 뭐해. 인성이 글러 처먹었는데. 어휴. 꼭 이런 몇몇 무식한 인간들 때문에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까지 싸잡아 욕먹잖아. 노블레스 오블리주 어디 갔어? 어휴, 무식한 놈들. 차라리 양아치 건달들이 더 정중하더라. 아니, 근데 청소기 하나 사자니까 진짜!”
나는 구시렁거리며 파편들을 쓸고 닦았다. 산 지 겨우 한 달된 방석은 또 버려야 했다. 이 반상은 오래된 것 같은데... 버려야 하나. 부러진 다리와 함께 밖으로 내놓고, 나는 상담실 전체를 쓸고 닦았다. 꽤 오래 걸렸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살다 살다 저런 무식한 놈은 처음 봤다. 화병으로 은미 씨를 치려는 순간 내가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까딱했으면 살인도 했을 놈이다. 아니, 연화 이 녀석은 사람 좀 가려서 보내지! 저런 개망나니를 보내? 오기만 해라. 따끔하게 혼을 내놓을 테다!
한참을 쓸고 닦고 정리하고 나온 나를 은미 씨는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불쌍하게 보지 마요. 노비가 할 일인데요, 뭐. 말이 소사지, 노비잖아요.
절그럭거리는 파편들을 담은 봉지를 꼭꼭 묶어 신문지에 싼 다음 또 한 번 비닐에 넣었다. 이 정도면 미화원 아저씨가 손을 다치지는 않겠지.
이렇게 자꾸 깨지는 것들이 많으니 새 잔이며 식기들 사 들이는 것도 문제다. 차라리 안 깨지는 나무나 플라스틱을 쓰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식당에서 쓰는 은색 스테인리스 컵을 사 올까 보다.
“고마워요, 정우 씨.”
“뭘요. 다친 데는 괜찮아요?”
은미 씨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깨지면서 튀어 오른 파편에 맞아 한쪽 팔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그녀는 팔을 들어 보였다. 키티 그림이 그려진 핑크색 반창고가 찰싹 붙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앉았다.
“연화한테 이런 손님은 좀 보내지 말라고 해요. 오는 족족 하나씩은 깨 먹고 가는데 남아나질 않겠어요.”
“그치만 연화도 모르는걸요. 연화 앞에서는 얼마나 깍듯하고 순한데요. 연화도 모르고 보내는 거죠. 뭐, 설사 알더라도 제 속셈이 있으니 보내는 걸 테고요.”
그래. 돈은 벌어야 하니까. 그렇겠지. 돈 뜯기 쉬운 상대를 보내는데, 그 상대들이 하나같이 사람을 우습게 알고 돈이 최고인 줄 아는 쓰레기들뿐 이라는 거다. 그런 인간들 돈을 뜯어내야 양심의 가책이 없다나. 나 참.
기부나 좀 하랬더니 연말마다 기부는 꼬박꼬박 하고 있단다. 의외로 모범적인 사기꾼들이다. 나는 픽 웃으며 그녀가 말끔히 비워놓은 요구르트 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저녁에 뭐 드실래요? 출근하는 길에 보니까 저 아래 정육점에서 고기 세일하던데, 두루치기 매콤하게 볶아서 쌈 싸 먹을래요?”
“네! 아주아주 맵게요! 아주 그냥 속에서 천불이 나게 매운 걸로요!”
어지간히도 화가 났나 보다. 연화는 이따 오면 크은일 났네.
이글이글 불타는 은미 씨를 보며 킬킬 웃다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찬장 구석에 숨겨두었던 카드 한 장을 꺼내 주머니에 넣고, 마트에서 얻은 장바구니를 들고 나오니 은미 씨는 어느새 보리수나무 아래에 가 있었다. 오늘 날씨가 꽤 더운데, 열까지 냈으니 오죽하랴. 나는 다시 들어가서 얼른 국화차를 우리고 얼음을 띄웠다.
“자요. 혈압 내리고 있어요. 장 보러 다녀올게요. 문은 닫아둘 테니까 잠시만 손님 받지 말고 좀 쉬어요.”
은미 씨는 눈을 감은 채 기대어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는 그녀의 옆에 놓인 테이블에 차를 올려두고 대문을 나섰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묵직하고 단단했다. 나는 담배를 하나 빼물고 어슬렁어슬렁 골목을 내려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알은체를 하니, 인사하다가 담배는 그냥 생으로 태워 버리고 말았다. 아, 아까워.
돼지고기와 쌈 채소를 잔뜩 사고 다시 돌아오는 길,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어? 연화가 왜 전화했지? 나한테 직접적으로 전화하는 일은 잘 없는데, 어쩐 일일까.
“어, 연화야.”
-오빠! 지금 어디야!!
“어디긴. 약방이지. 물을 걸 물어라.”
-약방이라고? 아닌데. 지금 오빠 약방 아닌데. 아닌데?
“장 보러 나왔어. 왜? 뭐 먹고 싶은데? 마트 다시 가?”
나는 얘가 뜬금없이 왜 이러나 싶었다. 다급하게 다짜고짜 어디냐 묻더니, 약방 아니라고 중얼중얼거린다.
뭐 먹고 싶은 게 있나, 그래서 이렇게 뜸을 들이나. 나는 다시 담배를 물고 골목 옆으로 비켜섰다. 저 멀리서 자동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빨리 가! 멈추지 말고 곧장 약방으로 가! 당장!
아이고, 귀야.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후다닥 걸음을 옮겨 골목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 사이에도 연화는 빨리 가라고, 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더운데 뭘 뛰어? 그래도 뛰는 시늉이라도 하자 싶어서 걸음을 재촉하는데, 콰앙!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딱딱한 무언가가 내 다리와 허리에 사정없이 튀었다.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내리막을 내려오던 자동차가 내가 서 있었던 담벼락에 그대로 갖다 박은 것이었다. 맙소사!
“야, 야! 끄, 끊어봐! 사고 났어! 사람 죽었을라! 119 불러야 돼!”
-내가 불러놨으니까 됐고, 오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약방으로 달려! 빨리! 안 그럼 진짜 죽어!
뭐? 뭔 소리야? 그럼 이거 알고 전화했다고?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재촉해 서둘러 약방으로 달려왔다.
헐떡이며 약방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약방 앞에 은미 씨가 나와서 서성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후다닥 달려와 아무 설명 없이 나를 끌고 약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다친 곳은 없어요?”
아무래도 연화가 전화했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벌벌 떠는 손에 쥔 전화기를 내밀었다. 연화는 들어갔냐며 계속 묻고 있었다. 입을 떼면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어, 연화야. 무사해. 들어왔어. 응.”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와 끊어진 전화기를 번갈아 보았다. 은미 씨는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 몸 이리저리를 살펴보았다. 뒤쪽, 종아리 부분 옷에 라이트 커버 파편으로 보이는 붉은 조각 하나만 있을 뿐, 몸은 멀쩡했다.
은미 씨는 사고 현장에 있었던 내가 갑자기 피해서 오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자신이 대신 다녀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나가버렸다. 괜한 오해를 더 사는 것이 않을까 걱정했지만, 은미 씨는 걱정 말라며 당당하게 대문을 쿵 닫았다.
남겨진 나는 은미 씨가 주고 간 환약을 물과 함께 꾹꾹 씹어 삼키고 대청에 드러누워 있었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뒤에서 날아와 부딪히던 파편들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했다. 누워 있음에도 온몸이 벌벌 떨렸다.
운전자는 괜찮을까. 너무 걱정이 됐지만, 은미 씨가 직접 갔으니 응급처치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요동치는 심장이 차츰 가라앉고 덜덜 떨리던 몸도 진정이 됐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식재료들을 주섬주섬 챙겨, 저녁 준비라도 할까 하면서 칼을 들었는데 손이 너무나 떨렸다. 부들부들, 미친 듯이 떠는 손을 보니 이러다 고기가 아니라 내 손을 썰 것 같아서 포기했다. 조금만 더 쉬었다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마당으로 나와 사랑채 뒤로 들어갔다. 여전히 손이 덜덜 떨려서 담뱃불 붙이기도 힘들었다. 담 너머에서 구급차 소리, 경찰차 소리가 요란했다.
힘겹게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어슬렁어슬렁 나오는데, 은미 씨가 경찰 두 사람과 함께 들어왔다.
낯선 경찰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테이블에 무너지듯 풀썩 앉았다. 은미 씨는 상담실로 들어가고, 경찰들과 나는 마주 앉았다.
“많이 놀라셨지요? 목격자 분들이 많아서 뭐 많이 여쭐 건 없는데, 결정적으로 가장 가까이 계셨더라고요. 다치신 곳은 다행히 없으시다고요? 운이 정말 좋으셨어요. 그런데 그때 혹시 그 사고 차량이나... 아니면 사고 나는 순간에 뭐 별다른 일이 있었나 해서 왔습니다. 그쪽은 씨씨티브이에 안 찍혀서요. 사고 나자마자 바로 자리를 피하기도 하셨고... 보통은 신고를 하시는데 말이죠.”
경찰의 말에 기분이 조금 나빴지만 나는 내색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본 거라곤 앞부분이 박살 난 흰 자동차, 그것이 전부였다. 안쪽은 에어백이 다 터져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고. 클랙슨을 울리지도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 골목에서 그 속도로 달렸다는 것을 나 역시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기억을 더듬어 어딜 갔다가 오는 길었는지 천천히 되짚으며 설명하는데, 은미 씨가 콩알보다 작은 환단 열 알 정도를 가져다주었다. 물과 함께 그것을 먹는 동안 경찰들은 침작하게 기다려 주었다.
약을 먹고 나서, 연화와 통화하던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경찰들의 옆에 서 있던 은미 씨의 표정이 변했다.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또렷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내색 않고 대답을 이었다. 연화와 통화한 이야기는 저녁 메뉴 이야기라며 둘러댔다. 실제로 뭐 먹고 싶냐고 물었으니까.
하긴. 경찰에게 무당이 피하라고 전화했어요.라고 할 수는 없지.
“저녁에 두루치기 해 먹을 건데, 다른 거 뭐 먹고 싶냐 물어보면서 그냥 걷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쾅...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너무 놀라서 심장이 너무 아파서, 약방 생각밖에 안 나서, 곧장 약방으로 왔습니다. 제가 들어오고 약사님이 나가셨고요. 제가 기억하는 건... 에어백. 에어백이 꽉꽉 차 있었던 거 말고는...”
나는 고개를 또 흔들었다. 진짜로 그것밖에 모르겠다.
경찰은 억세게 운이 좋은 거라며, 정말 다행이라고 몇 번을 말했다. 그들은 통화한 연화가 누구냐고 물었다. 무속인이자 지인인 연화 선녀라고만 대답했을 뿐인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도 연화를 아나?
그들은 약 잘 먹고 푹 쉬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진짜 운이 좋았다. 진짜, 연화 아니었으면 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찰이 나가고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오늘은 아침부터 일진이 더럽다. 나도, 은미 씨도. 개판이다. 약방 손님은 가재도구를 죄다 박살내고 죽일 듯이 욕을 하고, 나는 진짜로 죽을 뻔하고. 어으.
은미 씨는 빈 의자에 털썩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에게도 오늘은 지치는 날일 것이다.
“두루치기, 엄청 맵게 볶아드릴게요. 그전에... 조금만 쉬고요. 손이 너무 떨려서 못하겠어요.”
“우리, 오늘은 바깥 음식 먹어요. 연화더러 올 때 사 오라고 할게요.”
“... 콜.”
우리는 더 이상의 대화도 없이 축 늘어진 채 멍하니 시간만 죽였다. 정말, 오늘은 길고도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