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7-운수 좋은 날(3)>

by 혜니



어라, 여기가... 어디지? 내가 여기 왜 있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 분명히 호은당 출근하는 길이었는데. 지하철역을 올라오니... 괴상한 곳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낯설지만 예쁜 곳. 아름다운 곳인데... 음... 처음 보는 곳이다. 긴 꼬리를 가진 하얀 새가 날아다니고 하늘은 예쁜 연분홍색이다. 색색의 꽃들이 잔뜩 피어 있는데 희한하게 향기는 나지 않았다. 신기해서 한 송이 꺾어 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꽃대에 흠집 하나 주지 못했다. 아. 은미 씨는 신기한 거 좋아하는데. 이거 갖다 주면 좋아할 텐데.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꽃들 사이로 난 길을 발견했다. 반듯한 까만 돌들이 가지런히 놓여 길을 이루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보이는 거라고는 꽃들과 새들, 안개라도 낀 것처럼 부연 공기들뿐이었다. 머리 위만 연분홍색일 뿐, 사방은 안갯속 같았다. 나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안개가 걷히고 작은 구름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여기가 산꼭대기구나. 이 다리로 저쪽으로 건너가는 거구나. 나는 구름다리로 다가갔다. 구름다리 주변에는 여기저기서 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다들 아, 여기 다리가 있었구나. 하는 얼굴로 차례차례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 역시 무리에 끼어 다리를 건너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손목을 잡았다. 앙상하고 쪼글쪼글한, 고생 많이 한 것 같은 할머니가 다리 옆에 서서 내 손을 잡은 것이었다. 나는 눈을 끔뻑이며 돌아보았다.


“우리 영감. 우리 영감은?”


“어... 할머니 영감님은... 저는 모르는데요.”


응? 연노랑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며 손목을 흔들흔들 흔들었다.


“우리 영감. 온다고 했는데. 우리 영감이 기다리라고 했어. 근데 왜 영감은 안 데리고 오고 삼촌만 와?”


엥? 삼촌? 뭔 소리래요? 제가 할머니네 영감님을 왜 데리고 와요? 여기 내가 누구랑 같이 오기로 한 건가? 오는 길에 모르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모르겠다. 정말.


“그... 할머니, 할아버지는 제가 잘 모르겠는데... 혹시 오다가 길이라도 엇갈리신 거예요?”


“아니, 영감이 사흘만 기다리면 온댔는데, 영감은 안 오고 왜 삼촌이 와?”


당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할머니 어디 안 좋으신가. 말투도... 치매인가. 나는 빨리 다리를 건너서 저 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이 넓디넓은 오지랖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옆으로 물러나서 할머니 옆에 섰다.


“그럼 여기 계세요. 제가 할아버지 찾아볼게요. 할아버지 어떻게 생기셨어요? 옷은 뭐 입으셨어요?”


“몰라. 잘생겼어. 우리 영감, 미남이야. 근데 오늘이 사흘 짼데 아직 안 와. 꽃신 사 온대서 나는 맨발인데. 배도 고프고. 영감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 약과 가지고 온대. 그러니까 삼촌도 기다려.”


“할머니, 혹시 먼저 건너가신 거 아닐까요? 할머니랑 엇갈려서, 할머니 먼저 건너셨나 하고 넘어가신 거 아닐까요? 저랑 같이 건너가세요, 그럼.”


“아니야. 영감 온다고 했어. 여기서 딱 사흘만 기다리랬어. 아직 사흘 다 안 지났으니까 이따 올 거야.”


뭐 어쩌란 거야? 찾으러 가겠다니까 기다리라고 하고, 건너가자니까 온다고 하고. 나 참. 괜히 나왔네. 히익. 줄은 언제 이렇게 길어진 거야? 에휴. 한참 기다려야겠다. 이렇게 된 거, 할머니랑 시간이나 때우지 뭐.


나는 할머니를 근처 바위 위에 앉히고 그 옆 바닥에 앉았다. 할머니는 계속 배가 고프다고 했지만 난 가방도 없었고 주머니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털고 뒤져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배가 고프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 진짜. 배고프다고 짜증 내는 사람은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어, 근데... 배고프면 짜증 내는 사람이... 누구더라...? 있었던 것 같은데.


“영감! 영감!”


내가 딴생각을 하는 사이, 할머니는 갑자기 영감을 부르며 달려갔다. 아, 할아버지 오셨구나. 그럼 이제 나도 가야지. 할 만큼 했다. 하며 일어나 엉덩이를 터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가왔다. 할머니의 맨발에는 예쁜 꽃 자수가 놓인 연분홍색 고무신이 신겨져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어르신들에게 인사했다.


“아이고, 우리 할멈 말동무해 줘서 고맙... 응? 호은당 젊은이?”


어... 예? 뭔, 뭔 당이요? 저 아세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주름 자글자글한 할아버지는 손에 하얀 상자를 들고 있었다. 기름이 누렇게 배어 나온 상자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


“아니, 자네가 왜 여기 있어! 여기가 어디라고 와! 당장 돌아가!”

할아버지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호통을 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잠깐만요! 무슨 소리예요! 나는 할머니 말동무 한 죄 밖에 없는데!


“당장 돌아가게! 어서! 여기는 자네가 올 곳이 아니야!”


“잘 가! 약과 잘 먹겠다고 인사 전해줘.”


어디서 나온 힘인지, 할아버지는 내 허리춤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할머니는 멀찍이 서서 방긋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 하, 할머니! 말려 봐요, 좀!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 미친 노친네들! 고마운 줄 모르고 무슨 미친 짓이야!! 할아버지는 버둥대는 나를 그대로 계곡 반대편으로 집어던졌다. 나는 붕 날아올라 뒤쪽에 있던 무언가와 세게 부딪치고는 하얀 꽃밭 속으로 풀썩 떨어졌다. 캥!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아오, 엉덩이야.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하얀 꽃밭이 아니라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정우야! 한아! 아부지 모셔와라! 어여!”


“도련님! 정신 들어요?!”


“삼초온!!”


이... 그...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 나는 부연 눈을 몇 번 끔뻑이며 눈앞의 형체를 구분하기 위해 애썼다. 어... 형수님? 엄마? 여기가 어디래? 형수님이랑 엄마는 또 왜 왔고? 뭐야? 왜 우는데? 뭐지? 나 방금... 어디 갔다 왔지? 뭐지?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아버지와 형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우당탕 요란하게 들어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내 간호사가 달려오고, 의사도 들어왔다.

이게... 뭐지...? 시골에 계셔야 할 부모님과 지방에 있을 형네 부부가 다 왔다. 심지어 꼬꼬마 조카들도 있다. 이게... 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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