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8-약초꾼 체험(1)>

by 혜니



<에피소드 8-약초꾼 체험>



나의 호은당 생활도 어느덧 두 달이 다 채워지고 있었고, 노비로서 24시간을 보냈던 2주도 이제 익숙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눈곱도 채 떼지 않고 부스스한 몰골로 은미 씨와 함께 양치질을 하거나 늦은 밤까지 마당에 앉아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약을 달일 때는 은미 씨와 번갈아 밤을 지새우며 숯불에 부채질을 하기도 했고 약재에 대해서도 조금씩 배웠다. 길에서 흔히 보는 들풀도 약재가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배웠고,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하기 힘들지만 맹독을 가진 독초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독초에 대해 너무 겁을 주니, 길에서 풀떼기를 봐도 아는 체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마당의 냉이를 조심스럽게 캐는 것을 보던 은미 씨가 물었다.


“약초, 캐러 가 보실래요?”


응? 뜬구름 잡는 소리에 내가 돌아보니 은미 씨는 빙긋 웃으며 다가와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 빼곡한 냉이 하나를 쥐고, 작은 호미로 살살 흙을 긁어 냉이 뿌리를 조심스럽게 캐냈다. 냉이는 작은 소쿠리에 담겼다. 이제 제법 소복했다. 오, 역시 잘하네.

나는 내가 캔 냉이도 담고 소쿠리를 뒤적거렸다. 이 정도면 되겠네. 이걸로는 오늘 냉이 된장국을 끓일 예정이다. 냉이를 먹기엔 좀 늦긴 했지만, 양지바른 곳에서 때늦게 자란 거라 연하고 작아서 반찬으로 먹기 딱 좋았다.


“안 그래도 오늘 아저씨가 오시는데... 보조하시는 분이 얼마 전에 사고가 나서 손이 부족하대요. 한 번 따라가 보실래요? 바람도 좀 쐬고 오시고요.”


뭐지? 휴가를 주는 건가, 또 다른 일거리를 주는 건가. 애매한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선뜻 대답을 하기 망설여졌다. 그녀가 말하는 아저씨가 누군지 알기 때문이다.

은미 씨를 친딸처럼 살갑게 대하고, 은미 씨 또한 아버지처럼 따르는 약초꾼 아저씨가 있다.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시커멓게 그을리고 근육이 탄탄한 전형적인 산악인처럼 생겼는데, 험악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얼마나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인지 모른다. 첫인상에 겁을 먹었던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등산을 왜 하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놈이 따라가는 건 약초꾼 아저씨에게 엄청난 민폐일 것이다.

하지만 은미 씨가 이렇게 제안했다는 것도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녀가 아저씨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 때문이다. 은미 씨는 내가 아저씨를 도와주길 바라는 거겠지. 내가 도움이라니. 짐만 되지 않으면 정말 다행인데. 내가 주저하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은미 씨는 손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물론 아저씨가 데리고 간다고 하셔야 되는 거지만요. 요즘 계속 가게에만 계셨잖아요. 바깥에도 나가보시고 바람 좀 쐬고 오시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리고 요즘은 손님도 거의 없고요.”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고택 커피숍과 경쟁이라도 하듯, 반대쪽 골목 끝에는 커다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섰다. 삼 층짜리 건물 전체가 커피숍이었다. 덕분에 호은당에는 연화가 보내는 약방 손님 아니면 어르신과 아기를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 직장인 등 단골손님 외에는 일절 없었다. 그들조차도 요즘은 뜸했다. 나는 소쿠리를 들고 일어섰다.


“예. 그럼 아저씨 오시면 한 번 여쭈어 주세요. 비루한 놈이지만 운전기사는 잘할 수 있으니까요.”


은미 씨는 진심으로 고마운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다녀야 할 아저씨가 많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수돗가에 앉은뱅이 의자를 꺼내놓고 냉이를 다듬었고, 은미 씨는 건넛방에 있던 약초 다발을 꺼내와 햇볕에 널었다. 저 약초는 요즘 거의 매일 햇볕 샤워 중이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 마른 풀냄새는 좋았다. 마당 귀퉁이에서 늘 달이던 약도 이제는 없었다. 호은당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해도 될 한약 냄새가 이제는 희미하게 옅어졌다.


그날 오후, 냉이 된장국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은미 씨를 도와 약재를 절단하고 있는데 약초꾼 아저씨가 오셨다. 은미 씨는 아주 반갑게 그를 맞이했고, 나 역시 반갑게 인사했다.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안아 주었다. 아버지 같았다.


“날 따라간다고? 박 소사가?”


“예, 뭐... 산도 잘 못 타고 약초 같은 건 볼 줄도 모르지만, 운전이라면 제가 잘할 자신 있거든요.”


“음, 뭐. 그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되긴 하지. 헌데 이번엔 좀 험한 곳에 가는데... 버섯 따러 갈 거라서 말이야.”


버섯 따러 가는데 험한 산이 따로 있나? 내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으니 아저씨가 덧붙였다. 산이라고 다 버섯이 자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물론 온갖 버섯들이 지천에 널려있긴 했지만, 아저씨 기준의 버섯은 약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귀한 약용버섯이고, 그 버섯들은 자라는 나무도 다 다르고 자라는 환경도 아주 까다롭다고 했다. 오늘 가는 산은 굉장히 습하고 바위도 많은 데다 위험한 곳이라 나를 데리고 산을 오를 자신이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은미 씨의 얼굴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럼 같이 가세. 어차피 입산하면 며칠 걸리는데 이번엔 자네랑 가서 가볍게 하루만 훑고 오지, 뭐. 사람 구한다고 알려 놨으니 곧 구해질 거야. 그때 다시 가면 되고. 어차피 연화가 당분간은 산 타봐야 소득 없을 테니 놀라고 하더라고. 허허허!”


희한하게도 연화는 약초꾼 아저씨를 어려워했다. 연화 말로는 산신이 지켜보는 사람이라나, 뭐라나. 어차피 산신이 보고 있을 사람이니, 선녀가 나서서 볼 필요가 없단다. 선녀보다 산신이 훨씬 높다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버섯 원정에 합류하게 된 나는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미리미리 튼튼한 안전화와 두꺼운 옷 등을 부지런히 주문했다. 나가서 살 시간이 없었다. 인터넷은 참 좋단 말이지. 준비가 끝나고 찾아온 휴일, 새벽 4시 정각이 되자 내 알람이 울기도 전에 전화벨이 먼저 울렸다.


“예, 아저씨. 지금 일어나는 참입니다.”


약초꾼 아저씨는 혹시라도 내가 늦잠을 잘까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아저씨도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나는 대충 준비하고 사랑채를 나섰다. 허억!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소복 입은 귀신이 대청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제발요. 폰으로 불 밝히는 건 좋은데, 그걸 왜 턱밑에 대고 있냐고. 아오, 진짜.


“조심히 다녀오세요. 조금이라도 힘들면 아저씨께 말씀하시고요. 그리고 이거, 오늘 쓰시라고 미리 준비했어요.”


은미 씨는 까만 스마트키를 내밀었다. 오잉? 그 까만 차가 아니라요?

짐도 많이 실어야 하고 무엇보다 실내가 넓어야 휴식을 취할 때도 좋다면서 이 차를 가지고 가라고 했다. 차가 어디 있냐 물으니, 동네 끄트머리 공영주차장에 갖다 놓았단다. 으음... 살짝 걱정스러운데.

나는 스마트키를 단단히 감싼 새카만 가죽 커버를 노려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먹으려고 미리 우려 둔 약초 차 한 병과 따로 주문 한 백설기 몇 개를 배낭에 넣었다. 배낭을 등에 메는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해서 돌아보니 은미 씨가 배당의 작은 주머니에 사탕을 몇 개 쑤셔 넣고 있었다. 역시, 당이 떨어질 때는 사탕이 최고긴 하지.


“밥은 이따 일곱 시에 다 되게 예약 맞춰 놨어요. 국은 냉장고에 있으니까 냄비 째 올려서 데우고, 전체적으로 펄펄 끓으면 딱 1분 있다가 꺼요. 불에 뭐 올려놓고 다른 데 가지 말고요. 다 먹고 식으면 냉장고에 다시 넣고, 먹고 남은 국은 그냥 그릇 째 싱크대에 넣어 둬요. 설거지 안 해도 되니까 괜히 하다가 그릇 깨 먹고 손 다치지 말고요. 밑반찬도 더 만들어 뒀고, 골뱅이 무침은 양념이랑 채소랑 골뱅이랑 다 손질해서 담아 놨어요. 그거 한꺼번에 다 넣고 참기름 두 스푼만 넣고 비닐장갑 끼고 섞으면 돼요. 괜히 소면이니 뭐니 해 먹을 생각 말고 그냥 먹어요. 소면 넣어서 비벼 먹는 건 다음에 해 줄게요. 알겠죠?”


“네네, 알겠습니다. 불 안 내고 잘 챙겨 먹을게요. 다녀오세요, 아빠.”


정말 걱정이 된다. 진짜 애 혼자 집에 두고 나가는 아빠의 마음이다. 불안해, 정말 불안해.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게요. 하고 얼른 대문을 닫았다. 자꾸 주저하다가는 불안감에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컴컴한 새벽, 가로등 드문드문 켜진 골목은 으스스했다. 걸음이 빨라졌다. 10분 거리를 5분 만에 걸어 도착한 공영주차장에서 스마트키를 꾹 눌렀다. 저 멀리서 허연 차가 눈을 번쩍 빛냈다. 헐? 이 방패모양은 설마... 다시 키를 눌렀다. 삐삑! 이 차가 맞다. 아, 부담스러워!





작가의 이전글약방 호은당의 뒷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