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8-약초꾼 체험(2)>

by 혜니




약초꾼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곳에 도착하니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담배나 한 대 필까 하고 내리는데 약초꾼 아저씨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담배를 집어넣고 꾸벅 인사했다.


“에이, 이 사람이. 그냥 태워.”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따뜻한 커피를 내밀었다. 내가 알기론 커피는 자판기 커피가 최고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저씨도 동의한다며 껄껄 웃었다. 긴장은 됐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둘이서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아저씨의 차에서 이것저것 짐들을 옮겨 실었다.


“이거 은미 차라고? 또 차 바꿨어?!”


“어... 아닐걸요. 원래 타는 차는 그냥 있는데요.”


또 라니. 차가 더 있단 건가? 돈이 아무리 많다지만 한 대에 억 단위로 부르는 차들을 아무렇게나 그냥 막 바꾼다고? 설마.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 정도로 낭비가 심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아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차는 못 보던 건데... 이 녀석이! 내가 그렇게 돈 낭비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여튼 돈 무서운 줄 몰라.”


맞아요. 돈 무서운 줄 몰라요. 돈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 나는 폭풍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옮겨 실은 것은 막걸리와 마른 북어, 마른오징어, 플라스틱 케이스에 든 배 하나와 사과 세 개였다. 마트 가격표가 턱 하니 붙어 있다. 이게 뭐냐는 내 물음에 아저씨는 웃었다.


“산에 들어가서 산신님 물건 캐 올 건데 미리 인사는 드려야지.”


아. 고사 지내야 하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자리를 잘 잡아 실었다. 아저씨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나는 어둑한 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 아저씨는 가는 동안 산에서 조심해야 하는 언행, 미끄러운 바위를 딛는 요령, 길을 찾는 방법 등을 알려주셨다.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되고, 아무리 익숙한 열매라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하셨다. 얼마 가지 않아 아저씨는 잠이 들었고, 나는 내비게이션과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까지 부지런히 달렸다.

아침이 오고도 한참 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야 우리는 목적지인 산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아저씨를 깨우기 전, 은미 씨에게 밥 꼭 챙겨 먹으라는 코톡을 보냈다. 분홍색 복숭아가 엉덩이를 흔드는 스티커가 날아왔다.

그래. 아빠 없을 때 신나게 놀아라. 집에 불은 내지 말고.


아저씨와 나는 배낭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차곡차곡 넣고 단단히 조여 맸다. 해가 떠도 그늘이 질 법한 곳에 차를 세워 두고, 나는 아저씨를 따라 무작정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길이라곤 전혀 없는, 그야말로 울창한 숲 속으로 아저씨는 성큼성큼 들어갔다.

아니, 무슨, 축지법, 쓰세요? 길을, 접어, 다니시나. 천천히, 좀, 가입시더, 아부지요!


십 분 만에 꽤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아저씨는 널찍한 바위를 손으로 슥슥 쓸고 그 위에 플라스틱 일회용 접시와 가지고 온 음식들을 담아 간단한 고사상을 차렸다. 나는 은미 씨가 챙겨 준 백설기를 꺼냈다.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그것도 함께 올려두었다. 막걸리를 따르고 절도 하면서 아저씨는 산신에게 말을 걸 듯 기도했다. 우리 모두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하산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십사, 오늘 혹 약초를 주신다면 병들어 힘든 이들을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베풀겠다,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나도 속으로 기도했다. 산삼이니 뭐니 그런 건 바라지도 않고, 제발 다치는 사람만 없게 해 달라고 말이다. 아저씨가 찾는 버섯을 주시면 더 감사드리고요. 하고 덧붙였다.

차렸던 음식들을 조금씩 뜯어 여기저기 뿌렸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하셨던 고수레 같았다. 막걸리도 바위 주변에 훌훌 뿌린 뒤, 짐을 챙겼다. 본격적인 약초 채취가 시작됐다.



얼마간은 그냥 산을 오르기만 했다. 정말 오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이 바위 투성이 산에서 데굴데굴 구를 것이 뻔했다.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겠고 목이 마른지도 모르겠다. 그저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고 아저씨를 쫒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저씨는 동네 뒷산 오르듯이 가볍게 훌쩍훌쩍 바위를 넘고 나무를 타 넘었다. 그러다 쓰러진 나무에서 뭔가를 발견하면 나를 불렀다. 힘들게 달려가서 보면 아기 주먹만 하거나 어른 손가락 한 마디 만 한 작고 까만 버섯들이 있었다. 이 버섯들은 아직 작아서 채취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 자라는 데도 몇 년은 걸린다고 했다.

우리가 찾는 버섯이 바로 이 버섯이니, 똑같이 생긴 버섯 중에, 손바닥만큼 넓은 것을 보거든 소리치라 했다. 겨우 따라 걷기만 하는 내가 어떻게 버섯을 살피냐 물었지만, 산신께서 네게 주고 싶으시면 보여 주실 거다. 하며 그저 웃기만 하셨다. 뭐... 그렇겠지요.


나는 헐떡이며 아저씨를 따라 산을 올랐다. 산의 전체를 훑듯이 지그재그로 타고 올라가면서, 나는 정말로 내가 버섯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열심히 살피고 또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비슷한 버섯을 한 번 보긴 했지만, 아저씨는 멀리서도 척 보고 그건 독버섯이야. 하셨다.

나무가 다르단다. 내 눈에는 그 나무가 그 나무인데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산을 훑으며 올라가다 보니 목이 마르고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데, 아저씨는 여전히 쌩쌩했다.


“쉬고 갈까, 박 소사?”


“예, 조금만. 물만, 좀, 마시고요.”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목구멍을 타고 단내가 솔솔 났다.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가방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슥슥 닦아 내밀었다. 아저씨는 사과를 한 입 크게 뜯어내더니 또 고수레했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 이로 큰 조각을 뜯어내 바위 뒤로 던지며 고수레! 하고 외쳤다. 우리는 낙엽 더미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사과를 아주 달게 먹어치웠다.


“근데, 버섯은 보통 가을에 따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보통 버섯은 그렇지만 이 버섯은 아니야. 겨울 동안 잘 말랐다가 봄이 오면 물을 머금어서 통통하게 오르지. 그럼 이때 따는 거야. 수십 년씩 묵은 것들이니 가장 물이 올랐을 때 따야 약효가 좋은 법이지.”


아저씨는 사과 심지를 배낭 옆 주머니에 쿡 쑤셔 넣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또 말없이 한참을 산을 헤매고 헤맸다. 와. 진짜, 나 죽는다.

얼마나 더 갔을까. 조금만 쉬다 가자고 애원하려는 그때,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불렀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 내어 경사진 비탈을 기어 올라갔다.


“저기, 보이지? 죽은 나무에 붙은 저 허연 거.”


“헤엑, 헤엑. 예, 허억. 보입, 니다. 커흡!”


“허, 참. 은미가 살살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니만. 자넨 거기 앉아서 좀 쉬게. 내 올라갔다 올 테니.”


헐떡거리는 나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시더니 아저씨는 다람쥐처럼 굵은 나무를 날쌔게 올랐다. 죽은 나무 치고는 아주 굵고 단단해 보여서 아저씨가 올라가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을까, 나는 나무 아래를 힘껏 받치고 섰다. 나무가 흔들흔들,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 아저씨! 나무가 좀 불안합니다!”


“다 왔어! 잠시만 좀 받치고 있게!”


오늘은 그저 빈손일 줄 알고 장대 가위를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잽싸게 나무를 올라 저 멀리서 허연 빛을 내는 커다란 버섯을 뚝뚝 따고, 그대로 주르르 미끄러져 착지하기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나무가 쓰러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아저씨는 환한 얼굴로 버섯을 툭툭 털며 보여주셨다. 잠깐 나무에 오르내린 것뿐인데 아저씨의 호흡은 조금 전과는 달리 상당히 거칠었다.


“이거야. 말굽버섯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말발굽처럼 생겼거든. 무늬도 이렇게 있고 이렇게, 이렇게 층이 쌓이듯이 자라지. 항암제로 많이들 찾아. 이건 옛날엔 참 많았는데 요즘은 보기 드물어. 조금만 자라도 뜯어가니 이 만큼 큰 것도 이 녀석 복이지.”


성인 손 크기만 한 거대하고 딱딱한 버섯은 신기했다. 두툼하고 묵직한 무게에 나는 많이 놀랐다. 내가 아는 버섯이라고는 마트에서나 파는 표고버섯이나 새송이 버섯 같은 그런 식용 버섯뿐이다. 가끔 가을철에 시골 어르신들이 동네 산에서 송이버섯이나 능이버섯 등을 따 오기도 하지만 이런 버섯은 난생처음 봤다. 내가 신기한 눈으로 여기저기 살피고 있으니, 아저씨는 픽 웃더니 가방에서 남은 막걸리를 꺼내 나무 주변에 훌훌 뿌리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귀한 약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정성껏 다듬어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 같은 얼굴에 나도 함께 인사했다. 커다란 고목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펑펑 두드렸다. 어, 윽. 아파요, 아프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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