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8-약초꾼 체험(4)>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서 불이 환하게 밝혀진 휴게소 안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갔다. 한적한 휴게소 내부에서도 가장 밝은 자리에 앉은 우리는, 자판기가 있는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무서워서 괜히 생각도 없었던 꼬치어묵 한 그릇을 시켜놓고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나왔다. 나오는 길, 아무래도 커피가 필요할 것 같아서 편의점에 들렀다. 다행히 편의점에는 사람이 많았다. 고 카페인 음료와 캔 커피 두 개를 사고 차로 돌아가는 우리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재빨리 차에 오르고 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기 까지, 정말 거짓말 좀 보태서 1초 만에 끝났다. 뒷좌석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돌아볼 용기 따위 없었다. 그건 아저씨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우리는 뒤는 절대 돌아보지 않았고, 나는 룸미러도 한 번 쳐다보지 않았다. 그 길로 휴게소는 단 한 번도 들르지 않고 곧장 호은당으로 달려왔다.
컴컴한 밤,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공영주차장도 한적했다. 저기에 차를 세워야 하는 걸 아는데, 도저히 저기서 걸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호은당 골목까지 용감하게 차를 몰고 갔다. 좁은 골목의 절반이 꽉 찼다. 호은당 앞에는 은미 씨와 한복을 입은 연화가 나와 있었다. 연화의 얼굴이 심상찮았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연화는 손에 든 것을 마구 뿌려대기 시작했다.
“훠이! 훠이! 산신의 땅에 감히 잡것들이 몰려가 판을 치고 있었구나! 이 괘씸한 것들을 보았나!”
진짜 박으로 만든 바가지 안에는 굵은소금과 팥이 섞인 것들이 담겨 있었다. 나와 아저씨는 눈을 꼭 감고 입도 꼭 다문 채, 그 소금과 팥의 공격을 묵묵히 받아냈다. 한참을 그렇게 뿌려대던 연화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아저씨는 머리와 몸에 남은 소금을 털어내고 대문으로 다가갔다. 대문 앞에는 하얀 소금으로 길게 선을 그려 놓았다. 그것을 타 넘고 들어오란다. 손이 점점 떨려왔다. 무서워 죽겠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문이 쾅 닫혔는데, 생각 없이 돌아본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대문 위에 거대한 쇠칼이 번뜩이면서 꽂혀 있었다. 내가 어리벙벙한 얼굴로 덜덜 떨고 있으니 아저씨는 내 손을 꼭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대로 신발만 벗고 배낭이고 뭐고 다 멘 채 상담실로 들어갔다. 아저씨의 배낭 바닥에 쏟긴 막걸리로 축축하고 쿰쿰한 냄새가 났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윽고 연화가 따라 들어왔다. 무당이 입는 옷 치고는 수수한 연화의 연분홍 한복은, 진짜 선녀가 입는 날개옷 같았다. 연화는 우리를 나란히 앉혀두고는 그 앞에 마주 앉았다. 화장도 수수하고 머리도 단정했다.
늘 같은 모양의 상담실에는 촛불 수십 개가 밝혀져 있었고, 종이로 만든 꽃들이 방안 가득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처음 보는 금빛 향로가 창가에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부옇게 나오는 향내도 낯설었다. 호은당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어색해진 상담실을 둘러보는 사이, 연화는 손에 들고 있던 금빛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소리다. 방안 가득 소리가 찬 것 같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방울 소리만 머릿속에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딸랑딸랑 흔들며, 다른 손으로 화려한 깃털이 달린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연화는 뭐라 중얼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도 그냥 방울 소리 사이에 섞여 웅얼거리는 것이 들렸을 뿐이지, 방울 소리 외에는 정말 그 어떤 소리도 듣기 힘들었다. 몇 번 몸을 움찔움찔하더니, 연화가 방울과 부채를 탁 내려놓았다.
저... 누구...? 이거, 연화 아니다. 확실했다.
“삼을 따라왔구나. 호랑이 없는 굴에 주인이 된 여우가 붙었어. 여우가 문제야, 늘 그렇듯이. 이 몹쓸 여우 년!”
연화의 목소리는 조금 더 높았고 평소보다 더 나긋나긋했다. 험악한 말을 쓰긴 했지만, 티브이에서 보던 욕쟁이 무당과는 달랐다. 진짜 선녀라서 그런가? 어딘지 모르게 고상한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신성한 느낌도 들었다. 플라시보야, 이건. 나는 의심을 지우지 않고 연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 문 밖에서 키들키들 웃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연화의 매서운 눈초리가 문으로 향하자 웃음소리가 뚝 멈추었다. 연화의 날카로운 눈빛은 내게로 꽂혔다. 나는 움찔했다.
“얘 좀 보게.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 응? 지금 네 할미도 내 앞에서 조아리고 있는데 요 맹랑한 꼬마 녀석이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봐? 겁 대가리가 없구나. 요 겁 없는 꼬마 녀석, 꼭 저 여우 보는 것 같구나! 아하하하!”
뭐, 뭐? 나? 이 꼬마가 누구더러 꼬마래? 하고 대들고 싶었지만 나는 곧장 눈을 내리깔았다. 할머니라는 말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내가 고등학고를 졸업할 무렵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를 유난히도 예뻐하셨던 할머니의 인자한 얼굴이 떠올랐다.
“에이그, 이 미련한 할멈이 손주 살리려다 되레 손주 잡을 뻔했네. 되었다. 그래도 되었다. 수고했다, 노친네 힘에 부쳤을 것인데 수고하였네. 그래도 자네 덕분에 집에는 무사히 왔네. 그래, 그래. 내가 잘 풀어 줄 터이니 걱정 말고 자네 손주 자알 지키시게.”
연화는 나를, 정확히는 내 왼쪽 어깨를 보고 그렇게 말하고 빙긋 웃었다. 연화가 지을 수 없는 미소다. 온화하고 포근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다 깜짝 놀란 눈을 했다. 고개를 홱 돌려 닫힌 창문을 잠깐 바라보다 얼른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방울을 흔들자 온 방이 방울 소리로 가득 찼다. 머릿속에 방울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산군. 산군이 오신다. 산군이 오신다! 여우야! 문을 걸어라! 산군이 오신다! 여우야! 문을 걸어라! 산군이 오셨다! 몹쓸 잡귀 잡으러 산군이 직접 오시느니라! 여우야! 어서 문을 걸어라!”
짜랑짜랑 울리는 방울 속에서 이 목소리만큼은 아주 또렷했다. 눈알마저 굴러갈 것 같은 소음 속에서 또렷하고 깨끗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연화가 모시는 선녀의 목소리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옆에 앉은 아저씨와 연화만 살폈다. 아저씨는 불안한 얼굴로 닫힌 창문만 힐끔거리고 있었고, 연화는 여우야, 문을 걸어라! 하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산군인지 뭔지가 왔다고 문을 걸라니. 누가 왔으면 문을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왜 여우더러 하라 그래? 호랑이 나간 굴에 여우가 앉았다더니. 그 여우가 그 여우 아닌가?
그건 그렇고 은미 씨는 어디 있지?
한참 동안 울리던 방울 소리와 카랑카랑한 연화 선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방울이 뚝 멈추고 연화 선녀는 부채와 방울을 내렸다. 연화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나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창호지를 바른 창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아저씨도 연화도 창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괜히 눈을 도록도록 굴리다 배낭이나 벗을까 하며 움찔하는데 연화 선녀의 눈이 홱 돌아 나에게 왔다. 그녀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가만히 있으라는 듯 신호를 주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엄청난 소음 속에 있다가 갑자기 엄청난 무음 속에 떨어지니 별 이상한 소리가 다 들렸다. 뭔가 사박사박 풀 위를 걷는 것 같은 소리라던가, 누군가가 소곤거리는 목소리 같은 것도 들려왔다. 너무 지나친 무음은 사람 미치게 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별 희한한 소리가 다 들려왔다.
그렇게 조용히 닫힌 창문만 바라보고 있는데,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와, 씨. 진짜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다! 와! 저절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정말 엄청난 인내심과 자제력으로 심장을 부여잡고 참아냈다.
문이 열리자 은미 씨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 공손한 태도로 연화 선녀 앞에 찻잔을 놓고 뒷걸음으로 살살 나가는 은미 씨 모습은 굉장히 낯설고 어색했다. 은미 씨가 나가고 문이 닫힌 뒤, 연화 선녀는 찻잔을 들어 입을 적시고는 온화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이야. 삼은 너의 것이다. 네가 지은 복을 귀히 여겨 산신께서 주신 선물이니, 받아도 좋다. 허나 그것으로 네 사심을 채우려 한다면 벌을 받을 게야. 산신께서 허락하셨으니 네가 가지되, 산신의 말씀을 어기면 응당 천벌이 따를 게야. 명심하도록 하라. 그리고 동자야, 동자는 당분간 산에 오르지 말도록 하라. 산신께서 출타하셨으니 자네 역시 성하지 않을 것이지. 괜히 기력을 허비해 명을 줄이지 말고 산신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집을 잘 지키도록 하라. 그리고... 밖에 듣고 있느냐?”
“예, 선녀님. 하명하십시오.”
어... 은미 씨...? 와, 대박 어색하다.
“은호에 다녀오너라. 너를 찾아 부르신다.”
“예, 선녀님. 명 받잡겠습니다.”
어... 와... 뭔가 좀 이상한 그림이긴 한데... 제일 막내였던 연화가 갑자기 제일 어른이 되어 버렸다. 아저씨도 연화 앞에서는 예예, 하며 머리를 조아렸고 은미 씨는 아예 받들어 모시는 하녀가 되어 있었다. 맙소사. 이거 뭐지?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연화 선녀가 빙긋 웃었다.
“어쩌다 영호의 연이 되었는지. 하긴. 고것 아니었으면 너도 네 명에는 못 살았을 테니. 아이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호를 잘 보살피도록 해라.”
“에, 예? 아, 예. 예...”
나는 이 뜻 모를 말에도 그저 머리를 숙이고 순순히 예, 하고 대답하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