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8-약초꾼 체험(5)>

by 혜니




연화 선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부채를 펼치고 방울을 흔들었다. 방안 가득 방울 소리가 채워졌다. 내 머릿속에도 방울들이 굴러다녔다. 눈에 초점을 맞추기도 어려울 만큼 정신없는 방울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이윽고 방울이 바닥에 내려오고 부채는 착 하고 접혔다. 휴 하는 긴 한숨을 쉬는 연화 선녀는 내가 아는 연화가 맞았다. 눈빛부터 완전히 달랐다.


“아오, 어깨야. 요즘은 선녀님 다녀가시면 어깨가 그렇게 아프더라.”


연화는 어깨를 빙빙 돌리고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얼핏 보인 목덜미에 벌건 줄이 있었다.


“연화야, 너... 목, 여기...”


“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연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저고리를 끌어올리고는 일어났다. 부채와 방울을 챙겨 들고 문을 열고 나갔다. 대청에는 은미 씨가 앉아 시커먼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와 아저씨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아저씨와 나는 이제야 주섬주섬 배낭을 벗고 옷과 모자 등을 벗었다. 시쿰한 막걸리가 묻어 엉덩이와 등이 축축했다. 그사이 연화와 은미 씨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언니, 은호에는 언제 갈 건데?”


“글쎄다. 내년에 가지 뭐.”


“빨리 안 가면 삐질걸.”


“나이 먹더니 소심해지기만 했어.”


“원래 늙으면 소심해진대. 산군은?”


“잘 가셨어. 여전히 약과 좋아하시더라.”


“언니가 고생했네.”


“뭘. 안 그래도 또 그 먼데까지 언제 가나 했어. 직접 오셨으니 됐지, 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점점 귀와 몸이 대청 쪽으로 뻗어 가는데, 누군가 덥석 내 다리를 잡았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아저씨였다.


“얘야, 은미야. 박 소사가 다쳤어.”


“아, 그렇지.”


은미 씨는 벌떡 일어나 들어왔다. 벽을 가득 메운 벽장을 열더니 구급상자를 꺼내 왔다. 오잉. 나는 생뚱맞은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고약이나 그런 거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약방인데. 그래도 안에는 다른 게 있겠지. 기대했지만 뭐... 은히 약국에서 파는 상비약 세트였다.

은미 씨는 소독약을 상처에 콸콸 때려 부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온 몸을 비틀었다. 아저씨는 사내가 그 정도도 못 참느냐 웃었고, 대청에서 연화는 엄살쟁이라며 비웃고 있었다. 은미 씨는 웃음을 꾹 참고 치료했다. 다행히 긁힌 정도라 약을 바르고 얇은 붕대를 덧대는 것으로 치료는 끝이 났다. 나는 좀 더 한방 느낌 나는 치료를 기대했었는데. 내가 아쉬워하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은미 씨가 씩 웃었다.


“아주아주 잘 듣는 약이 있는데... 써 보실래요? 옛날에 화살 맞은 상처도 치유해 줬다는 오이풀이라는 걸로 만든 약이 있는데... 그걸로 만든 고약이 있거든요? 냄새는 좀 그렇긴 한데, 이게 효과가 아아주 좋아요.”


어... 뭔가 불안하다. 표현하는 저 방식, 뭔가 불안해. 경보가 작동했다. 위험하다. 저거, 소독약보다 더 아픈 약이 분명하다! 냄새가 미친 듯이 고약한 약일 것이 분명하다! 나는 고개를 팔락 팔락 저었다.


“아니요. 그냥 약상자 안에 한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한 거지, 한방 치료를 원한 건 아닙니다. 구하기 쉬운 연고가 최고죠. 암요.”


은미 씨는 키득거리며 구급상자를 치웠다. 그 사이 연화는 어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코톡! 아저씨의 코톡이 울렸다.


“어... 연화가 해 뜨면 가라는데. 빈 방이... 있나?”




나는 아저씨를 사랑채로 모셨다. 은미 씨가 여분으로 내어 준 이불로 이부자리를 깔고 우리는 그 방에 나란히 누웠다. 깊은 새벽이 되었고 마당에 불도 다 껐다. 눈앞의 내 손도 안 보이는 어둠 속, 우리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안 자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잠이 올 리가 없지. 아저씨도 40년을 산을 타면서 그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으니까.


“... 아저씨, 소주 한 잔 하실래요?”


“... 그럴까?”


결국 우리는 방에 불을 켰다. 벌벌 떨며 주방으로 달려가 냉장고를 열어보니, 저녁에 먹으라고 준비 해 두었던 골뱅이 무침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대충 버무리고, 가끔 밤에 마시려고 사 두었던 소주 세 병을 챙겨 방으로 들어왔다. 대문 위에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쇠칼이 꽂혀 있었다. 그것은 본체만체하면서 후다닥 들어온 뒤 방문을 꼭 닫았다. 아저씨도 같은 마음인 듯했다. 우리는 앉은뱅이책상을 끌어당겨 상으로 썼다.

처음 몇 잔은 안주도 없이 그냥 연거푸 마구 들이마셨다. 진정을 하고 싶은데, 조금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버섯 따러 간대서 따라갔다가 이상한 귀신한테 홀린 건지, 뭐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상한 일을 겪었다.

소금 세례를 받고 무시무시한 쇠칼과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방울 소리들, 연화의 다른 모습. 이게 다 뭐람. 산삼 캤다고 좋아했는데. 지금은 산삼 따위 기억도 나지 않았다.

생각 난 김에 물었더니, 아저씨가 김치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거기가 딱 좋다면서 말이다.


사실 처음 캤을 때만 해도 부자가 될 것 같았고 불로장생 할 것 같았다. 로또 1등에 두 장 당첨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저씨가 본 감정가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었다. 큰 것은 오백, 작은 것은 삼백 정도라고. 산삼인데 그거밖에 안 해요?라는 내 말에 아저씨는 껄껄 웃었다. 고작 삼사 년 묵은 작은 삼 가지고 얼마를 받길 바라냐며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일억은 할 줄 알았지.

아저씨 말로는, 억 단위 넘어가려면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한다. 이십 년 이상 묵은 산삼이라야 억부터 시작할 거라고 한다. 그것도 아주 곧게 잘 빠진 동자삼의 경우에 말이다.

요즘 심마니들은 장뇌삼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데, 내가 캔 것이 그 장뇌삼이다. 그러니 아주 비싸게 쳐서 이 정도 가격이라고 한다. 내가 캔 삼의 가격은 초행자의 운을 산다는 의미가 더 커,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다고 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 약주 좋아하시는 부모님께 술을 담아 드리기로 했다. 멋들어진 병에 담아 선물하면 두고두고 동네 자랑도 하시겠지. 내 생각을 알려드렸더니 아저씨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박수를 쳤다. 담금주 만드는 법도 특별하니 은미 씨에게 잘 배워 담으라며 아저씨는 잔을 들었다.

산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작은 도자기 잔을 팅 맞대고 꼴깍 소주를 비웠다. 무침회가 꽤 맛이 좋았다. 아저씨도 내 요리 솜씨가 좋다며 감탄을 하셨다.


우리는 수박 겉을 핥는 대화만 주고받았다. 정작 우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는 그게 아닌데. 서로가 서로의 속을 훤히 보고 있으니 먼저 말을 꺼내는 것조차 두려웠다. 이러다가는 술 다 마시고 난 뒤에도 본론은 못 꺼낼 것 같았다. 두 병째 술을 따고 내가 말을 꺼냈다.


“그... 쫓아온 게 여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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