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8-약초꾼 체험(E)>

by 혜니




내 물음에 아저씨는 또 한 잔의 소주를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계셨다. 나도 한 잔을 비웠다. 골뱅이 무침을 한 젓가락 집어 먹었다. 맛이 어떤지, 식감이 어떤지 모르겠다. 그냥 술이 쓰고 입이 떫어 무언가를 씹어야 했을 뿐이다. 아저씨도 골뱅이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것을 다 삼키고 나서야 아저씨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표현이 그런 게지. 산신이 지금 안 계신다 하지 않던가. 산신께서 출타하신 틈을 타, 잡귀들 중에 좀 센 녀석이 자리를 잡고 산신인 척하고 있었던 모양일세. 헌데 그 가짜 산신도 삼이 있는 줄은 몰랐던 모양이야. 자네가 삼을 캐서 가지고 나가니 샘이 나서 해코지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고. 선녀님 말씀으로 유추해 보면, 자네 할머님이 도와서 그 정도 상처로 끝난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거긴 다칠 것이 없는데 말일세. 아무튼... 피를 보니 나도 찜찜했지. 그래서 얼른 치료하고 내려가려고 자네를 세우는데... 그 뒤에, 저 멀리 숲에서 뭔가 허연 것이 펄럭거리면서 내려오고 있더라고. 처음엔 내가 뭘 잘 못 봤나 했는데, 왠지 모르게 무서웠어. 그래서 자네를 질질 끌다시피 달려 내려왔지. 막걸리도 좀 뿌려서 시간도 벌고. 그게 뭔지는 나도 정확히는 못 봤어. 아무튼, 차에 타자마자 연화한테 물었더니 연화가 곧장 호은당으로 오라고 하더라고. 자네나 나나 너무 놀라서 좀 쉬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 산이 안 보이는 곳까지 가서 잠시 쉬다 오라고 하더라고. 헌데 그것이 삼에 엄청나게 집착을 한 모양이야. 그 삼이 보통 삼이 아닌 건지, 그것이 살아생전 삼이 필요했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 볼 일이 있었는지... 그런 것은 모르겠다만... 아무튼 호은당까지 쫓아온 모양이야. 그래서 이 사달이 난 게지.”


“으윽... 아저씨는 이런 일이 종종 있으셨습니까?”


“아아니. 나도 40년을 넘게 산을 타고 다니면서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은 처음이네. 소소한 동물 귀신이나 무덤 잃은 귀신, 암매장당한 귀신같은 것들은 종종 보았네만, 이번처럼 살기를 흉흉하게 흘리면서 달려드는 귀신은 처음이네. 어지간한 귀신들은 약초꾼을 건들지 않아. 약초꾼은 하늘의 뜻을 보는 사람이라 해서 일반 사람들도 함부로 여기지 않는 귀한 직업이기도 하고. 귀신이나 짐승들도 알아. 약초꾼은 하늘의 뜻을 수확하는 이라고 말일세.”


아. 그렇구나. 나는 사실 약초꾼이 그냥 단순히 산을 타면서 돈이 되는 약초와 버섯, 삼을 캐는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약초꾼은 보통 직업이 아니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고 또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직업이었다. 그것이... 그럴 만했다.

아저씨는 술을 쭉 들이켜더니 긴 숨을 푸 하고 뱉었다. 술 냄새가 방 안에 제법 찼다. 나는 얼른 골뱅이를 골라 아저씨 앞으로 옮겼다.


“전에 한 번은, 갑자기 비가 왔어. 그래서 높고 단단한 곳에 천막을 대충 치고 같이 갔던 사람들하고 한 숨 돌리면서 밥을 먹고 있었지. 천막이라고 해도 그냥 김장비닐 두 겹 해서 빨간 노끈으로 묶는 게 전부긴 해. 헌데 한 사람이 자꾸 밥이 목에 걸린다면서 못 먹겠다는 거야. 그래서 왜 그런가 했더니, 그 치가 앉은자리 밑에 암매장당한 시신이 있었더라고. 그래서 그 날은 경찰 부르고 뭐 그런 수습하느라 공을 쳤고... 또 한 번은, 산에서 자는데 밤에 누가 자꾸 천막에 돌을 톡톡 던지는 거야. 그래서 이게 뭔가 하고 눈을 떴더니, 눈도 뻥 뚫려 없고, 얼굴만 허옇게 있는 것이 천막에 코를 톡톡 처박고 있는 거 아니겠나? 아, 그것이 글쎄 내가 일어난 것을 알았나. 이빨을 싸악 드러내면서 웃는데 얼마나 오싹하던지. 냉큼 동료를 깨우고 돌아봤더니 없더라고. 뜬 눈으로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에 자리를 걷다 보니, 우리가 천막 걸었던 바위가 알고 보니 오래된 비석이더라고. 그래서 가만히 보니, 그 허연 얼굴이 콕콕 박던 자리가 비석 있던 자리였던 거지. 약초꾼들이 자기 옆에 와서 자리 깔고 자고 있으니, 이건 어떤 인간인가 싶어 구경 왔던 게야.”


나, 나는... 나는 죽어도 약초꾼은 못 하겠다. 당장 목을 벤다 해도 약초꾼은 안 할 겁니다. 내가 당장 죽더라도 그건 못 한다. 내가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긴 한데, 해병대에서도 귀신 잡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귀신이 무섭다. 해병대에서는 귀신을 무서워할 틈이 없었을 뿐, 귀신은 무섭다. 난 무섭다! 정말로 무섭다!


“헌데... 오늘 쫓아오던 거는... 진짜 나도 처음이야. 그리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면서 악착같이 쫓아오는 녀석은 정말로 처음이었어.”


순간, 나와 아저씨는 분명 같은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확한 형체도 없는 허연 무언가가 차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뻗던 그 모습.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저씨는 얼른 소주를 한 잔 톡 털어 넣었다.


“그거 아나? 귀신도 자기 이야기하면 재미있다고 와서 듣는다는 거. 우리, 이러고 있으면 또 귀신 올지 몰라.”


“아, 아저씨! 다른, 다른 이야기! 다른 이야기해요!”


“하하하! 자네, 의외로 겁이 참 많구만?”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소주잔을 채웠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쓸데없는 이야기나 떠들어가며 잠이 오길 간절히 바랬다. 술기운이 오르고 가지고 왔던 술도 거의 비었다. 안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상을 밀어 두는 것으로 정리를 마치고 곧장 누워버렸다. 화장실이고 양치질이고 하기 싫었다. 솔직히 말하면 방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우리는 불도 끄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아저씨는 부인이 걱정한다며 서둘러 나섰다. 아침은 먹고 가시라고 그렇게 잡았는데 한사코 거절하시더니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저씨도 무서웠겠지. 이해한다.

나와 은미 씨는 허둥지둥 따라 나와 아저씨를 배웅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당분간은 산에 가지 마시고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졌다. 차를 가지러 가야 하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며 부인과 함께 가야 할 것 같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모두가 웃는 낯으로 아저씨를 배웅하고 돌아서던 길,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은미 씨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어젯밤, 급하게 대충 대어 놓았던 그 비싸디 비싼 자동차의 뒤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검붉은 진흙으로 쿡 찍어 놓은, 아주 선명한 손자국이었다.


“으으... 아아악!!!”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입만 틀어막은 채 벌벌 떨고 있는데, 은미 씨가 들어오더니 양동이에 물을 가득 받았다.


“이 개념 처 말아먹은 새끼가 내 새 차에 감히...! 선물하려고 한 건데! 이 싸가지 없는 새끼를 내가 진짜...!”


뭐라 욕을 내뱉으며 중얼거리더니 걸레 한 장과 물을 담은 양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속사포처럼 쏟아 냈던 그 말들이 누구에게 하는 욕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어제와 관련한 일은 모조리 잊고 싶었다. 산삼 빼고.

한참 뒤, 씩씩 거리는 은미 씨가 들어왔다. 진흙은 지웠는데 손자국은 남아 있다고. 그게 또 뭔 소리여! 아아악! 나는 또 비명을 지르며 주방으로 도망쳤다. 은미 씨는 씩씩 거리며 양동이를 비웠다. 커다란 양동이는 시뻘건 흙물을 콸콸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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